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인권 운동가에서 범죄자의 오명까지... 사진으로 돌아본 그녀의 삶

1962년 10월 22일, 위니 만델라 여사가 전통 복장을 입고 당시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지도자였던 남편의 재판에 참석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1964년 6월 12일, 위니 만델라(오른쪽) 여사가 종신형을 선고받은 남편과 다른 7명의 아프리카민족회의 회원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1985년 1월 9일, 에드워드 캐내디 상원 의원이 가택 연금된 위니 만델라 여사를 방문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1986년 1월 22일, 위니 만델라가 그녀의 집에 살 수 없게 하는 금지 명령을 어겨 체포된 것과 관련하여 요하네스버그의 법정에 출두한 후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AP 연합뉴스
1986년 3월 5일, 위니 만델라 여사가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17명의 흑인 운동가들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1986년 4월 5일, 위니 만델라 여사가 남아프리카의 브랜드포트에서 열린 활동가 윌리엄 코토이의 장례식에서 그의 관을 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1986년 4월 13일, 위니 만델라 여사가 카기소(Kagiso)에서 열린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1986년 4월 15일, 위니 만델라 여사가 요하네스버그에서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와 만나고 있다. AP 연합뉴스
1988년 7월 17일, 위니 만델라 여사가 수감된 남편 넬슨 만델라의 70번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거대한 팝 콘서트가 열릴 것이라고 발표 한 뒤 블랙 파워를 상징하는 손을 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1990년 2월 11일, 위니 만델라 여사가 남아공 팔레 인근 감옥에서 석방된 남편과 함께 걸으며 손을 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1991년 7월 5일, 남아공 더반에서 넬슨 만델라가 아프리카민족회의 의장에 선출된 후 위니 만델라 여사와 입맞춤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1994년 4월 27일, 위니 만델라 여사가 남아프리카 최초의 평등 선거에서 투표하기 위해 요하네스버그 동쪽의 폴링 스테이션에 도착해 손을 들고 있다. 이 선거에서 넬슨 만델라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시 둘은 별거 중이었다. AFP 연합뉴스
1994년 5월 9일, 위니 만델라 여사가 별거 중이던 남아공 대통령 당선자 넬슨 만델라와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최초의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주의 의회 취임식에 참석해 함께 앉아 있다. AFP 연합뉴스
1997년 11월 25일, 위니 만델라 여사가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실화해 위원회에 참석해 있다. AFP 연합뉴스
1997년 12월 1일, 위니 만델라 여사와 그녀의 법무팀이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실화해위원회의 특별 공개 심리에서 증인들 중 한 명의 증언을 듣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2013년 12월 15일, 위니 만델라 여사가 전 남편이었던 만델라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2018년 4월 2일, 남아공 더반에서 위니 만델라 여사를 추모하는 흑백 사진이 아프리카민족회의 깃발에 묶여 있다. AFP 연합뉴스

고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부인 위니 마디키젤라-만델라 여사가 2일(현지시각) 81세 일기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관련기사: 만델라와 ‘애증의 세월’ 위니 만델라 81세로 사망)

그녀는 2011년에는 '남아공판 노벨평화상'인 우분투(Ubuntu)상을 수상하는 등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여성 정치인으로도 유명했다. 그녀는 만델라의 투옥 기간 ANC 소속 당원으로 아파르트헤이트(흑인 차별 정책)에 맞서 싸워 흑인들로부터 ‘마마’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그러나 위니 만델라는 1998년 남아공 진실화해위원회(TRC)로부터 자신의 경호대로 활용했던 만델라연합축구클럽(MFC)의 살인 폭력 등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2003년에는 법원에서 절도와 은행대출 관련 사기 혐의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는 등 순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김주성 기자 poe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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