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기자 초년병 시절. 회사에서 야근할 때면 심심찮게 걸려오는 전화가 있었다. “OOO 사건이 벌어진 게 몇 년도죠?”, “월드컵에서 첫 골을 넣은 선수가 누구였습니까?” 대개 술자리에서 벌어진 내기의 승자를 가리기 위한 ‘팩트 확인’ 전화들이었다. 바쁜 사람 속 뒤집는 질문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전화가 사라졌다.

네이버의 등장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검색창에 단어 몇 개를 쳐 넣으면 웬만한 궁금증은 모두 해결됐다. ‘세상의 모든 지식’이란 슬로건을 내걸 정도였으니 네이버의 위력은 대단했다. 네이버가 맞다고 하면 맞는 것이고, 틀리다고 하면 틀린 걸로 받아들였다. 교과서였고, 절대 권력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끼리 ‘모르는 건 네이버에게 물어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네이버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개인적으론 음악과 영상 콘텐츠가 가장 아쉬웠다.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을 검색하면 ‘시골에 도착했을 때의 유쾌한 감정’, ‘시냇가의 정경’ 같은 악장 별 표제어를 파악할 순 있다. 그러나 이런 텍스트만으로 전원 교향곡의 멜로디를 상상하는 건 연애를 글로 배우는 것만큼이나 무모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된 건 유튜브 덕분이었다. 일일이 확인해볼 순 없지만 유튜브에선 거의 모든 작곡가의 거의 모든 작품을 들을 수 있다. 같은 작품도 연주자ㆍ지휘자 별로 비교해가며 고화질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젊은 세대의 온라인 소통 방식이 글자에서 이미지, 영상, 나아가 라이브 중계로 진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콘텐츠 경쟁력을 비교하는 건 무의미 하겠다. ‘골프 그립 잡는 법’이 궁금해 검색한 사람에게 ‘왼손의 집게손가락 두 번째 마디를 기준으로 그립의 중간 부분을 왼쪽 손바닥 위에 사선으로 얹는다’는 글에 사진 몇 장 끼워 보여주는 것과 “이렇게 해보세요”라며 직접 시범을 보이는 동영상을 보여주는 것. 선택은 뻔하다.

유튜브는 ‘~하는 법’을 담은 ‘하우 투 콘텐츠’의 천국이다. 게임ㆍ요리ㆍ화장ㆍ골프ㆍ공부하는 방법 등은 기본. 기성 세대의 눈엔 ‘쓸데 없는 짓’인 ‘영화처럼 손가락으로 휘슬 부는 법’, ‘알루미늄 호일을 갈고 닦아 은색 공으로 만드는 법’ 영상은 수백만회의 조회수를 뽐내는 인기 콘텐츠들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요즘 10, 20대들이 네이버 대신 유튜브에서 정보 검색을 한다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앱 사용 분석 업체인 와이즈앱이 조사해보니 올해 2월 한국인의 모바일 앱 소비 시간은 유튜브가 257억분으로 1위였다. 2위 카카오톡(179억분), 3위 네이버(126억분)를 압도했다. 1995년 이후 태어나 유치원 시절부터 스마트폰을 접한 ‘Z세대’ 중 절반 이상은 ‘유튜브 없이 살 수 없다’고 답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들은 유튜브 콘텐츠의 소비자이자 적극적인 생산자이기도 하다. 소소한 자신들의 일상을 영상에 담아 공유하고, 누군가 공부하는 영상을 올리면 그 영상을 틀어놓은 채 함께 공부할 정도다.

유튜브 창업자인 스티브 첸은 자서전 ‘유튜브 이야기’에서 “유튜브가 플랫폼으로 자리잡은 것은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구인 과시, 공유, 숭배, 재미를 충족시켰기 때문”이라고 했다.

네이버는 유튜브가 주도하는 이런 트렌드에 대해 “위기감을 느낀다”고 인정했다. 절대강자였던 네이버가 이럴 정도면 올드 미디어인 신문은 말할 것도 없겠다. 고객들은 ‘편집되지 않은 날것의, 아주 자세하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원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당신들이 알아야 할 정보는 이런 것들이야”라면서 일방적으로 던져주고 있진 않은지.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품고 살았는데, 정작 펜으로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는 빈약할 뿐이고. 검색 권력을 교체한 Z세대들은 “이런 뉴스 따위 필요 없어”라고 외치는 듯한데 우리는 앞으로 무얼 보여줄 수 있을까, 불안하고 두려워진다.

한준규 디지털콘텐츠부장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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