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첨단 브로커가 활약하는 정치풍토

‘김경수 오사카’라는 댓글이 처음 등장했을 땐 무슨 장난질인가 싶었다. 지난 2월23일 경남지사 출마를 저울질하는 김경수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경향신문 인터뷰 기사 밑에 맥락 없이 여기저기 달린 그 댓글은 궁금증과 함께 강한 암시를 주고 있었다. 서지현 검사 성추행 폭로를 계기로 자고 나면 유명인들이 미투 세례를 받던 터라 그 조짐인가 싶을 정도였다. 오사카 총영사 인사청탁이 무시되는데 불만을 품은 드루킹 김동원이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기사에 비방 댓글 공감수를 조작한 지 한 달 뒤다. 갑작스런 남북 단일팀 구성으로 우리측 일부 선수가 불이익을 받는 데 따른 비판 여론에 편승한 댓글 조작이다. 얼마 뒤 여권에서 매크로를 이용한 댓글조작설이 나오면서 경찰 수사가 진행됐고 김 전 의원의 연루, 드루킹 집단의 존재, 첨단기법이 동원된 댓글기계 등장, 지난 대선에서 광범위한 댓글조작 흔적까지 양파껍질 까지듯 의혹이 불거지면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법이 21일 국회를 통과하기에 이르렀다.

드루킹 집단의 여론조작 사건 전개 양상은 대선 논공행상 불만에서 시작된 일로 보이지만 드루킹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시작은 ‘순수’했다는 것이다. 자신과 경공모(경제적공진화모임)는 정치에 관여할 생각이 없었지만 2007년, 2012년 대선 패배가 댓글기계부대의 맹활약 때문임을 알게 됐고, 10년 어둠 속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서 민주정권을 되찾고 싶었다는 것이다. 문재인 후보가 지지율 17%일 때부터 민주정권 교체를 위해 사심 없이, 아무런 대가 없이 도왔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 인권결의안 기권 과정을 다룬 송민순 회고록 파문이 일었을 땐 모든 회원이 밤잠을 못 자고 십여 일을 댓글과 추천을 달아 ‘사태를 막았다’는 자부심도 드러냈다. 자신의 변호사를 통해 공개한 옥중편지 내용이다.

드루킹은 논공행상 토대가 되는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중앙선대위 구성에서 자신의 추천 인사 한 명이 누락됐고, 김 전 의원 측이 이에 외교부 특1급 자리 추천을 권유했지만 이마저도 내정자가 있는 상태여서 자신을 ‘갖고 놀았다’고 여겼다. 일방적 주장이라는 김 전 의원 말마따나 수사에서 확인할 내용이지만 일본 센다이 총영사 자리는 외교관도 꺼리는 곳이라 농락당했다는 생각에 거절했다는 대목에선 드루킹과 그 추종세력이 대선에서 기여했던 역할을 스스로 얼마나 대단하게 여기는지 가늠할 수 있겠다. 드루킹은 남북단일팀 비방 댓글을 조작하기 1주일 전인 지난 1월 페이스북에 “지난 1년 4개월간 네이버를 누가 지켜왔느냐”며 재주는 곰이 피우고 생색은 문꿀(문재인 팬클럼)과 네이버 부사장 출신 윤영찬(문 캠프 SNS본부장)이 내고 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봇물 터진 드루킹 기사에는 국정원과 드루킹 댓글조작 중에 어느 게 많은지 재 보자는 식의 냉소적인 댓글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좌파 집권을 막겠다는 정보기관 동원 논리와 10년 보수정권을 끝장내는데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는 청맹과니 인식에서 도덕적 분별력을 잃게 하는 진영 논리의 깊은 해악을 엿보게 된다. 정권은 바뀌어도 변함없는 낙하산 인사 범람 속에 대선에서 기여한 게 얼만데 무시하냐며 논공행상에 ‘물’ 먹고, 불만을 품는 정치권 언저리 인사들은 또 한 둘이겠나 싶기도 하다. 선악과 윤리를 흐리게 하는 이념 과잉과 로또나 다름없는 승자독식 대선, 인터넷ㆍ스마트폰 시대의 여론형성, 날로 첨단화하는 조작 기법,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법ㆍ제도 하에서 첨단 브로커가 활약할 정치와 선거 토양은 차라리 비옥하다고 하겠다. 그 와중에 정권 창출의 도덕적 완결성에 큰 오점을 남길만한 정치사건이 되면서 수사기관의 체통은 지하층을 뚫을 만큼 추락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측근인 청와대 부속비서관 연루 내용을 뒤늦게 보고 받고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 설명하라”고 했다. 그 지시로 충분한지 의문이다.

정진황 사회부장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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