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장으로 내정

시민단체 출신 첫 ‘금융검찰’ 수장
참여연대에서 함께 호흡 맞췄던
김상조 공정위원장과 투톱 체제
경제계 전반에 태풍 몰고 올 듯
김기식 신임 금감원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참여연대 출신의 김기식(52)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장으로 내정됐다. 26년 간 사회운동가로 활동하다 19대 국회에 입성해 ‘정무위원회 저승사자’로 통했던 그가 금융권 채용비리 조사 과정에서 낙마한 최흥식 전 원장을 대신해 ‘금융검찰’의 수장으로 등판한 셈이다. 이에 따라 같은 참여연대 출신으로 지난해 6월부터 ‘경제검찰’을 맡아 재벌 개혁을 주도해 온 김상조(56) 공정거래위원장과 함께 재계ㆍ금융 개혁 쌍두마차 체제가 출범하게 됐다. 금융개혁을 진두 지휘할 적임자란 평가와 함께 일각에선 독립성이 중요한 금융감독 수장에 정치인, 그것도 대선 캠프 출신 인사를 앉히는 게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기업과 시중은행 등 한국 경제계 전반에 걸쳐 적잖은 변화와 혁신의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30일 금융위원회 의결을 거쳐 최 전 원장의 후임으로 김 전 의원(현 더미래연구소장)을 임명 제청했다. 김 내정자가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아 취임하게 되면 정치인 출신의 첫 금감원장이 된다. 시민단체 출신으로도 처음이다. 이는 민간 출신 첫 원장인 최 전 원장이 6개월 만에 최단명 낙마하며 후임 원장은 관료 출신이 임명될 것이란 시장의 예상을 깨는 파격 인사다. 개혁 성향의 인물을 금감원장으로 앉혀 금융권 채용비리 조사, 금융지주 지배구조 문제, 금융감독 체계 개편 등 금융개혁에 속도를 내겠다는 청와대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금융개혁을 늦추지 않겠다는 의지가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김 내정자는 여당 내에서도 대표적인 개혁 강경파로 꼽힌다.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한 뒤 참여연대 창립멤버로 참여, 2012년 비례대표로 국회 입성 전까지 줄곧 시민운동가로 활동했다. 19대 국회의원 시절엔 정무위 야당 간사를 맡았다. 여당이 주도하는 정부 정책들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사소한 것 하나도 쉽게 넘어가지 않은 탓에 소관기관 공무원들은 항상 그 앞에서 진땀을 흘려야 했다. ‘정무위 저승사자’란 별명이 붙게 된 배경이다. 대부업 최고이자율을 39.0%에서 27.9%까지 인하하는 데도 그의 역할이 컸다. 지난 2014년에는 금융사의 개인정보 수집 제한, 피해자 구제를 위한 손해배상제 등을 골자로 한 신용정보법 개정을 주도했다.

개혁 총사령부인 청와대의 장하성(65) 정책실장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참여연대 3인방’의 개혁 삼각편대가 형성되는 점도 주목된다. 1990년대 후반 참여연대 활동 당시 장 실장은 경제민주화위원장, 김 위원장은 재벌개혁감시단장, 김 내정자는 두 사람을 실무 보좌하는 정책실장이었다. 시민단체에서 잔뼈가 굵은 세 사람이 이제 정부의 경제 민주화 정책을 주도하는 핵심 3인방으로 호흡을 맞추게 된 것이다.

김 내정자는 그 동안 ‘재벌개혁’ 문제를 집중 제기해 왔다. 금융사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2금융권까지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 ‘금융회사지배구조법’도 그가 낸 대표 법안 중 하나다. 이에 따라 김 내정자가 취임하면 정부의 경제 개혁 정책에 속도가 더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이건희 삼성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과징금 부과,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 등 재벌에 대한 금융 감독 이슈에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이 점쳐진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김 내정자가 그간 ‘저격수’로 불리며 재벌개혁에 초점을 맞춰왔기 때문에 재벌개혁과 금융그룹 통합감독, 지배구조 개선 등을 먼저 손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권도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그는 지난해 말 한 기고문에서 “우리 금융산업은 국제경쟁력을 논하는 것조차 부끄러운 수준”이라며 “재벌과 은행 중심의 금융산업구조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김 내정자는 그 동안 은행들이 예대마진 수수료에 의존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는데 규제가 강화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김 내정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도 산적해 있다. 우선 채용비리로 바닥에 떨어진 금감원에 대한 신뢰도를 회복하고 감독기관으로서의 위상을 되찾는 게 첫 번째 과제다. 금감원은 내부 채용비리로 홍역을 치른 데 이어 최 전 원장마저 하나지주 사장 시절 채용비리 의혹에 연루돼 불명예 퇴진하면서 적잖은 상처를 입은 상태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3연임을 놓고 벌어진 하나금융과의 갈등도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금융당국과 하나금융은 지난해말부터 사사건건 이견을 보이며 충돌했다.

다만 김 내정자가 속도 조절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금융 정책은 선악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사안이고 일방적으로 개혁을 한다고 모두 되는 것도 아니다”며 “금융당국의 수장이기 때문에 전문적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경제적 원칙에 맞게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기대와 불안감이 엇갈리고 있다. 상급기관인 금융위와 껄끄러운 관계를 형성할 가능성도 높다. 실제 새 정부 출범 이후 김 내정자가 금융위원장 후보로 거론되자 금융위 공무원들은 강성 성향을 이유로 상당히 난색을 표했던 게 사실이다. 김 내정자 역시 의원 시절 관치를 강하게 비판하며 모피아(재무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에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국회 정무위 때 상당히 열심히 일하긴 했지만 소통이 잘 안 된다는 얘기도 많았다”며 “실력을 갖춘 전문가지만 강성 성향에 대한 시장의 우려도 있는 만큼 불통 이미지를 줄이고 소통에 적극 나섰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김 내정자는 이날 소감을 묻는 질문에 “임명 절차가 끝나면 앞으로의 포부 등을 밝히겠다”며 “앞으로 잘 부탁 드린다”고 말을 아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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