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법한 관행도 국민 눈에는 적폐
우병우 버티기, 최순실 사태로 번져
靑의 ‘해임없다’는 용퇴 주문과 같아

‘우병우’가 그랬듯이 ‘김기식’은 불통(不通)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고 있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논란은 시간이 갈수록 우병우 전 민정수석 사태를 닮아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우병우와, 문재인 정부의 김기식은 물론 다르다. 우병우는 의혹이 제기될 즈음 인사 횡포와 수사 개입으로 인해 법조계를 중심으로 이미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우병우가 레임덕을 목전에 둔 대통령 임기 4년 차에, 김기식은 권력의 힘이 가장 센 1년 차에 논란이 불거진 것도 차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억울해 하는 의혹에서 출발한 논란들은 이제 비슷한 길로 접어들고 있다. 야권과 일부 언론에서 낙마를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이나, 부당한 권력 흔들기에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권력의 대응부터가 다르지 않다.

우병우가 여론의 공적(公敵)이 되기까지 출발은 언론의 오보성 의혹 제기였다. 계속되는 의혹 보도에 ‘위법한 게 없다’ ‘사실이 아니다’는 말로 그를 감싸면서 권력은 ‘불통’ ‘먹통’이 되어 갔다. 국민 눈높이가 아니라 적법성이 인사의 잣대가 되었고, 민심이 아니라 ‘법대로’가 소통 수단이 됐다. 이 지점에서 보면, 지금의 권력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청와대는 김기식 문제에 대해 “의혹이 제기된 해외출장 건들은 모두 공적 목적으로 이뤄진 것이며 적법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국민의 기대와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은 겸허히 받아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임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적법’ 엄호와 달리 김기식이 처한 상황은 우병우보다 불리하다. 우병우가 대통령 비서인데 반해 그는 금융감독의 수장으로 여론과 더 자주 접촉해야 한다. 의원 시절 정무위원회 소속 기관들을 상대하면서 인심도 얻지 못한 것 같다. 그랬다면 피감기관들이 금고에 넣어두고 있을 ‘의혹’들이 지금처럼 쉽게 공개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름의 판단이 들어 있을 김기식 의혹에 대한 언론 보도를 “기사 쓸게 없구나”라고 한 청와대의 힐난도 해당 언론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이런 상황이라면 김기식이 의혹 정국을 헤쳐 나와도 금감원장 직무를 수행하는 건건이 시비거리가 되고, 여론의 피로도는 높아갈 수밖에 없다.

우병우는 그때 억울했을 법하다. 처갓집의 서울 강남빌딩 매각 문제로 언론의 타깃이 되어, 1년여 뒤 검찰의 2전3기 끝에 별건 구속으로 감옥에 갇혔다. 사위 우병우에게 미안해 하던 장모가 “내가 뛰어내려야 하냐”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말을 흘리며 그를 방어하던 박근혜 사람들이 지금은 다른 말을 한다. 비난 여론이 들끓던 그때 우병우를 퇴진시켰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거란 얘기다. 우병우 논란의 결과가 최순실의 등장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우병우’에서 확인된 권력의 불통이 최순실 사건의 폭발력을 키웠고, 촛불에 의한 권력교체를 가져왔다고 이들은 보고 있다. 최순실 취재기를 들어보면, 이들의 생각이 틀린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우병우의 비위를 확인하려는 취재진에게 ‘우병우 말고 최순실을 파라’는 주문성 제보가 들어왔다고 한다.

김기식도 적법 테두리의 관행을 문제 삼는 논란에 억울할 수 있다. 야권과 보수 언론의 권력 길들이기가 사태의 배경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공세와 여론몰이에 대응하는 것과 자리 버티기는 이제 별개의 문제가 되고 있다. 지금은 버티면 버틸수록 권력과 국민의 거리는 멀어지고, 불똥은 청와대로 튀게 돼 있다. 그의 의혹을 검증한 뒤 적법 도장을 찍은 조국 민정수석이 도마에 오른 것처럼 논란은 김기식 개인을 넘어선 상태다. 비금융전문가인 김기식이 금융권의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임명된 사실은 더욱 당혹스럽다. 잘못된 관행에 눈 감는 게 새로운 적폐이고 청산 대상인 까닭이다. 청와대는 “해임은 없다”는 입장을 사흘째 유지하고 있다. 청와대의 반복을 김기식은 ‘버티고 있어라’가 아니라 ‘용퇴하라’는 주문으로 해석해야 할 시점이다.

이태규 뉴스1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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