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논란'을 일으킨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지난 15일 새벽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MBC 화면 캡처=연합뉴스

그저 호기심에서 들어본 것이었다. 대한항공에서 일했던 후배를 통해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악행은 익히 알고 있었다. ‘물컵 갑질’로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르자 ‘이집 식구들은 도대체…’라는 생각에 그의 추가 갑질을 폭로하는 ‘괴성 녹음’을 클릭했다. 듣는 순간 녹음 속 괴성을 지르는 사람이 정말 국내 굴지 대기업의 전무가 맞나 의문이 들었다. “니가 뭔데?”, “아이 씨~”, “나도 안다고” 등 글로는 느낌을 전달할 수 없는 그의 괴성을 듣자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하물며 직접 그 ‘발광’을 지켜봐야 했던 당사자와 주변 직원들이 받았을 모멸감은 어떠했을지 짐작하기 힘들다. 녹음 제보자는 이런 괴성 난동이 너무 많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맘에 들지 않는다며 물을 끼얹는 등의 조 전무의 갑질은 오랜 세월 체화한 안하무인식 습성 외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아버지(조양호 회장)를 배경 삼아 능력에 대한 검증 없이 회사 고위직을 꿰차고 직원들을 닦달하는 것을 보자면 ‘부모의 능력이 내 능력’이라는 시대착오적 선민의식이 엿보인다. 조 전무의 갑질 행태에 과거 언니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과 오빠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의 뺑소니 및 폭언ㆍ폭행 사건까지 소환됐다. 최근에는 모친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의 욕설ㆍ폭언 녹음도 공개되면서 갑질이 ‘가족력에 따른 것 아니냐’는 우스개 소리까지 나온다.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급하게 내놓은 사과는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조 전무는 휴가 중 귀국해 “업무에 대한 열정에 집중하다 보니 경솔한 언행과 행동을 자제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사과가 과거 조 전무가 구치소에 간 언니에게 보낸 '반드시 복수할거야'란 문자와 비슷한 수준의 집단분노를 일으킨 것이다.

국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그릇된 언행을 옹호하기 위한 변명이고 궤변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폭언과 고성, 위압적인 방식으로 업무를 강요하는 것은 열정이 아닌 직위를 이용한 폭력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는 얘기다. 설령 그의 주장대로 열정이라고 인정한다 해도 그것은 후계구도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욕심을 향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제2, 제3의 조현민이 도처에 깔려 있다는 데 있다. 지난 2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우리 사회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7명(73.3%)이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 가해자 대다수는 상급자다. 피해자들은 심할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인사 상 불이익 등을 우려해 별 대응 없이 꾹 참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직장인이 받는 월급은 곧 ‘욕(먹는) 값’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가 괜히 도는 게 아닌 셈이다.

위만 보고 달리는 상사에겐 부하직원은 자신의 욕심을 채워줄 도구에 불과하다.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가 되며, 못 버티고 나가도 그 자리에 앉겠다는 사람들은 많으니 더욱 안하무인이 된다. 시스템으로 작동해야 할 조직은 그 사람의 말에 따라 움직인다. 자신의 행위는 ‘열정’이나 ‘일 욕심’으로 정당화하고, 마음에 들지 않은 부하직원들은 ‘열정이나 능력이 없는’ 이들로 폄훼한다.

기업이나 조직은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 붓는 수많은 직원들에 의해 유지ㆍ발전되는 것이 정상이다. 상사의 열정은 대화와 토론, 협업을 통한 합리적인 판단으로 이런 부하 직원들이 갖고 있는 역량을 키워주고 열정을 유지하게끔 유도하는 것으로 표출될 때 빛난다. 현재로서는 우리나라 재벌 2, 3세들에게, 승진에 목매 갑질에 익숙해진 상사들에게 이런 열정을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어 보인다. 다만 자신들의 ‘경거망동’을 열정이라는 말로 포장하지 않았으면 한다. 열정은 절대 폭력과 연결될 수 없는 의미의 단어이니까.

사족: 칼럼 제목은 2015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에서 차용했다. 조 전무의 사과문을 보는 순간 튀어나온 말이기도 했다.

이대혁 경제부 차장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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