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야구 글러브

내야수, 12인치대 글러브 쓰고
외야수는 13인치 이상도 사용
투수는 구질 가리려 검지 덮개
개성 표현하는 자수 사용 유행
선수들 착용방식 변화에 따라
제작사가 형태 바꿔 만들기도

역대 최악의 미세먼지가 전국에 극성을 부리며 야외활동을 삼가는 분위기지만, 야구장만은 예외다. 겨우내 프로야구가 시작되기를 기다려온 팬들이 마스크를 쓰고서라도 보다 가까이에서 선수들을 지켜보기 위해 경기장으로 발길을 향하고 있다.

야구의 높은 인기가 유지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나날이 국내 프로야구 선수들의 실력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국가 대항전에서도 이젠 미국 일본 쿠바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고, 한국인이 최고 프로 무대인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게 꿈이 아닌 시대이다.

선수의 기량 발전과 동시에 장비도 진화되고 있다. “장비는 도구가 아니라 내 몸의 일부분”이라는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처럼 야구는 장비 없이 할 수 없는 종목이며 선수에게는 실력을 향상시킬 주요 수단이다. 이 중 수비수가 사용하는 글러브는 과학이 개입해 가장 뚜렷한 기능 향상이 이뤄지는 장비다.

야구 글러브는 선수의 수비 위치에 따라 다양한 형태, 크기로 제작된다.
내야수 글러브는 가장 작은 형태로 제작된다. 과거에는 땅볼 타구를 포구해 빠르게 송구하기 위해 포구면도 주로 얕게 만들었지만, 최근에는 타구 속도가 빨라져 보다 깊고 넓은 형태의 내야 글러브가 설계되고 있다. 사진(왼쪽부터)은 모두 같은 브랜드 내야수 글러브로, 90년대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에서 3루수로 뛴 키스 록하트가 실제 사용했던 글러브와 2014년까지 뉴욕 양키스에서 유격수로 활약했던 데릭 지터, 2011년 유격수 부문 골드글러브 수상자인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트로이 툴로위츠키 글러브.

내야 글러브의 경우, 타구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그 모양도 급격히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땅볼 타구 처리 후 1루로 빠르게 송구하기 위해 주로 11.25~11.5인치 크기에, 포구 면이 얕게 제작돼왔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선수들의 웨이트 트레이닝이 보편화되면서 자연스레 타자의 타구 속도가 빨라졌고, 타구를 잡는 글러브도 여기에 맞춰 점점 대형화해 이젠 12.25인치 글러브를 사용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외야수가 쓰던 크기다. 국민 유격수로 불리던 삼성 라이온즈 박진만 코치는 현역시절 12인치 글러브를 주로 사용했고, 시카고 컵스 3루수 크리스 브라이언트는 12.25인치 글러브를 고집한다.

포구면 모양도 타구를 붙잡는 게 아니라, 일단 막고 보자는 수비 방식이 도입되면서 점차 더 넓게 바뀌는 추세다. 검지와 중지 사이 포구 면을 넓히기 위해 글러브 형태를 유지해주는 심줄인 웰팅(welting)을 그 사이에 추가하거나 새끼 손가락 부위에 있는 힌지(hinge)를 여러 개 넣기도 한다. 메이저리그에서 레전드 유격수로 불렸던 데릭 지터(뉴욕 양키스)는 은퇴하던 2014년 시즌까지 힌지(hinge)가 1개 들어간 글러브를 사용했고, 현역 최고의 유격수로 평가 받는 트로이 툴로위츠키(토론토 블루제이스)는 포구면을 더 넓히기 위해 힌지가 2개가 들어간 패턴을 쓰고 있다. 두 글러브 모두 11.5인치로 포구면 깊이는 같다.

외야수도 지금은 13.75인치까지 사용한다. 포켓 모양은 과거처럼 좁고 깊은 건 비슷하지만 손가락 부위의 길이를 길게 해 뻗어 나가는 플라이볼을 잡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기 위한 목적에서다.

메이저리거 박찬호는 2010년 뉴욕 양키스에서 뛸 때 안 좋은 투구 준비 동작 노출을 피하기 위해 검지 덮개가 있는, 외야수와 비슷한 12.5인치 크기의 글러브를 사용했다.

글러브 착용법에 따라 형태가 바뀌기도 한다. 검지를 글러브 검지 위치가 아닌 중지에, 중지는 한 칸 밀어 약지에, 그리고 새끼손가락 부분에 약지와 새끼를 한꺼번에 넣는 착용 방식이 최근 선수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착용하면 둔감하긴 하지만 볼이 글러브에서 튀지 않고 더욱 깊게 포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제작사들도 여기에 맞춰 새끼손가락 부분을 넓히거나 아예 이런 착수 방법의 글러브를 제작하고 있다.

투수 글러브도 10여 년간 외관상 큰 변화가 진행됐다. 선수가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웹(글러브 엄지와 검지를 연결해주는 부위)이나 화려한 자수 사용도 늘고 있다. 이 중 현재 대부분 투수가 부착하고 있는 검지 덮개는 플레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다.

선수들은 볼을 받을 때 조금이라도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검지를 글러브 밖으로 꺼내는 경우가 많은데, 투수는 이 검지를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다가 타자에게 구질이 노출될 위험이 있다. 예컨대 직구를 던지겠다고 마음을 먹고 투구준비 동작에 들어갈 때 검지가 왼쪽으로 틀어지고, 변화구는 검지가 구부러지는 식이다. 투수마다 이 습관은 천차만별이다. 타자는 이런 미세한 변화를 유심히 관찰해 미리 해당 구질을 기다려 좋은 타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를 방지하는 게 검지 덮개다. 검지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해 이런 문제를 없애는 것이다. 박찬호 선수도 LA다저스에서 활약하던 시절 검지 위치 변화로 구질이 노출되자 급하게 검지덮개를 글러브 제작사에 의뢰해 부착했고, 그 후 2012년 은퇴할 때가지 검지덮개가 있는 글러브만을 사용했다.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투수의 미세한 습관까지 살펴 분석하는 능력이 발전하며, 투수들 상당수가 검지 덮개를 필수로 여기고 있다.

글러브 착용 방식에 포구면 활용방법이 달라진다. 유튜브 영상 캡쳐

투수 글러브가 커지게 된 이유도 비슷하다. ‘투수도 제2의 야수’라는 명언이 있듯 내야수처럼 작은 글러브를 사용했지만, 지금은 작은 습관도 노출하지 않기 위해 글러브가 투수 손을 점점 더 많이 가리도록 바뀌고 있다. 그러다 보니 크기도 외야수에 버금가는 12.5인치까지 커졌다. LA 다저스 류현진의 경우 데뷔 당시에는 12인치 글러브를 사용하다 지금은 12.5인치 글러브를 사용하고 있다. 손목 부위까지 가릴 수 있어 상대적으로 구질 노출이 덜 되는 장점이 있다. 특히 류 선수는 주력 구질로 5개 손가락으로 공을 감싸듯 쥐는 체인지업을 많이 던지다 보니, 볼을 쉽게 글러브 안에도 쥐도록 포켓 부분도 넓고 깊게 특수 제작했다.

소가죽으로만 제작되던 야구 글러브는 무게를 줄이고, 길 들이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운동화에 쓰이는 TPU(Thermoplastic Poly Urethane) 등 신소재가 사용되고 있다. 나이키 제공

이렇게 내ㆍ외야 투수를 막론하고 모든 선들의 글러브가 점점 커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글러브 무게를 줄일 수 있는 기술 향상에 있다. 생후 12개월 미만의 송아지 가죽 등 다양한 가죽을 보다 팽팽하고 가볍게 가공하기도 하고, 손가락 부분을 고정하는 펠트(felt)에 합성수지 등 여러 재료를 섞어 경량화를 추진하기도 한다. 이런 첨단 기술이 응용되면서 과거 700g대 글러브 무게가 400g대까지 가벼워졌다.

최근에는 더욱 가볍게 만들기 위해 운동화에 쓰이는 TPU(Thermoplastic Poly Urethane)나 낙하산에 쓰이는 특수천 등 합성소재가 쓰이기도 한다. 2011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다가 메이저리그로 복귀하는 데 성공했던 투수 브라이언 고든은 합성소재로 제작돼 별도의 길들일 필요도 없는 글러브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글러브는 사람이 사용하는 도구이다 보니, 이런 흐름을 외면하는 선수도 있다. 이치로는 “손가락의 세밀한 움직임까지 글러브에 전달돼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매우 예민한 편이다. 그래서 외야수용으로는 작은 12.75인치 글러브를 고집한다. 그는 글러브 착용 시 미세한 감각까지 컨트롤 할 수 있도록 부드럽고, 가볍고, 깊은 포켓의 글러브를 선호하는 것이다. 완벽에 가까운 수비 플레이를 한결같이 유지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어, 장비 변화가 필요치 않은지도 모르겠다.

글ㆍ사진=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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