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 <5> 김수영의 ‘김수영 전집’

#자유의 시인이자 사상가
‘풀은 바람보다 더 빨리 눕지만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 웃는다’
어두운 시대 자유 향한 열망
#죽은 지 50년 지나도 깊은 울림
뛰어난 문학성ㆍ모더니즘 바탕
추상성 벗은 구체적 자유주의
오늘날까지 계속 새로움 안겨
#자유의 미래는
정치적 자유는 확장됐지만
경제적으론 부자유에 갇혀
경제 민주주의에 미래 달려
1961년 막내 여동생 졸업식에서 시인 김수영과 가족들. 왼쪽부터 김 시인의 부인 김현경, 모친, 동생 김수명, 김수영 본인, 동생 김수환. 한국일보 자료사진

개인적인 이야기로 이 글을 시작하고 싶다. 20대 중반 독일로 유학을 갔다. 독일어에 서툴렀던 나는 처음에 말하고 쓰는 데 적잖이 고생했다. 학교에서 이국어로 생활한 다음 밤늦게 기숙사로 돌아와 모국어로 쓴 글을 읽었을 때의 기쁨이란! 그때 나는 모국어가 의사소통 수단 이상이라는 걸 깨달았다. 모국어는,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면, 나라는 존재가 거하는 집이었다.

예를 들어, “거칠기 짝이 없는 우리 집안의 / 한없이 순하고 아득한 바람과 물결- / 이것이 사랑이냐 /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라는 시인 김수영(1921~1968)의 ‘나의 가족’을 읽었을 때 나는 경탄했다. 다소 눈물겹기도 했다. 더없이 순하고 아득한 바람 같은 것이 가족이며, 아무리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임을 나는 추상적 논리에 앞서 온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시인은 사상가일 수 있을까. 사상이 가치ㆍ이념ㆍ세계관을 포괄하는 개념이라면, 시인은 개인과 사회에 대한 번득이는 감성은 물론 깊이 있는 사유를 전달하는 사상가다. 지난 20세기 R. 타고르, T. S. 엘리어트, 파블로 네루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그리고 메어리 올리버는 내겐 위대한 시인이자 탁월한 사상가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용운, 백석, 윤동주, 그리고 김수영과 신동엽이 그런 존재라고 생각해 왔다.

김수영은 자유의 시인이자 사상가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말한다. “김수영의 시적 주제는 자유다. (...)그는 자유를 시적ㆍ정치적 이상으로 생각하고, 그것의 실현을 불가능케 하는 여건들에 대해 노래한다. 그의 시가 노래한다고 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는 절규한다.” 누구는 김수영이 설움의 시인 혹은 사랑의 시인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맞다. 설움ㆍ사랑ㆍ참여ㆍ소시민ㆍ현대성은 김수영 세계관을 구성하는 키워드들이다. 그럼에도 자유는 김수영에게 이 모두를 포괄하는 마음의 문이자 세계의 창이었다.

김수영의 ‘김수영 전집’

이 짧은 글에서 김수영 시 세계의 전모를 살펴보기는 어렵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자유의 사상가로서의 김수영이다. 1968년 마흔여덟 나이로 돌연 세상을 떠난 그가 남긴 작품들은 ‘김수영 전집’ 2권(제1권 시, 제2권 산문)으로 정리돼 있다. 1981년 여동생 김수명이 편집한 초판이 나왔고, 올해 문학평론가 이영준이 편집한 3판이 출간됐다.

김수영은 자유주의자다. 스스로 밝히듯 그는 우파나 좌파가 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의 분방한 상상력과 예민한 자의식은 부국강병을 중시하는 우파와 사회혁명을 강조하는 좌파와 어울리기 어려웠다. 광복 직후 그가 발표한 시는 체질적으로 자유주의자일 수밖에 없는 그의 내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한 채 그는 “사물과 사물의 생리와 / 사물의 수량과 한도와 /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을” 바로 보려고 열망한다(‘공자의 생활난’, 1945).

김수영의 시집과 산문집들. 맨 위 '시여 침을 뱉어라'(1975년 초판본)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달나라의 장난' '달의 행로를 바꿀지라도' '퓨리턴의 초상' '시여 침을 뱉어라'(1977년 3판). 민음사 제공

주목할 것은 김수영의 자유주의가 개인적 영역에 머문 게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성찰로 서서히 진화했다는 점이다. 첫 번째 계기는 서구와 우리 사이에 놓인 거리의 자각이었다. “1950년 7월 이후에 (...) / 이 나라의 비좁은 산맥 위에 자태”를 보인 “헬리콥터여 너는 설운 동물이다 / -자유 / -비애”(‘헬리콥터’, 1955)라고 그는 노래한다. 헬리콥터로 상징되는 서구 문명의 ‘자유’에 열광하지만, 그 자유의 다른 이름은 ‘비애’다. 서구적 이상과 한국적 현실 간의 거리에서 그가 자각한 것은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 버린 설움”(‘거미’, 1954)이다.

이 설움과 비애의 자유주의는 4월 혁명이라는 두 번째 계기를 맞이했다. “자유를 위해서 /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 사람이면 알지 (…) 어째서 자유에는 /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 혁명은 / 왜 고독한 것인가를”(‘푸른 하늘을’, 1960)이라고 노래함으로써 그의 자유주의는 현실의 목소리를 얻는다. 자유를 향한 힘찬 그의 목소리는 5ㆍ16 쿠데타도 막을 수 없었다. ‘풍자만 할 수도 없고 해탈만 할 수도 없는’(‘누이야 장하고나!’, 1961) 현실의 심장에 그는 화살을 겨눈다.

그 가운데 빛나는 화살의 하나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1965)였다. “한번 정정당당하게 /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 /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라는 그의 독백은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향한 중단 없는 성찰을 증거한다.

김수영의 현실적 자유주의의 절정은 ‘풀’(1968)이었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 더 빨리 울’지만 풀은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나고 먼저 웃는다’. 풀은 개인 또는 민중일 수 있고, 너인 동시에 나일 수 있다. 바람의 구속을 거부하고 풀의 자유를 노래한, 표현의 자유와 이를 위한 정치적 자유를 옹호한, 우리 현대사에서 관념적 자유주의를 현실적 자유주의로 하강시킨 김수영은 1968년 안타깝게도 교통사고로 이승을 하직했다.

현대성에 대한 질문

김수영이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됐는데도 그의 작품이 시간의 풍화를 견뎌 내고 계속해 읽히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까닭은 그의 문학성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앞서 인용한 작품들 외에도 ‘폭포’(1956), ‘후란넬 저고리’(1963), ‘거대한 뿌리’(1964), ‘현대식 교량’(1964), ‘사랑의 변주곡’(1967),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1968) 등은 우리 현대시를 대표하는 절창들이다.

작품의 완성도에 더해 김수영이 우리 현대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게 두 번째 까닭이다. 김수영의 시 세계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선 전집 제2권에 실린 그의 산문들을 함께 읽어보는 게 좋다. 김수영의 시와 산문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한국 현대성에 대한 탐구와 그 비판이다.

시인 김수영의 작품은 문학성 뿐 아니라 우리나라 현대성을 캐묻기에 뛰어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사회과학의 관점에서 현대성이란 제도적 차원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문화적 차원의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로 이뤄져 있다. 김수영의 시들은 자본주의가 가져온 속물적 현상을 비판하고, 민주주의에 반하는 일체의 권위주의를 거부한다. 또한 개인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며, 추상적 자유주의를 넘어선 구체적 자유주의를 요청한다.

김수영의 시들이 오늘날까지 새로움을 안겨 주는 것은 현대성의 비가역성과 지구적 보편성을 일찍이 꿰뚫어 보고, 이를 예술로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모더니즘이 그의 무기였다면, 현대성이 지향하는 자유주의는 그의 목표였다. “창조를 위하여 / 방향은 현대-”(‘네이팜 탄’, 1954)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 진정한 현대를 향해 때론 힘겹게, 때론 힘차게 걸어갔던 이 선구적 자유주의자를 우리사회는 아주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유의 현재와 미래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 함께 근대 서구를 이끌어 온 정치ㆍ사회적 이념이다. 자유주의는 무엇보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다.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은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주장함으로써 현대 자유주의의 기초를 세웠다. 정치사상가 이사야 벌린은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를 구분하기도 했다.

올해 2월 새단장하고 선보인 김수영 전집. 민음사 제공

오늘날 지구적 차원에서 자유의 현재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중적이다. 한편에서 정보사회의 진전으로 표현의 자유를 위시해 정치ㆍ문화적 자유는 크게 확장했다. 우리사회의 경우 권위주의 정부가 자유를 제한했지만 자유를 향한 열망을 막을 순 없었다. 김수영이 노래하듯 자유는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기 때문일 터다.

다른 한편 경제ㆍ사회적 자유는 소비의 자유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누구나 시장에서 상품과 상징을 소비할 수 있는 자유의 시대가 만개했지만, 이 자유는 개인이 갖고 있는 화폐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요컨대, 정치적으론 자유로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경제적으론 부자유하다는 게 오늘날 자유가 처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유란 자기의 삶, 다시 말해 자신의 사유와 생활을 스스로 지배하는 것을 말한다. 사유의 자유와 생활의 자유가 동시에 확장되기 위해선 정치 민주주의와 함께 경제 민주주의가 증진돼야 한다. 특히 인간다운 삶의 자유를 위한 경제 민주주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자유의 미래는 바로 이 경제 민주주의의 성패에 달려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는 지난 한 세기 우리나라 대표 지성과 사상을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연재입니다. 다음주에는 신채호의 ‘조선상고사’가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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