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노믹스’ 1년 불구 규제완화 제자리
규제샌드박스 도입부터 국회 ‘공회전’
‘규제완화=대기업 특혜’인식 고쳐야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로 가는 길을 활짝 열어젖힐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불과 수 개월 전만 해도 일촉즉발 상황까지 갔던 한반도 긴장이 크게 누그러졌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정부의 대북정책은 일부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정상회담 퍼포먼스가 화려할수록 더욱 어둡고 초라해 보이는 국정의 다른 한 축이 있다. 바로 경제다. ‘사람 중심 경제’니‘소득주도성장’이니 다 좋은데, 왜 우리 경제의 미래를 열어갈 새로운 성장엔진은 여전히 공회전만 하고 있는 건가.

‘J노믹스’가 가동된 지 1년이다. J노믹스는 나라의 부(富)를 늘리는 것보다, 그 부를 골고루 나누는 것, 곧 분배를 우선한 정책이다. 일자리 창출이 그렇고, 소득주도 성장책도 결과적으로는 분배정책이 돼버렸다. 돈 벌 생각은 없고, 나눠먹을 생각만 한다는 비판과 우려가 커졌다. 그러자 정부는 “그렇지 않다, 이 정부도 경제를 성장시키고 돈 벌 생각도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혁신성장’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LG사이언스파크 개소식에 참석했다. 지난 2월부터 시작된 대통령의 4차 산업혁명 기술 관련 대기업 방문의 세 번째 행보였다. 문 대통령은 앞서 한화큐셀의 태양광 단지를 방문했고, 현대차를 찾아 자율주행차를 탔다. LG사이언스파크는 LG그룹이 총 4조원을 투자한 국내 최대 연구개발(R&D) 단지다. 인공지능(AI), 로봇, 차세대 부품소재, 바이오 등 미래사업 연구개발을 수행한다. 문 대통령은 LG사이언스파크를 가리켜 “대한민국 혁신성장의 미래”라며 “마음껏 연구하고 사업할 수 있도록 신기술ㆍ신제품을 가로막는 규제를 풀겠다”고 했다.

하지만 혁신성장을 뒷받침할 규제완화는 현 정부 출범 1년이 되도록 제대로 된 게 거의 없을 정도다. 당장 대통령이 번번히 약속한 ‘규제 샌드박스’ 도입부터 공전하고 있다. 정부가 규제 샌드박스 추진을 공식화한 건 지난해 8월이다. 당시 정부는 “하반기에 제도 도입을 중점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규제특례법 개정안’ 등 관련 5개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건 지난 1월까지 늦춰졌다. 게다가 가뜩이나 늦어진 규제 샌드박스 관련법 처리가 국회에서 다시 발목이 잡혔다. 야당이 이전 정부 때 제안해 둔 ‘규제 프리존’ 법안의 동시 처리를 주장하며 ‘규제 샌드박스’ 법안 처리를 거부한 것이다.

야당이나 국회를 싸잡아 욕할 일만은 아니다. 구체적 내용은 달라도 ‘규제 샌드박스’나 ‘규제 프리존’은 모두 규제완화를 겨냥했다는 점에서 같다. 야당으로서는 규제 샌드박스가 규제 프리존의 유사품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규제 샌드박스만 맞다며 야당 안은 버리라고 하니, 일이 풀릴 리 없었다. 정부ㆍ여당은 여야 공동법안이라도 추진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저 국회 욕만했다. 이렇게 보면 규제완화 법안 처리 불발의 가장 큰 책임은 현 정권의 정치력 부재(不在)에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짚어야 할 건 비단 정치력 부재만 문제냐는 점이다. 일각에선 정권과 여당 핵심에 규제완화 자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기류가 존재한다는 우려가 만만찮다. 구체적으론 규제완화로 대기업이 득을 보는 걸 못마땅히 여기는 세력이 있다는 얘기다. 일례로 지난 2월 산업부가 작성한 ‘규제혁신 관련 5법, 당정청 회의 참고자료’에는 ‘대기업 배제조항 필요’라는 대목이 버젓이 명기됐을 정도다.

‘규제완화=대기업 특혜’라는 편협한 인식으로는 결코 규제완화도 혁신성장도 없다. 오너 일가의 전횡, 중소기업 착취, 아이디어와 기술 가로채기 같은 재벌기업의 악질적 행태는 단호히 척결돼야 한다. 하지만 30대 민간 대기업에 쌓인 유보금만 900조원에 육박한다. 청와대와 정부ㆍ여당은 하루빨리 그 막대한 투자여력이 미래 성장동력에 투입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 남북 긴장완화도 좋지만, 규제완화가 더 시급할 수도 있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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