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를 떠난 전설 김주성이 1일 서울 본동 자택 인근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코트와 이별한 지 2주가 지났다. 한국프로농구의 전설 김주성(39)은 아직 은퇴한 기분을 느끼지 못한 채 선수 때와 다름 없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1일 서울 동작구 본동의 자택 인근에서 만난 그는 “시즌 끝나고 누리는 휴가처럼 똑같이 지내고 있다”며 “다가오는 시즌 준비를 위해 팀 훈련을 소집할 때나 ‘은퇴했구나’라는 것을 실감할 텐데, 아직까지는 은퇴한 선수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특별히 못 느끼겠다”고 말했다.

농구 선수로 남들보다 출발은 늦었지만 김주성은 정상의 자리에서 더 오래 뛰고, 불멸의 기록도 남겼다. 그는 중학교 시절 농구대잔치와 드라마 ‘마지막 승부’, 만화 ‘슬램덩크’에 꽂혀 친구들과 농구를 즐기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정식 선수로 입문했다. 초ㆍ중학교 시절부터 농구 선수의 길을 걷는 이들과 달리 농구를 늦게 시작한 탓에 김주성은 “구력이 짧아 일찍 농구를 했던 친구들과 기본기의 차이가 크다”고 스스로를 낮춘다.

그러나 200㎝가 넘는 키에 높은 점프력 그리고 달리는 농구를 할 수 있는 스피드 등 자신의 장점을 앞세워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중앙대 1학년이던 1998년 대표팀 막내로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당대 최고의 ‘빅맨’ 서장훈, 현주엽, 전희철 등 선배들과 골 밑을 책임지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 해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 주인공은 당연히 김주성이었다. 원주 TG삼보(현 DB)은퇴를 앞두고 플레잉코치로 뛰던 ‘농구대통령’ 허재는 당시 신인드래프트 자리에서 만세를 불렀다. 김주성은 “신인드래프트 순간은 기억이 지금도 정말 생생하다”며 “프로에서 새로운 도전을 앞둔 자리라서 긴장도 많이 했고, 그 긴장감을 은퇴할 때까지 갖고 뛰었다”고 말했다.

2008년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던 당시의 모습. 연합뉴스

프로 첫 시즌(2002~03)부터 신인왕과 함께 팀의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이끌며 한국 농구 전설로서 첫 발을 뗀 그는 수 많은 업적(정규리그 우승 5회ㆍ챔피언 결정전 우승 3회ㆍ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2회ㆍ챔프전 MVP 2회ㆍ올스타전 MVP 1회)을 남겼다. 높은 탄력을 앞세워 상대 슛을 막아서는 블록슛은 통산 1,037개(최다 1위)로 당분간 누군가가 쉽게 깨기 힘든 불멸의 기록이다. 현재 통산 블록슛 2위는 찰스 로드(561개)인데, 외국인 선수 신분이라 외국인 제도 변경이 잦은 KBL 무대에서 지속적으로 뛸 수 없는 환경이다. 현역 토종 선수 가운데 블록슛 2위는 하승진(33ㆍ전주 KCC)의 363개다. 그래서 김주성이 가장 애착을 갖는 기록은 블록슛이다.

또 남자 선수로는 유일하게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2개(2002 부산ㆍ2014 인천)를 목에 건 것도 자부심을 느낀다.

이번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고도 챔프전에서 서울 SK에 패해 준우승에 그친 것은 아쉽지만 김주성은 늘 자신을 “행복한 선수였다”고 표현한다. 한국 농구의 황금기를 열었던 선배들과 최고의 순간을 만들었던 2002 아시안게임 금메달, 2005년 TG삼보의 야전사령관 신기성-‘빅맨’ 자밀 왓킨스 등과 이뤄낸 두 번째 챔프전 우승, 윤호영-로드 벤슨과 ‘동부산성’을 이뤄 사상 최초 8할 승률(0.815ㆍ44승10패)을 달성한 순간을 농구 인생의 명장면으로 꼽았다.

김주성과 서장훈의 매치업 장면. 연합뉴스

김주성은 또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최고의 ‘베스트 5’를 선발해달라는 말에 한참을 고민한 뒤 답했다. 포인트가드 강동희(이상민), 슈팅가드 허재, 스몰포워드 문경은, 파워포워드 현주엽(전희철), 센터 서장훈. 역대급 ‘베스트 5’다. 김주성은 “19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며 빼어난 실력을 선보였던 선배들 모두가 베스트 5”라면서 “나는 선배들 틈에 끼지도 못한다”고 자세를 낮췄다.

김주성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마지막으로 그는 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끝까지 노력했던 선수로 남고 싶다”고 했다. 코트에서 승리를 위해 부지런히 뛰고, 코트 밖에선 연금 기부와 연탄 배달 등 따뜻한 나눔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하며 박수 받는 레전드로 남았지만 과거 경기 중 다소 과격한 행동을 했던 것을 두고 눈살을 찌푸린 팬들도 있었다. 김주성은 “코트에서 승부욕이 발동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팬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보여줬으면 고쳐야 하는 것이 맞다”면서 “그래서 지난 몇 년간 고치려고 노력했다. 팬들이 있어야 선수도 있기 때문에 후배들도 팬들이 좋아하지 않는 부분들을 고쳤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당부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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