검은콩의 일종인 쥐눈이콩은 까맣고 작은 콩 모양이 마치 쥐눈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한자로도 쥐의 눈이라는 뜻 그대로 서목태(鼠目太)라고 부른다.

이 시는 쥐눈이콩이 쥐눈을 닮았고, 이름까지 그렇게 붙여지고 불리어지고 있는 사실로부터 전개된다. 쥐눈이콩처럼 누구나 친숙하게 잘 알고 말하는 일상의 사물이 시로 포착됐다. 쥐눈이콩과 쥐눈과의 형태적, 음성적 동일성을 여느 사람들처럼 흘려보내거나 잊지 않고 이렇게 붙잡아두는 눈과 마음이 바로 시를 쓰게 하고 시인을 만든다.

본격적인 상상은, 쥐눈이콩이 ‘쥐눈을 닮았다’고만 여기지 않고 쥐눈이콩은 ‘쥐눈이다’라고 믿는 데서부터 시작됐다. 쥐눈이콩을 진짜 쥐눈처럼, 아니 진짜 쥐눈으로 보고 말한다. 그러니 할머니는 “쥐눈망울만 떼어 팔러 나온” 것이고 “또랑한 눈망울”들은 반짝반짝 빛을 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상상은 자연스레 이야기를 만든다. 할머니는 대체 쥐에게서 어떻게 쥐눈을 떼어왔을까? 쥐가 순순히 눈을 내어주진 않았을 테니 무언가로 꼬드겼겠지? 쥐가 눈을 쏙 떼어주게끔 홀딱 넘어간 말은 뭘까? 쥐가 눈을 갖다 바칠 정도로 좋아하는 건? 당연히 맛있는 음식이지. 집 구석구석에 있는 음식들을 죄다 훔쳐 먹잖아. 그런데 쥐눈이콩은 쥐의 눈일 뿐이니 입이 없다. 그래서 먹지도 못하고 조르지도 못한다……

쥐눈이콩과 쥐눈과의 유사성을 지나치지 않았다. 쥐눈이콩을 쥐눈이라 믿어버렸다. 그러니 이렇듯 독특한 이야기 한 편이 만들어졌다. 옛이야기에서 느낄 법한 그로테스크가, 즉 괴기스러우면서도 우스꽝스런 분위기가 잘 살아난다. 시골 장날 풍경을 그려온 수많은 동시들이 할머니들의 고단한 밥벌이를 푸근하고 정감 있게 멀찍이서 바라보고 묘사해 온 것과는 전혀 다른 유일한 시선과 분위기를 지니게 됐다.

물론 시인은 그런 시도 쓸 줄 알고, 아주 잘 쓴다. 자줏빛 얼굴을 떨구며 피다가 흰 솜털 머리가 성성해지는 할미꽃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바로 이 시처럼.

“봄이 오면/우리 할머니/우리 할머니의 할머니/또 그 위의 할머니//하늘나라 가신 할머니들/모두모두/지팡이 짚고/땅으로 내려오신다(‘할미꽃’, ‘사과의 길’ ‘문학동네, 2014’)

쥐눈이콩을 팔러 나온 할머니도, 봄이 오면 할미꽃으로 내려오시는 할머니도, 모두 다 같은 ‘할머니’다.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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