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의 피해자 김태완(왼쪽ㆍ 당시 6)군과 2016년 평택 아동 암매장 사건의 피해자 신원영(오른쪽ㆍ 당시 7)군. 한국일보 자료사진

#1. 검은 봉지 한 가득 담긴 황산은 작은 얼굴을 집어삼키고도 모자랐다. 몸의 반절이 타 들어가는 고통 속에서 신음하던 아이는 49일 만에 숨을 거뒀다. 겨우 6년, 아프도록 짧은 생이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잡히지 않는다. 1999년 사망한 태완이의 친구들은 올해로 26살을 맞았다.

#2. 학교 가던 길, 순식간에 입막음을 당한 채 교회 화장실로 끌려들어 간 아이는 처참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8살 아이는 그 날로 성기와 항문 기능의 80%를 잃었다. 온 국민이 아는 그 이름 조두순, 내후년 그가 12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다. 나영이(가명)가 만 스무 살이 되는 해다.

#3. 닷새 동안 한 끼도 먹지 못한 아이는 3개월을 욕실에 갇혀있었다. “엄마…엄마…” 찬물 위에 락스를 뒤집어쓴 채 숨을 헐떡거리며 죽어가는 사이 친부와 계모는 족발에 소주를 시켜먹었다. 이불에 둘둘 만 아이를 베란다에 던져 둔 그들이 주고받은 대화. “어디에 묻을까?” 그렇게 실종됐던 원영이는 평택의 야산에서 발견됐다. 고작 15㎏. 학교 갈 나이에 서너 살 아이처럼 가벼웠다.

태완이, 나영이, 원영이… 아이들의 꽃 같은 이름은 모두의 가슴속에 영영 쓰라릴 낙인이 됐다. 무관심이 무능으로, 무능은 다시 무관심으로 악순환 됐다. 태완이를 죽인 대구 황산테러 사건의 피의자는 살인죄 공소시효의 만료로 잡을 수 없게 됐고, 나영이를 성폭행한 조두순은 “술에 취해 있었다”는 이유로 심신 미약 상태를 인정받아 형이 줄었다. 부모가 원영이를 욕실에 가둔 동안, 아동 기관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부모의 말만 믿고 돌아갔다. 여린 아이들의 생살이 찢어지고 타 들어가는 동안, 모두가 뒷짐을 졌다. 그 이후는 어땠을까. 세상은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까.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 사건으로 숨진 고 김태완군의 아버지 김동규씨가 2014년 7월 7일 오후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진실을 밝혀달라는 내용의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태완이법’ 만들었지만 단죄할 수 없는 황산 테러범

“엄마, 언제쯤 볼 수 있는데? 너무 깜깜하다.”

1999년 5월 20일 오전 11시, 대구 동구 효목동의 주택가 골목길에 태완이는 쓰러졌다. 남자는 검은 봉지에 담긴 황산을 아이의 얼굴에 통째로 쏟아 부은 뒤 유유히 사라졌다. 여섯 살짜리 아이의 몸은 너무 작았다. 두 눈은 곧바로 멀었고,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 황산이 몸의 절반 이상에 3도 화상을 입혔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아이의 몸은 끝없이 검게 부풀어 올랐다. 눈을 감았던 붕대에서 각막 조각이 떨어져 나왔다. 불이 꺼져 엄마를 볼 수 없는 걸로만 알고 있었던 아이는 깜깜한 어둠 속을 헤매다 49일 만에 눈을 감았다. “태완아, 엄마랑 아빠가 그 나쁜 사람 잡아서 꼭 혼내줄게.” 죽어가는 아이 앞에 무력했던 부모의 마지막 약속은 2015년 7월 10일, 영영 지킬 수 없는 것이 됐다.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난 탓이었다.

당시 현장에서 도주한 범인을 잡을 방법은 묘연했다. 대낮이었지만 유일한 목격자는 청각장애인이었고, 제대로 진술을 할 수 없었기 때문. 그나마 있던 증거도 무용지물이 됐다. 피의자로 지목된 사람의 신발이 다른 증거품과 섞이는 바람에 훼손된 것. 부모는 고통 속에서 깨어난 아이를 붙잡고 ‘그 날의 기억’에 대해 재차 물을 수밖에 없었다. 타버린 혀가 딱딱하게 굳어 말을 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태완이는 꿋꿋이 말을 이어갔다.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당사자의 증언. 그러나 경찰은 묵과했다.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 어린아이가 한 말은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서영교 의원이 2015년 7월 21일 국회 정론관에서 일명 ‘태완이법’의 법사위 소위원회 통과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공소시효 만료 나흘을 앞두고 태완이 가족은 재정신청을 냈다. 지상파 방송사 두 곳의 시사프로그램이 연이어 태완이 사건을 다루자 장기미제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다. 당시 태완이의 엄마, 아빠가 캠코더로 기록한 태완이의 증언을 ‘진술 분석 전문가’들이 재분석해 경찰에 제출했다. 돌아온 대답은 같았다. “물증과 목격자가 없으니 사건 해결은 불가능하다.” 항고와 재항고를 거듭하던 2015년 7월 10일, 사건의 공소시효는 허망하게 끝났다. 그로부터 2주 후, 국회 본회의엔 모든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올라왔다. 반대 0표로 통과된 이 법안의 이름은 ‘태완이법’. 그 후 3년째,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부터 드들강 여고생 살인사건까지 10년 넘게 미제로 남아 있던 사건들의 진범이 속속 밝혀지고 있지만, 정작 태완이에게 황산을 뿌린 진범은 이제 잡을 수 없다. 단 보름 차이로 ‘이미 시효가 끝난 사건’이 돼 소급 대상에서 제외된 탓이다. 그럼에도 태완이 어머니는 말한다. “제2, 제3의 태완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 법안은 반드시 통과돼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태완이가 소환한 장기미제사건들은 지금도 숨어버린 범인을 찾고 있다.

2010년 3월 16일 경북 청송교도소를 방문한 이귀남(오른쪽) 당시 법무부 장관이 최근 제2교도소에 수감된 조두순(왼쪽)과 감방 철창 사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ㆍ법무부 제공
술에 취했단 이유로 감형? 제2의 조두순은 안 돼

“피고인을 징역 12년에 처한다.”

2008년 12월 11일,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었던 아침은 한 아이의 삶을 뒤바꾼 끔찍한 시간이 됐다. 등교하던 나영이(가명ㆍ당시 8살)를 막아선 것은 술에 취한 50대 남성. “너 이 교회 다니니?” 조두순(66ㆍ당시 56)이었다. “아뇨”란 짧은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나영이를 들쳐업고 그 건물의 화장실로 끌고 간 조씨는 주먹으로 아이의 얼굴을 수 차례 때리고 목을 졸라 기절시킨 후 잔혹하게 성폭행했다. 징역 12년 형을 선고한 판결문엔 ‘영구적 상해’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아이는 평생 인공항문을 통해서 배변해야 하는 장애를 얻었다. 나영이 아버지는 말한다. “설사병 나면 하루 종일 화장실 들락날락해야 하고 고생이잖아요. 우리 아이는 매일의 일상인 거예요. 매시간 화장실을 가야 하고… 하루에도 샤워를 몇 번씩 해요.” 치료는 아이의 성장도 더디게 했다. 열 여덟 살이 된 지금도 낯선 이가 불쑥 말 거는 것을 꺼린다. 당연히 누려야 했을 일들이 모든 것을 걸어 쟁취해 내야만 하는 것이 됐다. 그것은 바로 ‘평범한 일상’.

징역 12년에 온 국민이 분노한 것은 바로 그 이유였다. 아이가 견뎌야 할 고통의 세월에 비해 조씨의 형기는 너무나 가벼웠던 것. 게다가 ‘술에 취해 있었다’는 이유로 감형을 받았다면? 실제로 1심 판결은 ‘당시 조씨는 음주 상태로 심신 미약했다’는 변호사의 주장을 인정했다. 검찰의 별다른 반발이 없었기에 ‘주취 감경’ 처리가 그대로 진행된 것. 일단 인정만 되면 감형을 하고 안 하고는 판사의 재량이 아니기에 형은 가벼워질 수밖에 없었다. 진짜 문제는 ‘술 먹고 저지른 범죄에 지나치게 관대한 법’에 있었던 것이다.

2010년 부산 여중생 강간살해 사건의 피의자 김길태(왼쪽)와 신길동 초등생 납치 성폭행 사건의 피의자 김수철(오른쪽). 두 사람 모두 범행 당시 '음주 상태'였다는 것을 강조해 감형을 받으려고 했지만 무기징역을 받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 일을 계기로 양형기준이 바뀌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아동성범죄 양형기준 강화방안’을 마련해 술을 마셨더라도 ‘심신미약’에 이르지 않은 상태에서 아동성범죄를 저질렀다면 형을 감경받을 수 없게 했다. 이미 형을 살고 있는 조두순을 다시 심판대로 소환하지는 못했지만, 조두순의 사례를 교활하게 베껴 ‘눈 가리고 아웅’을 시도한 제2, 제3의 조두순에게 적용할 순 있었다. 2010년 여중생 이모(13)양을 성폭행한 후 살해, 유기한 김길태(41ㆍ당시 33)는 법정에서 “술에 취해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고 진술했지만 형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은 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마찬가지로 같은 해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1학년 여아를 납치해 성폭행한 김수철(53ㆍ당시 45) 역시 “술에 취해 경황이 없었다”는 주장을 했으나 “범행이 계획적”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꼼짝없이 무기징역을 살게 됐다. 양형기준만으론 허술한 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아예 국회가 나서 법을 바꾸기도 했다.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발생한 성범죄에 있어서 만큼은 법관의 재량으로 심신 미약 감형 규정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 조항(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 특례법 20조)이 2013년 새롭게 마련됐다.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성폭력 처벌법에 추가된 조항. 박지윤 기자

조두순이 출소하는 해, 나영이는 스무 살 성년을 맞는다. 꿈은 의사다. 자기처럼 아픈 사람을 고쳐주는 일을 하고 싶단다. “성폭력 피해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지 않고, 제 하고 싶은 일을 다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게 부모로서의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나영이 아버지의 작은 ‘바람’은 우리의 ‘숙제’다. 지켜주지 못한 아이에게 가해자 단죄의 과정을 보여주지 못했다면, 적어도 튼튼히 발 디디고 설 수 있는 안전망은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계모에게 학대 받다 숨진 신원영군의 유골함이 경기도 평택시 청북면 평택시립추모관에 안치되어 있다. 연합뉴스
차가운 땅 속의 원영이가 호출한 ‘학대받는 아이들’

추운 겨울, 맨발로 가스 배관을 타고 내려온 아이가 당도한 곳은 슈퍼마켓. 닥치는 대로 품 안에 과자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뼈와 가죽만 남은 아이의 늑골은 부서져 있었고, 온몸은 시퍼랬다. 2년 동안 학교에 가지 못한 예린이(가명ㆍ당시 11)는 이미 사회에서 ‘지워진 존재’였다. 2015년 12월 12일 인천시 연수구에서 열한 살짜리 아이가 친아버지의 학대를 피해 집을 탈출한 이 사건은 장기결석 아동 전수조사의 시발점이 됐다. 고구마 줄기 캐듯 사라진 아이들의 존재가 드러났다. 그 아이들 속에 원영이(당시 7)가 있었다. 계모 김모(40ㆍ당시 38)씨의 학대 수법은 상상을 넘어섰다. 아버지라는 이름이 아까운 친부 신모(40ㆍ당시 38)씨의 방치 또한 공분을 샀다. 이들은 사라진 아이의 행방을 캐묻는 경찰 심문에 “부부싸움을 하다 아들을 길에 버렸다”고 대답했다. 경찰은 이미 죽어 땅에 묻힌 아이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전단을 돌리고 드론까지 띄웠다. 그들이 단순히 매정한 부모가 아닌 살인자들이었다는 사실은 뒤늦게 밝혀졌다.

드러난 사실은 끔찍했다. 1년 중 가장 추운 석 달간, 원영이를 화장실에 가둔 계모 김씨는 하루에 한 끼씩 주며 수틀릴 때마다 청소용 솔로 아이의 몸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발가벗겨진 채 찬물 세례를 받은 아이는 맹독성 락스 원액을 뒤집어 쓰고 “엄마”를 외치며 몸부림치다 숨을 거뒀다. 사망 40일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원영이의 사인은 ‘굶주림과 다발성 피하출혈 및 저체온’. 굶기고 때리고 차가운 곳으로 내 몬 계모와 친부는 살인자였다. 이름 없는 산, 언 땅 아래 소리 없이 묻혀 있던 아이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추웠다. 김씨와 신씨에겐 살인죄가 인정돼 각각 징역 27년과 17년이 선고됐다.

2016년 3월 14일 오후 계모 김모씨(왼쪽)와 친부 신모씨가 현장검증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경기도 평택시 비전동 평택경찰서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원영이만 없으면 남편과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수사 과정에서 나온 계모 김씨의 발언이 다시 도마에 오르며 ‘재혼 가정 내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뒤늦게 모아졌다. 이번엔 법 대신 제도가 바뀌었다. 서울가정법원이 나서 부모들은 ‘아동학대방지교육’을 받지 않으면 이혼할 수 없도록 의무화한 것. 학대를 저지를 경우 친권, 양육권에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과 구타는 물론, 폭언과 방임 등의 정서적 폭력 또한 아동학대라는 사실이 내용에 포함됐다. 보건복지부는 원영이처럼 집 안에만 머물면서 ‘학대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아이들을 위해 ‘아동학대 조기 발견체계’를 구축하기도 했다. 교사와 공무원이 무단결석 아동의 가정을 주기적으로 직접 방문해 학대 여부를 확인하게 하는 방침.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시범사업 형태로 진행되던 이 제도는 올해 4월부터 전국으로 확대됐다.

얘들아, 더 나은 세상을 약속할게

만약 그날로 돌아가 모든 것이 ‘없었던 일’이 된다면, 1993년생 태완이는 스물다섯의 푸른 청년이, 1999년생 나영이는 열아홉의 명랑한 숙녀가, 2009년생 원영이는 초등학교 3학년 장난꾸러기가 돼 있었을 것이다. 두 아이의 미래는 영영 사라졌고, 한 아이의 현재는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힘겹다. “마음의 상처는 평생 씻겨지지 않을 것 같아요.” 나영이 가족은 아직 아픈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세상은 분명 조금씩 달라졌다. 살인죄 공소시효가 폐지됐고, 성범죄자의 주취 감경 조항은 자취를 감췄으며, 아동학대의 사각지대를 밝혀내려는 노력은 진행 형이다. 그러니 태완, 나영, 원영… 이 꽃 같은 이름들을 쉬이 가슴에 묻어선 안 될 일이다. 이 아이들의 이름 뒤에 가려진 수 많은 다른 아이들의 이름까지도. 여리고 약해서 더 무참하게 희생된 그 이름들 앞에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담아서.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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