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구멍 경쟁' 뚫고 악장 수석 같은 중요한 자리 잇달아 꿰차

바렌보임 지휘 獨 슈타츠카펠레
이지윤 만장일치로 종신 악장에
박지윤은 라디오프랑스 악장 올라
관악기도 악장ㆍ수석 등 잇달아
콩쿠르 통해 한국 실력 인정 받은 덕
왼쪽부터 박지윤, 이지윤, 조성호, 김유빈, 김홍박

독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는 마에스트로 다니엘 바렌보임(76)이 이끄는 명문 오케스트라다. 이 오케스트라를 대표하는 악장은 26세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이다. 지난해 9월부터 이 악단 최초 아시아인 악장이자 최연소 악장으로 활동한 그는 최근 단원 투표에서 만장일치로 종신 악장 지위를 수여 받았다. 프랑스 대표 악단인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악장 3명 중 한 명도 한국인이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33)은 2011년부터 프랑스의 페이 드 라 루아르 국립오케스트라의 첫 동양인 악장으로 활동해오다가 최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첫 한국인 악장이 됐다. 9월부터 단원으로 합류하는 그는 4개월 수습 기간을 거친 뒤 종신 단원 여부가 결정된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연주자들이 늘고 있다. 정단원이 되기도 어려운데 ‘수석’ 혹은 ‘악장’을 맡고 있다. 한국 연주자들의 빼어난 실력이 인종 차별의 벽까지 무너뜨리고 있다는 평가다.

10년 전만 해도 유럽 오케스트라의 한국인 단원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유수 오케스트라 단원 명단에서 한국인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독일 베를린 콘체르트 하우스 오케스트라의 경우엔 한국인 정단원만 4명이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31)은 지난 1월부터 이 악단 악장을 맡고 있다. 이지혜(32)는 2015년부터 독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에서, 윤소영(34)은 2012년부터 스위스 바젤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으로 활동 중이다.

관악주자들의 활약도 만만치 않다. 호르니스트 김홍박(36), 클라리네티스트 조성호(33), 플루티스트 김유빈(21)은 각각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베를린 콘체르트 하우스 오케스트라 종신수석이다. 쾰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플루티스트 조성현(28),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수석 바수니스트 유성권(30),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 허바우에서 활약 중인 오보이스트 함경(25)도 있다.

수석은 각 악기 파트를 대표하는 연주자다. 오케스트라 곡에서 각 악기의 솔로 파트를 소화하는 연주자가 수석이다. 연주력이 뒷받침 돼야 하는 건 기본이다. 뿐만 아니다. “오케스트라 전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바로 옆의 연주자는 물론 주변 악기들과 앙상블을 이루며 그룹을 이끄는 리더십도 필요”(김유빈)하다. “연주력은 물론 단원들이 수석을 온전히 믿고 따라올 수 있도록 신뢰를 쌓는 것도 중요”(조성호)하다. 악장은 제1바이올린의 리더를 일컫는 말이다. 악장은 현악 파트는 물론 오케스트라 단원 전체를 대표한다. 지휘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활을 쓰는 위치(보잉)나 음악적 표현을 통일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지휘자가 신호를 줘도 앞에 앉은 수석들이 머뭇거리면 뒤에 있는 단원들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늘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하는”(박지윤) 자리다.

수석과 악장의 위치가 중요한 만큼 오디션 과정은 길고 까다롭다. 오케스트라의 단원 모집은 보통 공석이 생겼을 때에야 가능하다. 관악기는 현악기보다 인원이 훨씬 적어 오디션 자체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악장 오디션에는 오케스트라 경험이 십수년인 연주자부터 젊은 연주자까지 전 세계 실력자들이 모인다. 하지만 서류를 통과해 오디션 초청장을 받는 사람은 지원자의 30~50%뿐이다. 통상 3차에 걸친 연주 오디션에서도 오케스트라와 맞는 연주자를 찾지 못하면 그냥 자리를 비워둔다. 김홍박은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7번 만에 찾은 수석 연주자였고, 조성호는 20년 만에 열린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오디션에 합격했다. 김유빈은 “처음 입단 오디션도 까다롭고 어렵지만 종신 단원이 되는 과정까지가 가장 긴장되고 힘든 것 같다”고 했다. 1~2년의 수습기간을 거친 뒤 전 단원의 비밀투표를 통해 종신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클래식 전통이 오래 된 유럽 악단의 주요 자리에 한국 연주자들이 서는 건 그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이지영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과장은 “콩쿠르 우승자 배출은 물론 현지 학교에서 수학하며 활동 중인 연주자들이 많아진 지 어느덧 10년 이상이 됐다”며 “특히 유럽에서 젊은 한국인 악장과 수석 연주자들이 늘어나는 건 유럽 내 인식도 변화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김홍박은 “처음에는 여기저기 이력서를 제출해도 오디션 초청장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현악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인식이 있던 금관악기에서도 아시아인들이 인정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 단원은 역할이 다르다. 오케스트라 내부에서는 음악의 전체적인 흐름을 듣고 자신의 색깔보다는 조화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덜 자유롭다는 의미다. 반면 교향곡, 협주곡, 오페라까지 더 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연주자들은 더 다양한 곡을 연주하기 위해 오케스트라 입단을 택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독주자로서 계속 무대에 초청받기가 쉽지 않은 만큼 안정적으로 연주 기회를 늘릴 수 있다는 점이 오케스트라의 매력이다. 조성호는 “솔로 연주를 할 때 가장 큰 즐거움을 느끼지만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했을 때 클라리넷이라는 악기는 솔리스트로 사는 삶만을 고집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며 “좋은 악단에서의 활동이 솔리스트로서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악장 역시 한 오케스트라에 3~4명씩 두는 경우가 많아 솔리스트로 활동을 이어갈 기회가 충분하다. 박지윤도 라디오 프랑스 악장과 동시에 ‘트리오 제이드’ 멤버로도 활동할 계획이다. 그는 “예전엔 외국에서 공부하고 바로 한국으로 귀국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새는 해외 오케스트라에 취업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모두가 솔리스트를 꿈꾸는 게 아니라 실내악, 오케스트라 연주자로 시야가 넓어지고 있다”고 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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