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혜정 여성인권진흥원장
“이제야 말하기 시작했는데
업무서 여성 배제하자 등
의식적 성차별도 2차 가해”
변혜정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이 15일 서울 중구 서소문로 사무실에서 본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미투(#Me Too)는 단순한 폭로라기 보다 사회를 향한 말의 시작, 즉 발화(發話)예요. 이제야 여성들의 적극적인 말하기가 시작됐는데 말하는 여성을 배제하자고 응답하는 건 성차별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뜻이죠.”

변혜정(54) 한국여성인권진흥원장은 지난 15일 서울 중구 중림동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미투 운동 이후 일부 남성들의 자구책으로 떠오른 펜스룰(여성과 물리적 거리 두기)현상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30여 년간 여성운동에 몸 담았고 정부 내에서 정책에 여성주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변 원장에게도 펜스룰과 같은 의식적 성차별 장벽은 꼭 해소하고 싶은 과제다.

여성인권진흥원은 여성혐오, 데이트폭력, 디지털폭력 등 갈수록 다양해지는 여성폭력 근절과 예방 및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활동하는 기관이다. 지난 8일부터 공공부문 성희롱ㆍ성폭력 특별신고센터를 열어 직장 내부 절차에 따른 성희롱 신고를 주저하는 피해자들의 사건 신고를 접수 받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보니 미투 고발자들이 겪는 다양한 유형의 2차 피해를 많이 접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미투의 단초를 제공한 서지현 검사,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고발해 큰 파장을 부른 김지은씨 등 미투 동참자들은 심각한 2차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변 원장은 “평소 평판이 좋은 가해자라면 실수나 개인적 일탈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며 “피해자도 직업, 연령, 결혼여부, 품성, 남자관계 등을 모두 따져 ‘피해자 프레임’에 맞아야만 피해자로 인정해주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여성을 업무 등에서 배제하자는 펜스룰 현상도 일종의 2차 가해로 봐야 한다는 게 변 원장의 주장이다. 성희롱이나 성폭력은 권력자들의 횡포에서 시행되는 것인데,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들을 예민하다고 여기는 것은 이를 구조적인 문제로 보지 않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변 원장은 “지금까지 직장 내 성폭력 문제를 제기했을 때 피해자가 왕따가 되고 결국 여성이 떠날 수 밖에 없는 직장 괴롭힘으로 번진 일들이 모두 이와 같은 시선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성차별적 태도를 꼭 남성만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변 원장은 과거 친오빠에게 강간 피해를 입은 여성이 친어머니로부터 “왜 집에 있을 때 짧은 옷을 입고 다녔느냐”는 질책을 받고 견디지 못해 상담기관을 찾은 사례를 들려줬다. 그는 “남매의 어머니는 가해자(아들)와 피해자(딸) 중 가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다 보니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게 된 것”이라며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이해와 공감 능력을 키우려면 ‘피해자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 여성운동을 활발히 한 여성계 인사들이 대거 진출했지만, 미투 운동에 따른 정부의 대책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에 대해 변 원장은 “더디게 느껴지는 변화 역시 성차별적 현실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현재 범정부 성희롱ㆍ성폭력대책협의회에 민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변 원장은 “과거 충북도청에서 여성정책관으로 근무해보니 여성관련 정책은 예산이 1%도 안 되는 등 이상과 현실은 차이가 있더라”며 “미투 운동을 통해 법과 제도뿐 아니라 시민사회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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