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하순 이탈리아 남부 지역에 산재한 고대 로마유적을 탐방했다. 이탈리아 북부사람들은 지금도 남부지역을 가난하며 투박하다고 경멸하지만,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북적대는 서울에 지친 나로서는 지평선까지 펼쳐진 남부지역의 올리브 숲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게다가 남부지역은 북부지역보다 훨씬 먼저 그리스 문명이 전파되어 로마시대 이전의 신전과 성채 등도 살펴볼 수 있었다. 로마는 기원전 3세기에 남부지역을 석권하고 번화한 도시를 곳곳에 건설했다. 이번에 둘러본 카푸아, 베네벤토, 베노사, 트라니, 바리, 알베로 벨로, 브린디시, 레체, 타란토, 마테라, 그루멘툼, 폴라, 파에스툼, 나폴리, 살레르노 등도 이에 속한다. 그 중에서 카푸아, 베네벤토, 타란토, 브린디시 등은 고대 로마 최초의 고속도로인 아피아 가도(Via Appia)에 위치해 한국교통사를 연구하는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기원전 312년 건설을 시작한 아피아 가도는 로마에서 카푸아까지 쭉 뻗었다가(212㎞), 기원전 2세기 초에 남동쪽으로 꺾여 베네벤토와 타란토를 거치고, 기원 후 2세기에는 아드리아 해안의 종점 브린디시까지 연장되었다(540㎞). 이탈리아 반도의 '뒤꿈치'라 불린 브린디시는 지중해 연안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인 그리스와 중동으로 나가는 데 가장 적합한 항구였다. 아피아 가도는 아드리아 바다를 건너 발칸반도를 횡단하는 에그나티아 가도와 접속하여 로마와 그리스의 문명교류를 촉진했다. 아드리아 바다를 굽어보며 브린디시 언덕에 서있는 거대한 회색 대리석 기둥(로만 콜로나)은 아피아 가도 완성의 위대한 업적을 칭송하고 있다.

아피아 가도는 평균 너비가 6m이고, 단단한 석재로 토대를 만든 위에 납작한 용암으로 빈틈없이 포장했다. 중앙을 약간 볼록하게 만들어 물이 잘 빠지는데, 오랜 세월 마차의 잦은 왕래로 궤적이 선명하게 파였다. 도로 양쪽에는 기념물과 이정표를 세우고 소나무를 심었다. 스파르타쿠스 반란 때는 생포한 노예를 십자가형에 처해 카푸아에서 로마에 이르는 아피아 가도 양쪽에 세워 두었다.

로마제국은 아피아 가도를 시작으로 사방팔방에 고속도로를 건설하여 3세기 말에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친 방대한 영토를 거미줄처럼 엮었다. 도로의 축조기술도 발전하여, 간선은 모래와 자갈로 1m 정도 다진 후에 평평한 돌로 포장하고 지선은 자갈을 깔았다. 기원 후 3세기 무렵 간선은 10만㎞, 지선은 5만㎞나 되었다. 산과 바위를 뚫고 강과 골짜기를 건너 곧게 뻗은 평탄한 도로는 모두 로마로 통했는데, 제국의 세력을 방방곡곡에 떨치고 각 지역 사이 교류를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핏줄 같은 도로망을 구축하는 데 600년 이 걸렸으니, 로마는 결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다.

아피아 가도는 한반도에서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도로에 해당한다. 로마는 경부고속도로보다 장대한 이 길을 2,000년이나 앞선 시기에 건설했으니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기죽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퍼뜩 스치면서 한국과 이탈리아, 서울과 로마를 비교해보고 싶은 오기가 발동했다. 현재 한국의 고속도로 총연장은 4,200㎞, 철도 총연장은 4,000㎞, 수도권 전철은 1,200㎞다.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촘촘히 짜인 이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한다. 길에서 한국과 서울은 이태리와 로마에 뒤지지 않는다. 더구나 이 길 대부분을 불과 50년 동안에 건설했으니, 서울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셈이다. 이 또한 위대한 업적이 아닌가! 참고로, 이탈리아의 면적은 한국의 3배, 인구는 1.3배, 1인당 국민소득은 1.4배다.

유감스럽게도 서울로 통하는 한국 안의 모든 길은 지금 휴전선에서 완전히 멈춰있다. 서울에서 반경 1,500㎞ 안에 7억 인구가 사는 세상이 널려 있는데도, 서울은 북한이라는 장벽에 막혀 섬에 갇혀버린 꼴이 되어버렸다. 곧 4월 말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두 정상이 정말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정착 의지가 강하다면, 끊어진 길을 연결하고 막힌 길을 뚫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바란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은 모든 길이 서울로 통할 때 보장되기 때문이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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