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군(先軍)정치를 내세운 김정일 시대만 해도 북한 군부는 막강했다. 최고 권력기구가 국방위원회였고 김정일은 국방위의 수장이었다. 하지만 김정은은 집권 이후 계급장을 뗐다 붙였다 하는 방식으로 군부를 길들이고 힘을 뺐다. 집권 초반 합참의장 격인 총참모장은 이용호-현영철-김격식 순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었다. 국방위 대신 국무위원회가 권력의 중심으로 등장했고 김정은은 국무위원장으로 등극했다.

▦ 김정일 시대 막강했던 군부도 당연히 통제 대상이었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은 해주를 개방해 달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요구에 “개성은 평화의 상징이라 많이 양보한 것이고 (해주는) 군대가 반대할 테고∙∙∙”라는 말로 군부의 불만을 에둘러 표시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끈질긴 요청이 오후까지 이어지자 ‘오찬 직후 군 장성들과 상의한 결과’라며 공동어로구역 설정을 조건으로 해주 인근의 경제특구 건설 계획을 수용했다. 군부가 국가정책에 반대 의견을 낼지언정 최고 지도자를 넘어서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보여준 셈이다. 당시 남북이 합의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계승키로 한 10ㆍ4 공동선언의 핵심 사업이다.

▦ 김정은 시대 달라진 군부의 모습으로 판문점 정상회담 장면을 빼놓을 수 없다. 박영식 인민무력부장과 함께 이명수 총참모장이 사전조율도 없이 공식 수행단으로 내려왔고, 둘 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거수경례까지 하면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양군 수뇌부의 동반 등장에 군사적 긴장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고 남북은 연내 종전 선언 및 단계적 군비 축소 합의 등 풍성한 결실을 맺었다. 북한군 수뇌 두 명이 공식 환영행사를 마친 뒤 곧장 북측으로 귀환해 잠시 궁금증을 낳긴 했지만, 양측은 정상회담 직후 비방방송을 중단하는 등 즉시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에 들어갔다.

▦ 김정은은 핵ㆍ경제 병진 대신 경제 집중 노선을 채택하면서 사실상 개혁ㆍ개방 정책을 향하고 있다.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는 최근 회의에서 이런 흐름의 새 전략노선을 논의했는데, 일단 핵ㆍ경제 병진노선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서 북한 군부도 탈색의 방향성을 확실히 한 셈이다. 북한이 이런저런 이유로 남북관계를 다시 파탄시키겠다고 위협하는 가운데 강경 군부의 시대착오적 입김이 역류 현상의 배경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김정곤 논설위원 jk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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