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도시재생 열풍

#1
문재인정부, 5년간 50조원 투입
마을 도서관 등 생활 인프라 확충
“500여 구도심 되살리겠다” 구상
#2
전국 ‘1호 재생 도시’ 전주
8년전 시범사업부터 다양한 시도
남부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로
야시장 운영해 ‘관광명소’ 발돋움
#3
목포 ‘1914 남행열차 포차’ 사업
교통 등 불만에 다른 곳으로 옮겨
“도시재생, 재개발 정도로만 알아
주민 소통 밑바탕 두고 진행해야”
전북 전주시 팔복예술공장 건너편 철길로는 화물열차가 다닌다. 전주=박지연 기자

전주역에서 북서쪽으로 6㎞ 떨어진 가장자리 동네. 택시로 20분을 달려 도착한 전주시 팔복동 거리에는 무채색 공장들이 나란히 서있다. 도로옆 철길로 화물을 실은 열차가 지나고 나니 이내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이 흐른다. 흑백사진 속 홀로 색상을 띤 듯한 붉은 컨테이너 박스와 초록색 잔디가 쓸쓸한 팔복예술공장 풍경에 생기를 더한다.

3년 전까지 이곳은 버려진 땅이었다. 1980년대 500여명이 근무할 만큼 북적거리며 지역의 대표 산업체로 꼽혔던 카세트테이프 공장은 CD 시대가 오면서 1992년 문을 닫았다. 그렇게 23년 동안 방치돼 있다시피 했던 공장 부지를 전주시는 2015년 50억원에 사들였다. 시의 역사와 시민들의 추억이 담긴 이곳을 복합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기로 한 것이다. 시는 전주문화재단과 함께 예술의 도시라 불리는 전주에 걸맞은 예술공간을 만들어 지역 예술가들에게는 작품활동 장소로 시민, 관광객에게는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지난달 23일 시작한 개관 특별전의 이름도 ‘Transform[ ]: 전환하다’이다.

/20년 넘게 방치돼 있던 옛 카세트테이프 공장은 전주시와 전주문화재단이 함께 손잡고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새로 태어나게 했다. 팔복예술공장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마지막 연기를 내뿜은 공장 굴뚝에는 이곳의 옛 이름 ‘쏘렉스’가 그대로 남아있다(위). 시민들로부터 외면 받던 이 곳의 내부는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해서 주말이면 시민, 관광객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아래) 전주=박지연 기자

기억 속에서 사라지나 싶었던 변두리 동네에는 이제 주말이면 시민, 관광객의 발길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전주 출신 시각예술가 김범준(34)씨는 미대 진학 후 10년 넘게 서울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 팔복동으로 돌아왔다. 김씨는 “어릴 적 공단 지역인 팔복동에 올 일이 없었다”며 “공단에 예술공장이 들어선 풍경이 낯설다”고 말했다.

전국 ‘1호 재생 도시’ 전주

지방의 버려진 땅들이 도시재생을 통해 활기를 찾고 있다. 도시재생은 건물을 부수고 땅을 갈아엎은 뒤 아파트, 건물, 시설 등을 새로 짓는 상전벽해(桑田碧海)식 재개발ㆍ재건축과는 차원이 다르다. 원래 모양을 최대한 살리고, 변화를 최소화하면서 쇠락한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도록 차근차근 바꿔 나가는 식이다. 특히 지역 공동체가 힘을 모으고 지역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주거지는 좀 더 살기 좋게 바꾸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냄으로써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도록 한다.

서구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경기 침체와 기업들이 생산 기지를 임금이 싼 아시아, 남미 등으로 옮기면서 도시 곳곳이 슬럼화를 겪으면서 이를 바꾸기 위한 다양한 도시재생 사업이 이뤄졌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논의되다 참여정부 시절 ‘살고 싶은 도시ㆍ마을 만들기’ 사업이 진행되기도 했지만 뉴타운을 대표로 하는 재건축ㆍ재개발 바람에 밀렸다. 그나마 2010년 전주와 경남 마산시에서 도시재생 사업에 대한 실험(국가도시재생 R&D사업 테스트베드)을 진행하면서 도시재생은 차츰 확대됐다.

전북 전주시 남부시장 2층에 자리한 ‘청년몰’은 청년들이 꿈을 실현하는 공간이다. 이 곳 입구에 적힌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라는 모토가 젊은 감성을 보여준다. 전주=박지연 기자

전주는 ‘전국 1호 도시재생 도시’라 불릴 정도로 2010년 테스트베드 사업부터 도시 곳곳에서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져 왔다. 이중 남부시장의 변신이 눈에 띈다. 지역의 대표적 재래시장이었던 남부시장은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이었던 ‘문전성시 프로젝트’를 통해 매주 금, 토요일 자정까지 야시장 운영을 시작했고, 전주의 야간 관광명소가 됐다. 청년 상인을 키우는 인큐베이터 ‘청년 몰’ 사업도 주목을 받았다. 개성 넘치는 계획을 갖춘 청년들을 선발해 시장 상가 2층 공간을 인근 시세 절반 정도의 임대료만 받고 빌려줘 사업실행 기회를 제공했다.

덕분에 남부시장에는 페루에서 직수입한 액세서리를 파는 ‘아모르 페루아노’, 독립출판사 책들을 모아 놓은 책방 ‘토닥토닥’ 등 특색 넘치는 상점들이 가득하다. ‘아모르 페루아노’ 사장 강정희씨는 “처음부터 차별화된 아이템을 갖춘 가게를 선발해서인지 문을 닫는 경우가 별로 없다. 1년 동안 자기 사업을 해보고 시장 바깥으로 가게를 확장하는 곳도 있다”라며 “야시장을 찾는 이들이 청년몰도 함께 들르는 일이 많아지면서 시너지가 나고 있다”고 말했다.

페루 출신 사장이 페루에서 수입한 문화상품을 파는 상점. 남부시장 청년몰에는 개성 넘치는 상점들이 모여있다. 전주=박지연 기자

특히 전국적으로 신도시 열풍이 불면서 과거 번화가였던 곳들로부터 사람, 상업ㆍ문화시설 등이 빠져나가 공동화가 심해졌고 이 같은 옛 도심을 대상으로 한 도시재생 사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전남 목포시 목원동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패션, 쇼핑의 중심가였지만 목포 외곽에 하당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런 목원동의 골목 곳곳에 지난해 말부터 카페를 비롯해 드론체험관, 공방, 아트숍, 동네책방, 독립영화관 등 다양한 분야의 41개 공간이 문을 열었고, 게스트하우스 9곳이 오픈(5곳 추가 준비 중)했다.

2013년 12월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이듬해 목포 목원동을 포함해 순천, 부산 동구 등 전국 13개 지역이 도시재생 선도사업 대상지로 뽑혔다. 덕분에 목포 시민들조차 외면했던 목원동 일대가 생기를 되찾은 것이다.

정미 목포시 도시재생지원센터장이 그 동안 추진해 온 목포의 도시재생사업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특히 목포 원도심에 청년들의 창업 지원 대상을 전국으로 넓혔더니 무려 300개 넘는 팀이 지원을 할 만큼 큰 관심을 끌었다. 목포=김주성 기자

정미 목포시 도시재생지원센터장은 “보통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만 창업 지원을 하는 것과 달리 15년 넘게 비어있던 공간을 살리기 위해 파격적으로 전국 모든 청년에게 청춘 창업 프로젝트에 참여 기회를 줬고 300개 넘는 팀이 지원했다”며 “보증금, 월세, 인테리어 시설비 등 창업자금으로 최대 5,000만원까지 지원한 결과 지방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가게들이 목포에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주민 공감과 참여가 재생의 동력

하지만 도시재생 사업이 반짝하고 말거나 예산만 쏟아붓고 아예 시작도 못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목포시는 2016년 ‘1914 남행열차 포차’ 사업을 벌였다. 원도심의 상권 활성화를 목표로 내세워 대당 수천만원을 들여 포장마차 13대를 제작, 목원동 중앙식료시장 인근 도로에 설치한 것. 하지만 시장을 살리고 포차 업주도 만족시키겠다는 시의 설명과 달리, 시장은 죽고 포차만 번성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게 상인들의 주장이었다. 게다가 포차 때문에 교통이 불편해졌다는 시민들 불만까지 겹쳤고 결국 설치 6개월도 안 돼 시는 포차들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시 관계자는 그러나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해도 해당 지역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갈 곳을 못 찾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현재 포장마차들은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다. 또 목포시가 한옥을 매입하지 않은 채 한옥 게스트하우스 건설 계획을 내놓았다가 집 주인들이 팔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무산되는 일도 있었다.

목포는 하당, 남악 등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원도심의 공동화 현상이 심각했다. 그러나 최근 도시재생 사업이 곳곳에서 진행되면서 죽었던 원도심 곳곳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목포=김주성 기자
주민들이 도시재생 개념부터 알도록 해야

무엇보다 기존 주민들이 도시재생이 무엇인가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다 보니 그저 오래된 건물 밀어내고 새 아파트 짓는 재개발 정도로 여기고 있다는 게 문제로 꼽힌다. 목포시 관계자는 “오랫동안 살아온 어르신들이 많은데 이들의 공감 없이 기존 재개발처럼 관 주도로 진행하려다 보니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꼈다”며 “자신 소유 땅이나 건물이 개발 대상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다 보니 속도를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도시재생이 장기적으로 정착하려면 주민 공감과 참여를 밑바탕에 두고 진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살던 곳을 내가 바꾼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나중에 반발도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목포 목원동 원도심에서 게스트하우스 ‘달꾸메’를 운영 중인 제갈경희(55)씨는 시가 도시재생 사업의 하나로 운영한 ‘게스트하우스 마을학교’ 1기 출신이다. 목원동은 주거 지역이라 숙박업을 할 수 없지만 시는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마을 주민 5명 이상이 참여하는 마을기업이 운영하는 조건으로 게스트하우스 건립을 허가했다.

고향 목포를 떠난지 35년 만에 돌아온 제갈경희씨는 원도심의 집 2채와 땅을 사서 마을주민, 서울의 지인들과 함께 도시재생을 위한 마을기업을 꾸려 지난해 게스트하우스 달꾸메를 열었다. 옹벽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공사 기간과 비용이 예상보다 많이 들었지만 자연 그대로의 옛 느낌을 살릴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목포=김주성 기자

목포에서 태어나 고등학생 시절까지 원도심의 적산가옥(일제강점기 일본인 소유 주택)에서 살다 대학 입학과 함께 서울로 떠난 그는 주부로 살다 3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렸을 때 걸어서 학교 다니던 그 골목을 다시 찾아오니 너무 편안했어요. 눈 따갑지 않고, 밤하늘의 별 보는 게 좋았고요. 텅 빈 고향을 위해 무언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게스트하우스 학교 동기들이 대부분 평범한 주부들인데 아무래도 제가 서울, 일산에 살면서 여기저기 여행 다니며 보고 들은 게 있으니 그런 점들을 접목해보려 합니다.”

도시의 탈바꿈은 주민의 직접 참여가 필수

전주 한옥마을 근처 오목대 버스 정류장은 지역의 대표적 ‘예술 작품’으로 꼽힌다. 나무를 깎아 만든 꽃창살 위에는 조선 숙종 14년에 태조의 어진(御眞ㆍ초상)과 600명의 행렬을 그린 ‘태조어진봉안행렬도’를 섬세하게 채색했다. 천장에는 태조가 남원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친 뒤 이곳에서 승전잔치를 연 이야기, 고종이 1900년 친필로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蹕遺址)’라고 써서 비를 세운 이야기가 한글과 영문으로 적혀있다. 또 QR코드를 스캔하면 오목대와 한옥마을에 얽힌 이야기를 자세히 볼 수 있다.

전북 전주시 오목대 버스정류장은 지역 예술가들과 청년들이 손잡고 ‘예술이 있는 승강장’ 사업을 통해 탈바꿈 시켰다. 나무 꽃창살과 그 위에 그려진 태조의 행렬이 이 곳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주시청 제공

전주시는 2016년 시민과 관광객들에 전주의 역사와 예술혼을 전해주고자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지역 예술가들과 청년 60여명으로 청년문화예술협동조합을 꾸려 장소마다 숨겨진 이야기를 담아낸 ‘예술이 있는 승강장’을 18곳에 설치했다. 전북 군산의 명물 ‘우체통 거리’는 주민들 스스로 꾸린 협동조합의 작품이다. 도시재생 공모사업에 선정된 주민들이 적은 예산으로 버려진 우체통에 그림을 그려 우체통 거리를 만드는 등 재생사업에 적극 참여했다.

전주의 원도심 지역인 승암동에선 도시재생 사업 진행을 위해 동네 주민들이 주축이 된 마을기업 협의회를 꾸렸다. 위원 20여명은 매주 모여 협동조합 구성과 마을기업 수익구조를 논의하는데 최근에는 무허가 점포를 보수하고 인ㆍ허가 절차를 거쳐 마을기업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절차를 꼼꼼히 점검하고 있다.

또 승암마을 아카데미를 통해 실장갑으로 목화솜인형만들기나 한지꽃 만들기 기술 등을 익히며 전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체험할 프로그램을 만들고, 빈집을 개조해 한옥마을보다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로 수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승암마을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오춘자(57) 전주시 마을기업 협의회장은 “처음에는 도시재생이 뭔지 왜 필요한지 잘 몰랐지만 매주 소통하다 보니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해낼 수 있는 수준의 것부터 하나하나 해낼 수 있게 됐다”며 “겉으로 번지르르한 변화보다 생활 속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눈 앞 성과보다 장기적인 자생력 길러야

정부는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도시재생 뉴딜사업’ 실행 계획을 발표했다. 앞으로 5년 동안 매년 10조원 대 공적 재원을 투입해 500여 개 구도심과 노후 주거지를 되살리겠다는 구상이다.

문재인 정부가 5년 동안 50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진행하겠다고 밝힌 도시재생뉴딜사업 개요와 해외 주요 도시재생 성공 사례들. 송정근 기자

마을 도서관, 커뮤니티 시설 등 선진국 수준의 생활 인프라를 확충해 주거 환경을 쾌적하게 바꾸고, 청년 창업 지원 등으로 새 일자리를 만들고 도시가 늙어가는 속도를 늦추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토교통부는 도시공간 혁신, 도시재생 경제 활성화, 주민과 지역 주도라는 3대 추진 전략을 마련했다. 오래된 주거지의 환경 정비, 옛 도심을 혁신거점으로 조성, 도시재생 경제조직 활성화, 민간 참여 유도, 풀뿌리 도시재생 거버넌스 구축, 젠트리피케이션에 발 빠른 대응 등 5대 추진과정을 설정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단기 성과에 집착하지 말고 지역 주민과 외지인의 조화를 통해 오랜 기간 사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실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전북 군산시 사례를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군산시는 2년 전부터 ‘테마가로 집중화 사업’이라는 도시 재생 프로그램이 성공한 월명동 주민센터 인근을 관리할 별도 회사를 만들었다. 이 회사는 건물주로부터 사업을 위탁 받아 시장 환경에 맞는 예비 창업자를 찾고 이들이 꾸준히 수입을 유지할 수 있게 조력자 역할을 한다. 시 관계자는 “각지에서 우후죽순 생긴 창업 점포들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에 의존했다가 예산이 끊기면 폐업하고 돌아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들이 오랫동안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자생력을 길러야 당사자와 지역 공동체 모두 되살아 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목포=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전주=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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