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알고 싶다]

"주제넘게 신문고를 치는 사람을 벌해달라" (이조판서 허조, 1432년)

"뗏법 창구로 전락한 청와대 게시판을 경계해야 할 것" (장제원 자유한국당 대변인, 2017년)

시대는 변했지만 '억울한 국민'을 보는 정치인의 시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 치면 잡혀가는 북

억울한 이들이 전국에서 모여 기자회견을 여는 곳. 청와대 분수대 앞 광장 구석에는 지름 1.5m, 길이 1.8m의 큰 북이 하나 있다. '신문고'의 옛 얼을 담았다는 것이 이 북에 대한 설명. 당연히 억울한 이들이 힘껏 쳐서 원통함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문민정부는 한때 이 북을 신문고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전시행정에 그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전시용으로 한정했다. 매해 12월에 열리는 해맞이 행사 등을 제외하면 이 북은 소리를 낼 수 없다.

[저작권 한국일보] 청와대 사랑채 앞에 위치한 대고각의 모습. 북을 치면 안 된다는 팻말이 붙어있다. 홍인택 기자

북을 둘러싼 건물의 이름은 '대고각'. 한자를 그대로 풀면 북의 이름은 '큰북'이 되겠지만 북을 직접 제작해 기증한 북 장인 고 윤덕진씨가 붙인 이름은 '문민고'였다. 윤덕진씨의 아들 윤종국(57)씨는 "아버지가 '백성이 억울한 일이 있으면 북을 쳐서 알렸다'는 데 착안해 신문고 관련 자료를 살피며 만들었다"며 "문민정부 수립을 기념해 기증한 것"이라고 말했다.

1994년 12월 20일 고각과 함께 공개된 조선시대 신문고 모양의 큰북을 이원종 서울시장이 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시 목적의 북이었지만 억울한 이들은 계속 북을 울리려고 애썼다. 1997년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이 구속된 지 2년도 되지 않아 '사면론'이 고개를 들자 같은 해 7월 28일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와 5.18 유가족협회 회원들은 청와대 앞으로 가 '사면 반대'를 외쳤다. 시위를 벌이던 회원 중 한 명이 '문민고'를 한 차례 울렸으나 곧 경찰에 연행됐다. '문민고' 소리를 듣지 못한 건지 문민정부는 그해 말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했다.

2000년대에도 북을 울리려는 이들이 있었다. 2003년에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수배자 가족들이 '수배해제'를 요구하며 청와대로 행진해 북을 울리려고 했으나 청운동사무소 근처에서 가로막혔다. 용산미군기지 이전 협상이 진행되던 2004년 8월에는 평화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회원 6명이 '기지 이전 비용 부담은 부당하다'며 우산과 주먹으로 북을 두드렸다. 이 시위도 전원이 경찰에 연행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한총련 수배자 가족들이 2003년 7월 22일 서울 종로구 신교동 청와대 입구에서 신문고를 울리기 위해 진입하려다 경찰에 저지당하자 수배해제를 요구하며 몸싸움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원조 신문고도 마찬가지

'원조 신문고'도 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첫째 문제는 위치였다. 신문고는 수도인 한양의 궁궐 문에 설치됐다. 억울한 사정을 가진 지방 백성이 신문고를 울리기 위해서는 걸어서 한양까지 가야 했기 때문에 이용이 힘들었다. 태종 대에 신문고를 울린 41건 가운데 지방 거주민이 울린 경우는 세 건에 불과해, '서울 편중'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 영조 시기에 신문고가 설치됐던 진선문으로 가려면 돈화문을 거쳐서 금천교를 지나야 한다. 홍인택 기자

이용 절차도 복잡했다. 다짜고짜 북을 울린다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게 아니었다. 청원할 것이 있는 백성은 먼저 의정부를 거쳐야 했고 억울함을 알리려는 백성은 주무관처, 사헌부 등을 거쳐야 했다. 지방 거주민의 경우 수령과 관찰사를 거쳐야 했다. 단계별로 처리 절차를 거쳤다는 확인서가 있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실제로 신문고를 치는 것은 신원 확인 절차는 물론 담당 관리가 소원 내용을 글로 작성한 다음이었다.

이렇듯 조선시대 신문고는 까다로운 절차와 공간의 제약 등 한계가 많았다. 역사학계 평도 후한 편이 아니다. 신문고에 대해 처음 논문을 썼던 역사학자 한우근은 "하등의 효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1992년 11월 23일 정주영 국민당 후보가 광화문 중앙당사에서 '광화문 신문고' 타고식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국민청원의 시대로

실체가 어찌 됐든 신문고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청원하는 행위의 대명사가 됐다. 청와대 앞의 '문민고' 외에도 신문고를 설치해 상징으로 삼은 경우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국민권익위의 '국민신문고' 등 온라인으로 민원을 접수하고 답변을 받을 수 있으니 조선시대에 비하자면 문턱도 훨씬 낮아진 셈이다.

가장 '핫한' 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다.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접속하면 별다른 본인 확인 절차 없이 청원을 올릴 수 있어 더 간편하다. 20일 현재까지 14만 개가 넘는 청원이 올라와 15건의 청원에 대한 정부 답변이 완료됐고 4건의 청원이 답변 대기 중이다. 19일 하루에 올라온 청원의 수는 746개. '일베 폐쇄 요청'에서부터 '이윤택 조사 촉구' 등 다양한 청원이 게시판을 가득 채우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청와대 홈페이지

이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국민이 청원을 올리면 청와대가 직접 답변하는 방식이다 보니 "직접민주주의의 탈을 쓴 반헌법적 행태"(김동철 의원)라는 비판도 나오고, "전직 대법원장까지 처벌해 달라니 웃음밖에 나질 않는다"(장제원 의원) 등의 조롱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이 나온다고 다시 신문고를 울리는 청원 방식을 채택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제되지 않는 요구를 가다듬어 제도를 마련해야 할 사람들이 바로 이들 정치인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청원권 자체가 헌법상 보장된 권리이니 국민청원이 '반헌법적'이라는 주장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억울해서 북을 울렸더니 잡혀가는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나.

글ㆍ사진=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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