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팍팍하고 숨가쁜 대도시서 벗어나
옛 정취 가득한 곳에서 여유 만끽
제주ㆍ강원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
#2
시간 멈춘 듯 과거ㆍ현재ㆍ미래 공존
꿈을 실현할 도전의 공간 많고
개발 따른 ‘둥지 내몰림’도 없어
#3
“아이디어 발품으로 가게 꾸리니
스스로 가능성 찾은 것 같아 뿌듯
실패 걱정요? 또 도전하면 되죠”

전남 목포시에 사는 김아영(28)씨는 요즘 골목 걷기라는 새로운 취미를 얻었다. 동네 구석구석을 찬찬히 걸으며 담벼락이나 바닥을 바라보고, 햇빛도 느껴보고, 바람 소리를 듣는다. 골목이 많고, 볕이 자주 들고, 공기가 맑은 데다 바다가 바로 옆이라 같은 곳이라도 느낌은 시시각각 달라진다. 목포근대역사관(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등 수십 년 혹은 100년 넘는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오랜 주택과 건물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그냥 간다. 하지만 전혀 아깝지 않다. 시간은 이런 걸 즐기라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주어진 시간도 충분하다. 집에서 나와 사무실까지 도보 10분.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 집 근처 새벽 수산시장이나 재래시장에서 싱싱한 재료를 구해 아침, 점심, 저녁을 집에서 만들어 먹고도 시간은 남는다.

지난해 전남 목포 원도심의 오래된 여관 ‘우진장’에 사무실을 마련한 문화기획사 ‘공장공장’의 2030 젊은이들. 이들은 서울, 대구 등 대도시를 떠나 목포를 안식처이자 새로운 도전을 펼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에게 공간을 내어준 강제윤 시인과 김지연, 김용호, 홍동우, 박명호, 김아영(왼쪽부터)씨가 목포항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 목포=김주성 기자
하루만 더 견디지 말고 당장 행복하러 가자

지난해 9월 서울 강남에서 목포로 이사 오기 전까지 김씨는 ‘잘 나가는’ 20대 사업가였다. 대학서 의상디자인을 전공한 뒤 패션 회사에서 마케팅 일을 하던 그는 인테리어 소품 관련 인터넷 쇼핑몰을 직접 운영하며 월수입 1,000만~1,500만원을 찍기도 했다. 하지만 대가가 따라야 했다. “같은 제품도 나라마다 가격이 달라 해외 사이트 찾아 조금이라도 싼 물건 찾고 직접 제품 제작도 하다 보니 매일 새벽 5시가 돼서야 퇴근했죠. 4~5시간 정도 자고 점심때 일어나 다시 사무실에 나가는 쳇바퀴 일상이었습니다. 끼니는 거의 사 먹고요.” 쇼핑몰은 잘 되고 그만큼 바빴지만 이 성공이 계속될 수 있을까 걱정됐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서울이 주는 편리함, 그리고 화려한 강남의 생활이 꼭 필요한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목포에서 청년들이 운영하는 문화기획사 ‘공장공장’이 디자이너를 뽑는다는 광고에 시선이 꽂혔다. ‘우리 하루만 더 견디지 말자’는 문구에 서울살이를 내려놨다. “다들 힘들지만 하루만 더 버티면 더 좋은 날이 올 거라며 위안 삼잖아요. 정말 그럴까, 내일도 모레도 똑같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몇 친구들도 지방으로 이사하고 저도 지방살이를 해보고 싶어서 결심했죠.”

수서역에서 고속철 SRT를 타고 2시간 만에 도착한 목포는 서울 강남과 딴판이었다. 산(유달산)과 바다(서해)가 눈앞에 있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은 예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특히 사람들은 천천히 움직이는 게 인상적이었다. 차분함과 여유로움. 이곳이라면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면접 합격 통보를 받자마자 사업체를 정리하고 짐을 쌌다.

제주, 강원에 이어 새 정착지로 떠오른 목포

돈 많이 버는 직장, 유명 대학 입학을 보증하는 고등학교와 학원, 쇼핑과 공연을 즐기기 좋은 인프라. 대도시의 장점이 얼마나 큰 행복을 주느냐에 대해 물음표를 다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불확실한 성공을 좇는 일상에 붙들리는 대신 지금의 행복을 찾아 과감히 평생을 지낸 대도시를 떠나려 한다. 그동안 이들이 목적지로 삼았던 곳은 관광지와 다름없는 제주와 강원도. 하지만 이들 지역도 어느새 북적인다. 그래서 아영씨들이 새롭게 눈을 돌린 곳, 유달산 자락이 따사롭고 포구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정겨운 목포다.

50년 동안 살아 온 서울을 떠나고 싶었다는 동화작가 윤소희씨는 사람들의 발길이 너무 많아진 제주, 추운 날씨의 강원을 대신해 따뜻하고 인심 좋은 조용한 도시 목포를 선택했다. 목포=김주성 기자

동화작가 윤소희(51)씨는 지난해 11월 목포로 왔다. 서울서 태어나 50년 동안 서울특별시민이라는 이름표를 뗀 적 없던 그는 1년 전부터 조용히 지방 행을 계획했다. 지난해 초 제대한 둘째 아들이 자취하겠다고 집을 나가면서 더 이상 곁에 두고 챙길 가족이 없고, 10년 가까이 했던 대학 강의도 그만뒀다. 살던 집 전세 만기도 다 돼 이사를 해야 했던 터라 꼭 한 번 낯선 곳에 가 자연을 제대로 즐기며 혼자 살겠다는 꿈을 실현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있는 스페인, 이탈리아, 호주, 캐나다를 떠올렸다. 하지만 너무 급격한 변화라는 지인들의 조언에 국내로 눈을 돌렸다. 먼저 제주도. 제주도는 여행을 겸해 자주 갔고 바깥에서 옮긴 사람들이 많아 탈락. 다음은 강원도. 강원도 역시 평창 올림픽 전후로 찾는 이들이 늘고 있고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싫었다. 몇 년 사이 제주, 강원의 집, 땅 가격이 많이 뛰었다는 뉴스도 부담스러웠다.

문득 목포가 떠올랐다. 인근 신안의 한 리조트로부터 10년 역사를 다룬 책 집필을 의뢰 받아 취재를 위해 몇 차례 들렀던 곳이었다. “바닷바람 불고 공기가 좋았어요. 미세먼지 걱정은 없죠. 타성에 빠진 나를 다잡으며 조금은 긴장감 있게 살고 싶은데 목포는 그게 가능한 크기여서 끌렸어요. 부동산 가격도 부담이 작었고요.”

윤씨는 2억원 조금 안 되는 서울 집 전셋돈으로 목포시 용당동의 이층집을 인수해 큐레이션 서점을 겸한 북카페를 열기 위해 공사를 진행 중이다. 지은 지 40년 넘은 집이라 1억원을 들여 수도, 전기 등 내부 기초 공사부터 하고 있다. 목포에는 참고서부터 문학작품까지 다 파는 일반 서점밖에 없으니 동화나 어린이 책 위주의 서점을 꾸리고 동화쓰기 강좌도 진행해 볼 생각이다. “싸고 맛있는 음식과 편안한 삶을 목포가 나에게 안겨줬으니 목포에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는 것을 찾아보고 있어요.”

목포의 원도심은 시간이 거꾸로 흐른 듯 일제시대 주택, 건물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하당신도시가 만들어 지며 사람들과 주요시설들은 다 옮겨간 뒤 원도심은 개발에서 빗겨났지만 목포 바깥의 많은 사람들은 도리어 그런 원도심의 모습에서 매력을 느끼고 있다. 목포=김주성 기자

특히 목포의 원도심으로 사람들이 속속 찾아오는 게 이채롭다. 목포는 2000년대 초반 하당 신도시가 생기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 새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대형할인마트, 영화관, 학원가가 들어서면서 신도심은 인구를 빠르게 흡수했다. 반면 옛 도심은 인구 유출이 심각했고 개발의 손길에서 벗어났다. 목포시에 따르면, 유달동, 중앙동, 서산동 등 원도심 일대 주민 평균 연령은 70세다. 김모(68)씨는 유달동에서 20년 넘게 슈퍼를 운영하고 있다. “여그(여기)는 몇 십 년 전 고대로 지라. 글고 요새는 젊은 사람들 얼굴 보기가 힘들재. 자슥들은 하당 새 아파트서 살고 부모들은 원래 살던 여그 사는 집들도 많고. 늙은 사람들은 여그가 편항께.”

개발에서 벗어나 있던 원도심으로 온다

그런데 개발의 손길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오히려 멀리 서울서 살던 사람들이 짐싸서 목포로 내려오는 매력 포인트가 되고 있다. 개발의 아이러니다.

배우 손소영씨는 서울의 핫플레이스 경리단길에서 7년 동안 운영했던 와인바를 정리하고 최근 목포 원도심에 있던 2층짜리 일제시대 건물을 인수해 ‘손소영 갤러리 카페’를 열었다. 아직은 낯선 목포지만 연기를 지도하는 등 배우로서 역할도 이어갈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한다. 목포=김주성 기자

배우 손소영(41)씨는 서울 이태원동 경리단길에서 7년 동안 운영하던 와인바를 접고, 2월 목포에 갤러리 카페를 열었다. 40년 동안 서울을 떠나 살았던 적이 없는 그는 늘 바닷가 삶을 꿈꿨다고 한다. 목포를 새 둥지로 택하며 드디어 꿈을 이룬 것이다. “이곳(목포 원도심)은 마치 7년 전 경리단길 같은 느낌이었어요. 시간은 멈춘 듯 길은 울퉁불퉁, 건물은 삐뚤삐뚤.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것 같은 고즈넉함. 그게 너무 좋은 거예요.”

손씨는 동전의 양면처럼 ‘개발’을 따라 다니는 ‘둥지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을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경리단길에 사람들이 몰려와 3년 만에 월세는 2배 이상 훌쩍 뛰었다. 법이 허용하는 이상이었지만 자리를 지키려고 어쩔 수 없이 감당했다. 결국 경리단길의 터줏대감이던 세탁소, 철물점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전쟁터 같은 경리단 길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데. “멈추면 끝이죠. 갑갑해졌어요. 왜 여기서 이래야 하는가란 생각이 들었어요. 목포에 와서 제가 집순이 체질이라는 걸 처음 알았어요. 별거 하지 않고 그냥 동네만 다녀도 괜찮아요. 함께 온 고양이들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직은 낯선 목포지만 연기를 지도하는 등 배우로서의 역할도 계속 이어갈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한다.

목포는 비어 있는 만큼 채울 것이 넘친다는 젊은이들

아무 것도 이뤄진 게 없고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곳은 반대로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목포의 원도심은 꿈의 실현을 위한 도전의 공간 역할도 하고 있다.

김아영씨가 일하는 문화기획사 ‘공장공장(空場共場)’ 사무실은 목포 원도심의 여관 ‘우진장’ 안에 있다. 40년 넘게 뱃사람과 목포를 오가는 섬주민들이 머물던 우진장 내부를 고쳐 여행객들 숙소와 사무실로 쓰고 있다. 시인 강제윤씨가 젊은이들의 에너지와 아이디어로 목포의 원도심이 활력을 되찾기를 바라며 공장공장이 20년 동안 장기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강제윤(왼쪽) 시인은 지난해 40년 넘은 목포의 옛 여관 우진장을 인수해 문화기획사 ‘공장공장’의 젊은이들에게 20년 동안 무상으로 쓸 수 있게 했다. 젊은이들의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목포의 원도심이 활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목포=김주성 기자

홍동우(32) 대표는 목포를 여백이 많은 도시라고 정의했다.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고 빈 곳이 많으니 뭔가를 상상해서 넣을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곳이라고 했다. 목포는 국도 1호선의 끝이지만 섬으로 가는 시작점이다. 그 중간에 있다는 것이 목포의 매력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까지 서울 이태원에서 전국 일주 전문 여행사 ‘익스퍼루트’를 운영하며, 2013년 산업통상부 지식서비스 비즈니스플랜 공모전 최우수상, 2014년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창조관광기업으로 뽑히며 유명세를 탔다. 전국을 누비며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해 온 그가 목포를 새로운 근거지로 삼은 이유는 뭘까. “서울에서는 열심히 해서 무언가를 이뤄내더라도 별로 눈에 띄지 않죠. 성공에 대한 부담은 엄청나고요. 하지만 목포에선 마음껏 도전해 볼 수 있어요. 설사 실패하더라도 티가 잘 안 나니까 잘 안되더라도 툭툭 털고 또 해 보자고 하면 되니까 좋죠.”

홍대표(서울)를 비롯해 기획을 맡고 있는 박명호(31ㆍ서울) 공동대표, 직원 김용호(30ㆍ경기 남양주)씨, 김아영(28ㆍ서울)씨, 김지연(28ㆍ대구)씨까지. 공장공장의 다섯 청년은 모두 지난해 목포로 이사를 왔다. 공장공장은 비어있는 목포의 원도심을 목포 밖에서 온 청년들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뜻에서 붙인 이름.

식품유통 회사에 다녔던 김용호씨는 목포에 살면서 모든 일에 급하게 마음먹지 않게 됐다. 서울서는 매일 아침 ‘저 버스, 저 지하철을 못 타면 지각’이라는 스트레스 속에서 하루하루 쫓기듯 살아야 했다. 하지만 목포에서는 일도 재미있다. “올가을 우진장에 맥주 펍을 열 계획을 세웠어요. 어시장에 가 생선이나 수산물 공부를 하고 상인들과 얘기 나누며 메뉴를 구상하는 데 정말 재미있어요. 이곳 분들은 정이 넘쳐요. 정말 많이 가르쳐 주시거든요. 주말에는 가까운 섬이나 산 구경도 갑니다. 밤에 배 타면 아침에 제주도 도착해 놀다 오기도 하죠.”

서울과 경기 남양주에서 목포로 이사한 2030세대 3명의 한 달 생활비 비교. 송정근 기자
끌려다니는 삶 대신 내가 주인공이 됐다

서울 마포구 홍대 근처에 살던 황선희(31)씨는 올 초 목포 원도심에 혼술바 ‘어항’을 열었다. 목포시가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지난해 초부터 추진한 청춘 창업 지원사업에 선정돼 3,000만원을 받아 옛 건물 2층의 안과가 있던 위치에 가게를 오픈했다. 인테리어도 목포 원도심의 장점인 오래된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고 애썼다. 직원 없이 혼자 운영하는 가게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알려지면서 당초 예상했던 하루 매출의 2배를 넘기고 있다. “서울에는 많지만 목포에는 혼술바가 잘 없죠. 특히 저처럼 젊은 여성 한두 명이 와서 편하게 맥주 마실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는데 그게 어필한 것 같아요.”

서울서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던 황선희씨는 연고 없는 목포 원도심에 혼술바 ‘어항’을 열었다. 목포시의 청년창업 프로젝트 지원을 받은 그는 하나부터 열까지 계획을 짜고 가게를 운영하면서 자신 삶의 주인공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목포=박상준 기자

서울에서는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가는 일상을 반복하며 누군가에 의해 끌려가는 듯하게 살았다. 하지만 목포로 내려온 황씨는 이제 자신의 아이디어와 발품으로 가게를 꾸리며 스스로의 가능성을 찾아가고 있다며 뿌듯해한다. 특히 하루에도 몇 번씩 군중 속 고독을 느껴야 했던 마음이 지난해 여름 목포로 이사 온 뒤 자전거 타고 장보고 물건사고 오래된 골목을 걸으면서 말끔히 사라졌다. 황씨는 다른 청년들도 자신처럼 목포에 와서 마음을 치유하고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으로 ‘셰어 하우스’를 만드는 꿈도 생겼다.

목포를 새 안식처로 삼겠다며 이사 오는 이들을 보면서 평생을 목포에서 살아온 어르신들은 고맙다면서도 어리둥절해 한다. 양모(71)씨는 “머 할라고 살기 좋다는 서울서 암 것도 없는 여그로 올라고 하는지 모르겠당께”라고 했다. 세상 심심하고 볼 것도 없는 목포를 좋다고 찾아오는 젊은이들이 집 떠난 자식처럼 예쁘고 과자 하나라도 챙겨주고 싶단다.

개발의 손길로부터 비켜 있던, 그래서 시간이 멈춰 있는 듯한 목포는 찾는 이 누구나 따스하게 감싸준다. 대도시에서의 성공, 실패는 중요하지 않다. 당장 도시에서처럼 누구도 무엇을 해 내라며 재촉하지 않는다. 숨을 헐떡이며 달릴 필요도 없다. 천천히 걷다가 좀 쉬었다 또 걸으면 된다. 그러다 보면 하고 싶은 것, 잘 할 수 있는 일이 보이고 그걸 해보면 된다. 혹시 잘 안 되면? 유달산과 바다는 괜찮다 또 해보라고 한다. 시골 외갓집에 찾아가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며 언제나 내 편을 들어주던 외할머니처럼 안아준다.

목포=박상준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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