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고민 않고 일주일 살아보니

#1
식사 메뉴, 옷 고르기, 장 보기…
정보 홍수 속 선택의 피로 벗어나려
온라인 등 통해 타인의 결정에 맡겨
시간은 아꼈지만 총23만500원 들어
결정비용으로 하루 3만3000원 쓴 셈
#2
결정 피로감 줄자 선택 욕구 치솟아
“돈을 소비해 선택의 부담 더는 게
과연 합리적일까” 고민에 빠졌지만
“남과 비교 말고 만족하자” 교훈 얻어

점심 메뉴를 고르지 못하고, 신혼여행지를 선택하지 못하는 ‘결정피로’ 상태는 신속함과 효율을 절대선으로 숭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심심치 않게 죄악시된다. 미 NBC방송의 인기 드라마 ‘굿플레이스(The good place)’에 등장하는 윤리학 박사 치디 아나곤예는 심지어 결정을 회피하는 기질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는 이유로 ‘지옥’에 떨어지기까지 했을 정도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대사 한토막 때문에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 덴마크 왕자 햄릿은 21세기 한국에서 ‘햄릿증후군’의 장본인으로 그토록 비난받지 않았던가.

사실 결정피로에 시달리는 현대인은 죄가 없다. 정보화 사회가 심화되면서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지고 무엇이 적절한 정보인지 판단하는 데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해 일종의 과부하가 걸린 것일 뿐이다. 결정의 스트레스로부터 오롯이 자유로울 수는 없을까. 현실적인 솔루션이 하나 있다. 차라리 인생을 좌우할 엄중한 결정이 아니라면 수고비용을 치르고 타인에게 자잘한 결정의 짐을 넘겨주는 것이다. 이른바 ‘결정비용’으로 돈 혹은 시간을 지불하고 얻는 해방감을 경험해보기 위해 ‘결정 안 하는 일주일’을 살았다. 당신이 합리적이라고 고개를 끄덕일 결정비용은 얼마일지 대신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결정 안 하는 일주일’을 계획할 때조차 일말의 선택은 필요했다. 스스로 어떤 선택을 할 때 피로를 느끼는지 알아야 그 결정을 다른 이에게 맡겨 비용으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무를 제외한 기본적 욕구해소, 먹고 입고 운동하고 즐거워지는 일에서 발생하는 선택을 가능한 한 단순화하기로 했다. 출근 시간을 지체하는 아침식사와 옷 고르기, 출근길 들을 노래 선곡, 퇴근 후 운동계획, 장보기에 필요한 결정을 단순한 습관으로 만들거나 서비스로 대체하기로 했다.

‘결정 안 하는 일주일’ 살아보기
너무 많은 선택지 앞에서 과부하가 걸려 머뭇거리는 대신 일상 속 사소한 결정을 다른 사람이나 서비스에 맡겨 시간이나 비용으로 치러봤다. ‘결정 안 하는 일주일’ 타임라인. 강준구 기자.

먼저 인터넷에서 샐러드 배송 서비스 사이트에 접속해 선택이 필요 없는 구성을 찾았다. 이 사이트에서는 리코타(ricotta)치즈 샐러드, 그래놀라(granola) 샐러드 등 하루 4,500원에 원하는 샐러드를 골라 한 번에 집으로 배송받을 수 있었다. 배송비를 포함하면 일주일에 최대 2만5,500원의 비용이 든다. 이는 전적으로 소비자의 선택에 따른 서비스이다. 이와 달리 균형 잡힌 식단을 알아서 업체가 보내주는 ‘랜덤(random) 샐러드’는 일주일에 4만원을 받는다. 알아서 보내주는 메뉴로 결정.

아침식사 메뉴를 샐러드로 정해놓고 나니, 아침을 먹을까 말까, 무엇을 먹을까 하는 결정이 사라지고 ‘샐러드를 먹을지 말지’라는 선택지만 남았다. 첫날은 문 앞에 샐러드가 배송된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 출근길에 챙겨 회사에서 먹었다. 이틀째부터는 ‘아침은 샐러드를 먹는다’는 습관이 생기니 식사시간만큼 일찍 일어나게 됐다. 거르기에 십상이던 아침을 꾸준히 챙기니 활기가 생겼다. 아침마다 뭘 먹을지 선택으로 소비하는 에너지 대신 지불하는 결정비용은 랜덤서비스와 직접 고르는 메뉴의 차액 1만4,500원인 셈이다.

의류대여로 한 주 옷 고민 해소

잠이 덜 깬 상태로 뭐 입을까 고민하며 옷장 앞에 서 있는 시간도 줄였다. 여유가 있을 땐 아침에 일어나 날씨를 확인하고 옷을 고르는 일이 즐겁지만, 머릿속이 꽉 찬 직장인에게 피곤한 몸을 욱여넣는 오피스룩은 그저 ‘작업복’일 뿐이다. 친구에게 추천받은 의류대여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휴대폰에 앱을 다운받았다.

개인 코디네이터가 매일 옷을 골라주는 게 아니고서는 여전히 최소한의 선택은 해야 한다는 게 아쉽다. 일단 아침마다 감당해야 하는 고민을 앞당겨 한 번에 하기로 하고 상의 4벌을 온라인 옷장에 담은 뒤 주문 버튼을 눌렀다.

하루 전 배송된 블라우스에 맞춰 입을 하의를 골라 놓고 자니 출근 시간에 10분쯤 여유가 생겼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뜻밖의 결정 순간도 찾아왔다. 또 온라인 옷장에 담아둔 옷을 다른 이용자가 먼저 빌리면, 다시 선택하거나 옷장을 열어야 하는 한계도 있었다. 옷을 살 때와 달리 대여한 옷을 반납하면 남는 게 없으니 서비스 비용 11만9,000원이 고스란히 결정비용이 된다. 여기에 휴대폰에 앱을 다운받고 회원가입을 한 뒤 상의 4벌을 미리 선택하는 데 걸린 30분도 결정비용.

음악 선곡, 장보기 고민도 내려놔

곡 순서까지 외워버린 플레이리스트를 새로 만드는 일은 인공지능(AI)에 맡기기로 했다. 시간, 장소, 상황에 알맞은 음악을 선곡해 들려주는 빅데이터 스트리밍은 이미 보편적인 서비스가 된 지 오래다. 휴대폰에 멜론 앱을 다운 받아 열자 ‘OOO님을 위한 맞춤 선곡’이라며 예전에 들었던 음악을 기반으로 취향에 맞는 노래를 제안했다. 또 ‘나는 지금 OOO 하면서 OOO을 듣고 싶어요’의 빈칸을 선택해 채우면 상황에 맞는 노래를 선택해줬다. 계정을 활성화하고 잊어버린 비밀번호를 찾는 데 들인 20분이 결정비용.

[저작권 한국일보] 핫케이크가루, 우유, 브로콜리, 계란, 사과, 아보카도. 목록을 입력하고 ‘ 퇴근길 메신저가 회사 앞에서 장바구니를 건넨다. 배달대행업체 띵동에서 7년간 메신저로 일한 최종혁(37)씨는 “우유, 사과 등 브랜드나 특성은 상관없으니 알아서 골라달라는 주문이 꾸준히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장보기도 선택의 연속이다. 주기적으로 장을 보는 사람에겐 명확한 쇼핑의 기준이 있겠지만 어쩌다 한 번 필요한 물건을 사는 사람에게 수많은 브랜드가 즐비한 진열대는 고뇌만 더할 뿐이다. 품목만 일러주면 1시간 안에 알아서 장을 봐주는 대행 서비스를 이용해 퇴근길 받아 가기로 했다. 배달대행업체 띵동에서 7년간 메신저로 일한 최종혁(37)씨는 “우유, 사과 등을 브랜드나 특성은 상관없으니 알아서 골라달라는 주문이 꾸준히 있는 편”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장을 봐줬다. 핫케이크가루, 우유, 브로콜리, 계란, 사과, 아보카도. 목록을 입력하자 퇴근길 메신저가 회사 앞에서 장바구니를 건넨다. 제품 가격 2만650원에 배달요금 7,000원이 결정비용과 물리적인 수고비로 추가됐다.

퇴근길 운동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 들른 피트니스센터. ‘어떤 운동을 할까’ 고민하는 대신 개인의 사고 및 행동패턴 인지 지표인 ‘이머제네틱스 프로파일(Emergenetics profile)’의 100개 문항을 측정해 개인의 기질을 분석한 뒤 맞춤형 운동을 진단받았다. 배우한 기자
기질분석으로 운동 종류 선택받기로

퇴근 후 무슨 운동을 몇 분씩 할지 선택하는 대신 운동 전 과정을 트레이너에게 맡겼다. 마침 행동성향에 맞는 운동처방을 해주는 곳이 있었다. 사고 및 행동패턴 인지 지표인 ‘이머제네틱스 프로파일(Emergenetics profile)’의 100개 문항을 측정해 개인의 기질을 분석한 뒤 맞춤형 운동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20분 동안 성향을 묻는 100문항에 답해야 했다. 이머제네틱스 진단 결과 기자는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분석적 성향과 관계를 중시하는 사회적 성향이 두드러졌다. 우지인 오아시스피트니스 센터장은 “사회적 성향이 강하면 여럿이 모여 함께하는 운동에 흥미를 느끼고 분석적 성향이 두드러지면 지금 하는 운동의 효과를 설명하는 게 좋다”라며 “피폐해진 심신을 치유하기 위해 운동을 하러 오지만 정작 무슨 운동을 할지 몰라 고민하는 시간을 줄여주기 위해 몸상태를 진단하고 성향을 분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어근육을 강화시키는데 왜 스쿼트를 하는지 근육체계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니 운동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개인트레이닝(personal training) 비용에 이머제네틱스 진단 비용 9만원, 그리고 황금 같은 주말 저녁 널브러져 있던 몸을 일으켜 20분간 모니터를 보는 인내가 결정비용 영수증에 추가됐다.

주말엔 내 색상 찾아주는 네일숍 방문
퍼스널컬러 진단. 여러 밝기와 색상의 진단천에 손을 올려가며 30분간 나에게 어울리는 명도, 채도를 찾아준다. 고민하는 대신 결정을 전문가에게 맡기니 마음을 정하는 데 5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네일숍은 궁극의 선택피로를 유발했다. 지난주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으러 갔다가 젤매니큐어를 바를지, 일반 매니큐어를 바를지, 색상은 몇 가지로 할지를 정한 뒤 200가지 색상 중 1~3개의 색상을 택하고 다시 수십 가지 디자인 중 통일된 한 가지 디자인을 고르라는 요구에 풀이 꺾여 “다음에 올게요”라 말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주말의 결정피로를 덜기 위해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결정 안 하는 네일숍’이라고 입력하니 ‘개인에게 맞는 색상을 진단해주고 결정을 도와준다’는 서울 관악구 소재 가게가 눈에 띄었다. 조금 멀지만 머리보다 몸이 고생하는 편을 택했다.

나만의 색상을 찾는 진단은 각기 다른 밝기와 명도, 채도의 천 위에 손을 올려가며 가장 생기 있어 보이게 하는 색을 찾는 과정이다. 30분간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 보며 ‘따뜻한 계열의 저명도 색상이 잘 어울린다’는 결론을 함께 내렸다. 진단에 맞는 3가지 색상이 제시됐다. 마음을 정하는 데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결정피로를 느끼는 고객이 안타까워 결정을 돕기 시작했다는 더뷰티샵 박지연 원장은 “나만의 색 진단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에는 고객 10명 중 8명이 30~40분 동안 결정을 못해 주저하고 망설이다 ‘추천해주세요’ ‘요즘 유행하는 색이 뭔가요’라 되물었다”며 “결정을 도와주니 선택시간이 확연히 줄었다”고 말했다. 결정비용은 인터넷을 검색한 10분과 다소 먼 거리를 오간 왕복 2시간.

“책들도 독자에게 선택 받으려 경쟁”
서점 편집자 차경희씨는 “추천을 부탁하는 고객에게 제 독서경험을 바탕으로 세 권 정도를 보여준다”며 “스스로 책을 살펴보다 가장 끌리는 걸 사는 편이 안심된다. 선택의 즐거움은 남겨주는 것이다”고 말했다.

대형서점의 압도적인 서가를 헤매는 대신 진열된 책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서점을 찾았더니 책을 고르기 한결 수월했다. 손님이 적으니 서점주인의 섬세한 추천도 받을 수 있다. “책들이 독자에게 선택받기 위해 경쟁한다고 치면 여긴 책들 사이 경쟁률이 낮은 편이죠.” 서울 용산구 서점 고요서사 편집자 차경희씨는 “독서 취향이 뚜렷한 손님 못지않게 심신이 지쳐 자신이 무슨 책을 읽고 싶은지 고민할 마음의 여유나 인터넷을 뒤질 여력이 없어 추천을 부탁하는 손님도 많다”고 말했다. 가볍게 책장을 넘기며 미소 지을 수 있는 책을 읽고 싶다고 하자 인생 좀 살아본 일본 작가가 쓴 ‘사는 게 뭐라고’와 일본 번역가 사이토 마리코가 쓴 시집 ‘단 하나의 눈송이’를 건넨다. 차씨는 “이렇게 기분에 따라 2~3권을 추천하면 그 중 한 권을 사간다”며 “책을 좋아하지만 완고한 취향은 없는 분에게 선택지를 줄여주는 대신 최종선택의 즐거움은 남겨준다”고 했다. 두 권 중 서울 이야기가 담긴 시집을 샀다. 결정비용은 서점을 오간 왕복 1시간 30분.

결정 줄이니 선택욕구 높아져

소소한 결정의 순간으로부터 해방된 생활. 스트레스는 줄었지만 오히려 일상은 풍요로워졌다. ‘결정 안 하는 일주일’은 한편 선택이 주는 즐거움을 실감하게 해줬다. 가장 좋은 선택을 하려는 고민이 다소 피로감을 주었을지 모르지만, 정작 선택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잃고 싶지 않았다. 결정을 덜어 단순화한 일상은 사소한 선택이 지연시키는 시간의 피로감을 줄여줄 뿐 아니라 오히려 선택하고 싶은 욕구를 끌어냈다.

결정의 피로에서 오롯이 자유로울 순 없을까. 인생을 좌우할 엄중한 결정이 아닌, 자잘한 결정의 짐을 타인에게 맡긴 대신 낸 결정비용 영수증. 신동준 기자.

이제 가계부를 쓸 시간. 일주일간 낸 결정비용을 계산해보니 총 23만500원이었다. 하루 약 3만3,000원을 결정하지 않는 대신 웃돈으로 지불한 것이다. 다시 한번 결정의 순간에 놓였다. ‘과연 이렇게 큰 돈을 소비하면서 결정의 부담을 더는 게 합리적일까.’ 하루 중 직면하게 되는 모든 결정의 순간을 비용으로 환산하는 것이 아니라는 한계도 있었다. 그 정도 편의에 매일 3만원을 쓰려니 아깝다는 생각이 앞섰다.

‘선택피로’, 개인 문제 아니라 사회현상

전문가들은 결정 앞에서 피로를 느끼는 것이 비단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의 홍수 속에 사는 현대인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하나의 사회현상이라고 진단했다.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최선의 선택’을 끌어내려는 욕구 때문에 피로감이 높아진다는 분석이다. 박창호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수많은 정보가 생성ㆍ소멸되는 요즘에는 결정 이후 머지 않은 미래에 내가 접한 사실과 다른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고, 그에 따라 ‘지금의 선택이 최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고민에 빠진다”고 말했다.

너무 많은 선택지, 최상의 선택을 하려는 욕구 못지않게 결정을 주저하게 만드는 이유는 후회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있다. 선택을 한 뒤에도 ‘더 나은 선택지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만족감이 줄어들까 두려워 확신이 서지 않는 것이다. 그럭저럭 만족할 때에는 후회할 일이 없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다른 사람의 선택을 접하면 자신의 결정이 최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강제로 알게 된다.

사회학자들은 오로지 최고만 선택하는 대신 적당한 만족을 찾는 것이 해답이라고 말한다. 결정을 마친 뒤에도 미련이 남는다면 그 시간은 여전히 결정에 치르는 비용이 된다는 것이다. ‘결정 안 하는 일주일’이 준 교훈은 5가지로 요약된다. 선택지를 좁히고, 비교 대신 만족하기, 최고를 추구하지 말고 ‘충분히 좋은 것’을 추구하기, 결정할 때는 그 결과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기, 비슷한 결정을 한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을 덜 가지기.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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