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일원 되겠다는 의지 전세계 보여줘
정상국가 계획 권력승계후 일관된 전략인 듯
문재인, 트럼프 때 아니면 더 이상 기회 없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환담을 하는 모습.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최대 목표는 정상국가 지도자로서의 이미지 부각이었다.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겠다는 의지를 전세계에 보여주고자 했다. 군사분계선 월경, 국군의장대 사열, 도보다리 산책, 이설주 여사 만찬 참석 등 일련의 장면은 그의 서방세계 데뷔전이었던 셈이다.

우리도 북한의 의도를 알고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하루만의 일정이었는데도 빠듯한 시간을 쪼개 다양한 친교행사를 마련했다. 북한이 정상국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알리려는 배려였다. 남북의 노력은 적잖은 성과를 거뒀다. 외신은 “독재자 김정은은 잊어라. 국제 정치인 김정은이 온다”는 긍정적인 보도를 쏟아냈고, 국내에서도 “잔인한 인물” “전쟁광”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상당부분 희석됐다. 과감하고 솔직하고 직설적이며 때론 유화적인 어법은 어느 국가와도 대화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인상을 심어줬다.

김정은의 변신을 둘러싼 해석이 구구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식의 추론은 합리적이지 않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효과라는 분석도 일면적이다. 한 나라의 미래가 달린 국가 전략을 초단기간에 급선회하는 모습은 전쟁이나 혁명으로 인한 정권교체가 아니고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상국가에 대한 김정은의 열망은 그가 권력을 승계할 때부터 시작됐다고 보는 게 설득력이 있다. 집권한 지 얼마 안된 2013년 김정일의 ‘선군정치’ 대신 핵ㆍ경제 개발 병진노선을 앞세울 때부터 그는 지금과 같은 모습을 그렸을 것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결합한 핵무장은 미국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생존무기지만 방어가 아닌 공격무기로 이용하는 순간 자살무기가 된다는 것은 김정은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핵 무력 완성만이 완벽한 체제 보장을 얻어낼 수 있다는 계산도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닉슨 미국 행정부 당시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 핵전쟁을 거론하며 소련을 위협, 북베트남을 협상에 나서도록 하는데 성공하면서 고안된 ‘미치광이 이론’이 여기에 해당한다. 북한이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직후 보인 치밀하고 철저한 행동은 이를 실증한다.

정상국가 지도자는 국민의 행복한 삶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어릴 때부터 서구를 경험한 김정은은 민생경제에 대한 관심이 컸을 것이다. 김일성이 국가 정통성의 바탕을 일궜고 김정일이 선군사상으로 정통성과 안보를 이뤄놓은 상황에서 김정은이 역점을 둘 것은 경제를 살리는 것밖에 없다. 권력 승계 직후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한 김정은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다”고 북한 지도자로서는 이례적으로 인민 앞에 반성했다.

김정은의 정상국가 염원이 오로지 인민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 경제난이 기폭제가 돼 풀뿌리 자본주의가 급성장했다. 북한 국내총생산(GDO)의 70%가 장마당을 포함한 민간부문에서 발생한다는 보고도 있다. 이미 국가가 모든 인민의 경제생활을 책임질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국가의 통제력은 물론 최고권력자에 대한 개인숭배도 약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과 대적하려다가는 내부 체제마저 위태로울지 모른다는 고민은 현실적일 수 있다.

김정은의 계산이 그렇다면 남한에 평화공존 지향적인 정권이 들어서고, 승부사 기질이 다분한 사업가 출신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있는 지금이 적기다. 그에 대한 미국의 평판도 달라졌다. 트럼프는 “김정은은 매우 개방적이고 훌륭하다”고 평가했고 김정은을 직접 만난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똑똑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 “꼬마 로켓맨”이라고 조롱하던 때와는 판이하다.

김정은은 이번 회담에서 시종 ‘이행의지’를 강조했다. 이는 남북만이 아니라 북미간에도 해당된다. 북미회담에서 핵 포기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 그의 말대로 “인민들의 웃음소리가 나는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길은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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