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아의 섬 타는 여자] 과거ㆍ현재ㆍ미래가 공존하는 남태평양 솔로몬제도

솔로몬 아이들이 바닷가 고목을 점프대 삼아 물놀이를 하고 있다.

성경과 탈무드의 '지혜의 왕'과 이름이 같은 솔로몬 제도는 2만8,450km²의 면적에 990개가 넘는 섬들이 대각선으로 뻗은 섬 태평양의 나라다. 수도 호니아라가 위치한 과달카날(Guadalcanal)과 다이빙 명소인 기조(Gizo), 문다(Munda) 섬이 가장 유명하다. 그 밖에도 슈이젤, 산타이사벨, 말라이타, 산크리스토발, 산타크루즈 섬과 정확히 몇 개인지 알 수 없는 수많은 환초들이 솔로몬을 이루고 있다. 과달카날와 기조 섬에 다녀왔다.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솔로몬의 과거ㆍ현재ㆍ미래를 동시에 엿볼 수 있었다.

솔로몬의 지혜? 원시생활을 선택한 사람들

도착 첫날, 호니아라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차에 타자마자 솔로몬관광청 직원은 도로 사정이 별로 좋지 않은데 재정비 중에 있으니 이해해 달라고 당부했다. 처음 찾는 이방인들이 나쁜 인상을 갖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엿보인다. 도로는 경고한 대로 좋지 않았다. 자갈 밭을 가는 듯 차가 계속 출렁이고, 황토색 먼지가 일어나 창을 닫아도 메케한 냄새가 풍겼다. 신호등이 없기 때문에 늘 방어운전을 해야 한다. 그렇게 30여분을 달리니 갑자기 현대적인 도심으로 진입했다. 카지노와 원색으로 페인트칠을 한 멋스런 가게들, 3층 높이의 쇼핑몰, 현대ㆍ기아자동차의 대규모 전시장까지 보인다. 호텔에 짐을 풀고 다시 이동하니 또 반전이다. 난전과 쓰러져가는 허름한 주택, 원시부족이 사는 마을이 나왔다. 현재-미래-과거가 한 길에 펼쳐져 있는 듯하다.

원시생활로 돌아간 솔로몬 사람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 그들의 선택이었다.
솔로몬의 원시부족마을은 관광객을 위한 민속마을이 아니라 실제 삶터다.

여행은 과거에서부터 시작했다. 루마타포포호(Luma Tapopoho) 마을에 도착했다. ‘모로문화’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원시부족 마을이다. 솔로몬의 원시마을은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사라져가는 전통을 일부러 보존한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삶을 살다가 다시 원시생활로 돌아가기로 작심한 사람들이 만든 공동체다. 1950~60년대 과다카날 섬에서 진행된 과거로의 회귀, 즉 ‘모로운동(Moro Movement)’의 결과물이다. 모로운동은 단순히 삶의 방식만 되돌리는 게 아니라 주술적이고 영적인 요소까지 결부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전쟁(제2차 세계대전)에 휘말려 기존 질서와 삶의 터전이 무너진 상황에서, 솔로몬 사람들의 고민을 반영한 선택이었다. ‘원시적’이라는 단어로 폄하할 수 없는 이유는 솔로몬의 복합적인 사회적 배경, 그들의 철학과 의지가 녹아있는 실천적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3,000~4,000명의 솔로몬 사람들이 이 방식대로 살고 있다. 전기도 가스도 그 어떤 문명의 이기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급자족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아무도 이들의 결정과 삶의 방식을 평가하지 않는다. 이들의 표정과 행동에도 후회나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 남의 생각과 평가에 관계없이 내 방식대로 살아가는 떳떳한 모습이다. 외부 세계의 현대인과는 전혀 다른 믿음체계가 자리잡고 있음이 분명하다.

원시마을에서는 찬다(Chanda)라는 환영 의식으로 외부인을 맞는다. 족장처럼 보이는 할아버지가 자리를 잡자 최소한만 가린 젊은 남녀와 아기, 부인네들이 나와 손님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맞잡으며 환하게 웃는다. 족장이 먼저 비틀넛(Beetle Nut)을 깨물고 나뭇잎을 젓가락 두 개 넓이만큼 접어 흰 가루에 찍어 먹는다. 무슨 맛인지 궁금해 매실처럼 생긴 비틀넛 열매를 받아 들었다. 가운데의 단단한 열매를 꺼내 어금니로 꽉 깨물었다. 순간 떫은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감처럼 부드러운 과육이 아닌 뻣뻣한 나무껍데기를 씹는 듯했다. 말로 다 설명이 안 된다. 지금까지 만난 몇 안 되는 솔로몬 사람들 모두 치아와 잇몸이 붉게 물들어 있었는데, 바로 비틀넛 때문이라고 한다.

달군 돌을 사용해 음식을 만드는 솔로몬 사람들.
불을 피울 때도 나무 마찰을 이용한다.
솔로몬 원시생활인들이 외부인을 맞을 때 건네는 비틀넛, 떫은 맛을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다.
솔로몬인 중에는 비틀넛을 씹어 치아가 붉은 사람들이 많다.

비틀넛에는 약간의 대마초 성분이 있어 씹고 일어서면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핑 도는 느낌이다. 특히 젊은 남자들은 솔로몬에서 즐길만한 유흥거리가 없어 비틀넛을 씹으며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이곳은 10개 원시부족 마을 중 호니아라 시내와 가까워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다.

깊은 산 속에 위치한 마을을 방문할 때는 방문자도 현대적인 옷을 입을 수 없고, 부족 사람들과 똑같이 옷을 입고 신을 벗어야 한다. 전기도 없고 흙벽이라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집안은 쓰레기 하나 없이 정돈이 잘 돼있었다. 이들은 달군 차돌을 이용하는 구라(Gura)라는 방식으로 음식을 만든다. 뜨거운 차돌을 코코넛 밀크에 담그면 팍 튀어 오르면서 구수하고 달콤한 향이 퍼진다. 다진 고기와 야채를 코코넛 잎으로 싸서 따끈해진 코코넛 밀크에 넣고, 잎으로 덮은 후 다시 차돌로 누르는 과정을 서너 번 반복했다. 구수한 냄새가 피어 올랐다. 불을 피울 때도 나무와 나무를 마찰시키는, 우수(Usu)라는 원시 방식을 고집한다. 말린 코코넛 잎으로 짠 돗자리를 깔고 작은 화롯불을 피우고 잠을 청한다.

부족 전통 옷을 입어보고 싶다는 무모한 요청에 20대 중반 정도 돼 보이는 프란시나가 망설임도 없이 그 자리에서 자신의 옷을 벗어 정성스럽게 입혀주었다. 나무를 꼬아 만든 끈이라 혼자서는 매기가 어렵다. 그 옷을 사겠다는 말에 가격을 어떻게 매겨야 하나, 주민들끼리 한참을 상의했다. 단 한 번도 이런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이버의 천국 기조와 문다 (Gizo and Munda)

과거에서 현재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오전 6시30분경 호텔을 나섰다. 섬나라이니만큼 각오는 했지만, 매일 한 번 이상 비행기를 타는 일정이 녹녹하지 않았다. 솔로몬의 수도는 호니아라지만, 여행자들의 수도는 기조 섬이다. 기조와 문다 섬에서는 세계대전 당시 난파된 비행기와 탱크, 전투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박물관이 아니라 학교 앞 마당이나 전통공예품 판매장 앞에도 있다. 2차 대전 당시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탄 함대가 적의 공격에 침몰했는데 간신히 헤엄쳐 구조된 섬, ‘케네디 아일랜드’도 있다.

투명한 바다에 열대어가 한 가득, 솔로몬 바다는 다이빙과 스노클링의 천국이다.
솔로몬 곳곳에 2차 세계대전의 잔해가 남아 있다.
조금 먼 바다에서는 이런 물고기도 잡힌다.

예쁜 바다라고 하면 보통 색으로 구분한다. 기조의 바다는 물고기와 산호 해삼 불가사리 대왕조개가 그득해 색의 경계를 구분 짓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리조트 인근에는 물고기와 산호가 많지 않은데, 남태평양에서도 유독 솔로몬의 바다 속 환경은 압도적이다. 다이버라면 이매지네이션아일랜드(Imagination Island) 리조트를 추천한다. 시설은 배낭여행자에 어울릴만한 수준이지만, 4명 기준 1박 10~15만원으로 이만한 바다를 누릴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단언한다.

기조에서 숙소를 정할 때는 ‘얼마나 친환경적인가’라는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기조의 모든 리조트들은 다이빙과 스노클링 손님이 제1고객이기 때문에 동남아의 리조트와 비교할 수 없다. 평가가 좋은 리조트일수록 바다와 주변 환경이 더 훌륭할 가능성이 높다. 가족ㆍ커플ㆍ허니문(물론 바다를 무척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팻보이스(Fatboys) 리조트를 추천한다. 공항에서 배로 20여분 떨어져 있다. 선비스(Sunbis)와 오라바에(Oravae Island Cottages)는 ‘에코 리트리트’라는 생소한 분류기준에 속하는 리조트다. 직역하면 ‘친환경 은신처’라는 뜻이다. 정말 생존을 위해 절대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것만 갖춘 지나치게 군더더기 없는 시설이다. 사람이 사는데 고작 이 정도만 필요하다면 굳이 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애쓸 필요가 있을까 싶다.

솔로몬 리조트 앞 바다.
솔로몬의 리조트를 고를 땐 시설이 아니라 얼마나 친환경적인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리조트 앞이 바로 다이빙과 스노클링 장소다.
리조트 앞 투명한 바다.

솔로몬의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다. 파푸아뉴기니를 비롯해 피지ㆍ사모아ㆍ바누아투 등 태평양의 주요 국가들이 중국의 원조와 투자를 반기고 있지만, 솔로몬과 세계 최빈국 나우루ㆍ투발루 등은 여전히 대만과 손을 잡은 상태다. 최근 팔라우도 대만과 단교하라는 중국의 요구를 과감하게 거절해 주목을 받았다. 그럼에도 솔로몬에는 가짜 여권을 소지한 중국인들이 상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 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솔로몬의 특이한 민족성 때문에 처리를 못하는 상황이다. 솔로몬은 적극적으로 중국의 원조를 받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밀려드는 중국인을 밀어내지도 못하는 골치 아픈 상황에 빠졌다.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한 때다.

솔로몬 가는 방법
기조에서 문다를 들르는 솔로몬 비행기. 좌석이 지정되어 있지 않아 선착순 탑승이다. ⓒMJ Jun2
창가 자리에서 보는 솔로몬의 바다. 선착순 탑승 비행기에서 창가에 앉아야 하는 이유다.

한국에서는 직항이 있는 브리즈번과 시드니(호주), 난디(피지)에서 가는 방법이 가장 편리하다. 일본이나 호주에서 포트모리스비(파푸아뉴기니) 혹은 포트빌라(바누아투)를 경유해 이동하는 방법도 있다. 브리즈번을 경유하면 도시 관광과 휴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솔로몬에어가 브리즈번에서 수도 호니아라까지 주 4회 운항한다. 비행시간은 2시간50분 정도다. 모든 영토가 섬이기 때문에 수도인 호니아라 국제공항에 내리면 보트나 국내선을 타고 이동한다. 기조와 문다 섬에서 호니아라로 돌아올 때는 한 비행기가 두 곳을 모두 경유한다. 어떤 때는 지정석이 없어 비행기가 도착하면 잽싸게 달려가 좋은 자리에 앉아야 한다. 경비행기로 운항하기 때문에 체크인 할 때 사람도 무게를 잰다. 자세한 여행정보는 솔로몬관광청 홈페이지 참고.

박재아 여행큐레이터 DaisyParkKor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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