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베스터 스탤론이 전화로 설득
백인 복서 상대 수차례 방어 성공
결혼까지 백인과 했다고 찍혀
인신매매 방지법 악용해 징역형
첫 흑인 헤비급 챔피언인 잭 존슨. AP 연합뉴스

흑인 최초의 복싱 세계 헤비급 챔피언으로 백인들의 인종주의적 분노에 희생됐던 잭 존슨(1878~1946)이 사후 72년 만에 사면의 기회를 얻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영화 ‘록키’ 시리즈로 유명한 배우 실베스타 스탤론의 얘기를 듣고 그의 사후(死後) 사면을 검토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트위터에 “스탤론이 전화를 걸어 헤비급 챔피언 잭 존슨 스토리를 말해줬다. 그의 시련은 대단했고 그의 삶은 복잡하고 논쟁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 문제를 수년간 들여다봤고 대다수는 그렇게(사면해야) 될 거로 생각했다. 내가 사면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존슨은 1908년 백인의 전유물이던 복싱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지만 거센 반발에 직면해야 했다. 백인들은 흑인에게 빼앗긴 챔피언 타이틀을 되찾겠다며 ‘위대한 백인의 희망’을 물색했으나, 도전에 나선 여러 백인 복서들은 번번히 무릎을 꿇었다. 급기야 무패로 은퇴한 전 헤비급 챔피언 제임스 제프리스까지 복귀해 세기의 흑백 대결을 벌였으나 그 역시 15라운드 KO패를 당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 당시 미 전역에서 폭동이 일어나 수십 명이 죽었는데 피해자 상당수가 흑인이었다.

존슨이 특히 백인들을 분노케 했던 것은 당대 엄격한 금기였던 백인 여성들과 대놓고 데이트를 한 것이었다. 결혼 1년 만에 자살한 첫 부인이 백인이었고 두 번째 부인도 18살의 백인이었다. 실력으로 그를 제압할 수 없었던 백인들은 결국 인종차별적 법으로 옭아맸다. 1910년 매춘 등의 목적으로 여성을 주 밖으로 이송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의 맨법(Mann Act)이 제정됐는데, 인신매매를 막는다는 취지였으나 백인 여성과 사귀는 흑인을 처벌하는 데도 이용됐다. 존슨은 백인 매춘부와 주 경계를 넘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배심원단은 모두 백인이었다. 그는 7년간 유럽 등을 전전하다 1920년에 돌아와 1년간 실형을 살았다. 말년에는 밤무대 가수로 떠돌다가 1946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사후 잊혀진 존재였던 존슨은 2000년 대 들어 다큐멘터리, 영화, 연극 등이 만들어지면서 사면 운동이 일었다. 사후 사면은 드물긴 하지만 전례가 없지는 않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남북 전쟁 때 첫 흑인 장교로 활약한 헨리 플리퍼를 사면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2008년 아랍 이스라엘 전쟁에 참전한 찰스 윈터를 사면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그러나 사후 사면에 엄격해 존슨에 대한 사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존슨이 인종주의적 논란에 휩싸인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사면되면, 그의 삶만큼 복권 과정도 논쟁적인 셈이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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