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열대지역에만 서식
몸 크기와 나이에 따라
정원사·일개미·경비개미…
수십만 마리가 한몸처럼 역할 분담
낫 모양으로 생긴 큰 턱
사람 손가락 벨 정도로 날카로워
컴퍼스 원 그리듯 나뭇잎 잘라
일개미가 옮기는 나뭇잎 위에
무임승차한 한두 마리
“기생파리 막아주는 경비랍니다”
흰색 가루처럼 보이는 공생박테리아를 몸에 두르고 곳곳을 누비며 소독을 하는 잎꾼개미들과 일반 흑갈색 잎꾼개미들이 섞여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기간은 1만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지구 빙하기가 끝나면서 날씨가 따뜻해지고 강우량이 늘면서 곳곳에서 식물이 자라나기 시작했는데요. 주변에 먹을 수 있는 식물이 늘어남과 동시에 인간들은 거주지를 옮겨 다니는 번거로움에서 해방되어 한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도구를 이용해 본격적인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인류의 농사보다 훨씬 앞선 농사의 신이 있습니다. 바로 중남미 열대지역에만 서식하는 잎꾼개미(Leaf-Cutter ant)가 주인공입니다. 이 개미는 나뭇잎을 잘라서 둥지로 가져와 잘게 씹은 후 농사를 짓는 재료로 사용합니다.

우리가 흔히 이용하는 경작법은 아니지만 참나무에 구멍을 뚫어 버섯을 키우는 원리와 아주 흡사한 방법으로 먹이원을 만들어 먹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먹는 버섯은 참나무에 구멍을 뚫고 종균을 접종시켜 배양하는 방식인데요, 잎꾼개미의 경우 나뭇잎을 잘게 씹어 입에 있는 침과 섞어 배지를 만든 후 먹이원인 버섯종균(주름버섯과ㆍ Lepiotaceae)을 배지에 붙여 배양합니다. 더구나 다른 먹이를 먹지 않고 재배작물만 먹으며 평생을 살 수가 있는데요. 얼마나 효율적인 재배농법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농사 이야기의 시작은 공주 잎꾼개미가 결혼비행을 하면서 시작됩니다. 여느 개미와 마찬가지로 잎꾼개미 또한 한 번의 결혼비행과 짝짓기만으로 평생 수백만 마리의 알을 낳을 수 있습니다. 짧지만 강렬한 짝짓기를 마친 공주 잎꾼개미는 여왕 잎꾼개미로 재탄생하는데요. 이미 배 안에는 수백만 개의 정자가 들어차 있습니다. 결혼비행이 끝나면 땅으로 내려와 거추장스러운 날개를 떼어내기 시작합니다. 알을 낳기 위해서는 땅을 파고 들어가야 되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날개 떼기에 전념하는 겁니다.

20년을 사는 여왕개미의 시작은 땅 파기

여왕개미는 부지런히 땅을 파기 시작합니다. 알을 낳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위해 역사적인 첫 삽을 뜬 것입니다. 여왕개미는 앞으로 길게는 20여년 이상을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자신의 굴속에서만 지낼 겁니다. 잎꾼개미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지만 여왕개미의 정확한 수명은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한 군체를 20년 가까이 키우며 여왕개미가 한 번도 바뀌지 않았음을 확인하였기 때문에 여왕개미의 수명은 대략 20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불과 2㎝밖에 되지 않는 작은 생명체가 그렇게 장수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병정개미들이 여왕개미를 보호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몸 크기와 나이에 맞는 철저한 역할 분담

수십만 마리의 잎꾼개미는 하나의 커다란 유기체처럼 유동적으로 움직입니다. 몸 크기와 나이의 맞게 역할분담이 철저히 나뉘어져 있어 작업반장 없이도 서로 협력하면서 일을 합니다. 굴 안에서 여왕개미를 보살피고 나뭇잎을 잘게 씹어 단백질과 당분이 풍부한 주먹이원인 버섯을 키우는 일은 정원사개미(Minims)라 불리는 가장 작은 개미의 업무입니다. 이들은 보통 5㎜미만의 크기로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기어 다니는 것조차 보이지 않을 겁니다. 그보다 약간 더 큰 개미들은 소형일개미(Moniors)로 일개미들이 일을 하는 동안 개미들을 보호하며 적이 공격할 경우 가장 먼저 방어태세에 들어갑니다. 나뭇잎을 가장 많이 옮기는 계급의 개미는 중형일개미(Mediae)로 나무에서 큰 턱으로 나뭇잎을 자르고 둥지 안까지 옮기는 일을 주로 하는데요, 그 중에서 유난히 덩치가 크고 큰 턱이 발달한 대형일개미(Majors)는 일개미들이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보초를 서는 병정입니다. 이들의 큰 턱은 매우 강하고 날카로워 순식간에 적을 두 동강 내버릴 수 있습니다. 일개미들은 나이에 따라서도 역할이 바뀌게 됩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일개미는 알과 애벌레를 돌보며 둥지 중심에서 보모역할을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 늙으면 둥지 외부로 나가 일을 하거나 쓰레기를 버리는 역할을 하게 되지요.

낫 모양으로 되어 있는 잎꾼개미의 턱은 날카롭고 무는 힘이 강하다. 국립생태원 제공
사람의 손가락도 아주 간단히 베는 나뭇잎 재단사

잎꾼개미는 나뭇잎을 자신이 옮길 수 있는 정도의 알맞은 크기로 잘라나갑니다. 가위로 싹뚝싹뚝 자르면 참 편할 텐데 개미에게 가위가 있을 리는 만무하고, 가진 것이라고는 오로지 큰 턱뿐입니다. 잎꾼개미의 큰 턱을 자세히 살펴보면 일반개미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요 끝으로 갈수록 아래쪽으로 휘어져 있는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십 만년 동안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나뭇잎을 자르기 편한 낫모양으로 변화되었을 겁니다. 잎꾼개미의 큰 턱은 생각보다 매우 날카로우며 무는 힘이 강해 나뭇잎을 자르는데 매우 효율적이어서 얇은 나뭇가지를 자를 수 있을 정도인데요. 사람의 손가락 정도는 아주 간단하게 벨 수 있어 아차 하는 순간에 칼에 베이는 상처와 비슷할 정도의 고통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나뭇잎의 크기는 자신의 긴 다리를 이용해 크기를 가늠하는데요, 한쪽 다리를 기준으로 정하고 컴퍼스로 원을 그리듯이 조금씩 원형으로 이동하면서 큰 턱으로 나뭇잎을 조금씩 잘라나갑니다. 개체에 따라 차이는 조금 있겠지만 대부분 개미의 크기에 따라 나뭇잎의 크기도 달라집니다. 참나무나 밤나무와 같은 활엽수의 나뭇잎 한 조각을 자르는 데는 1분이면 충분하며, 잎이 두꺼운 사철나무는 5분 정도 소요됩니다.

과일의 수분과 당분은 간식으로 섭취

잎꾼개미는 중남미 열대지역에 주로 서식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있는 잎꾼개미를 위해서는 먹이 공급을 위해 한동안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습니다. 열대지역에 서식하는 나무를 매일 가져올 수 없기 때문에 인근에서 대량으로 구할 수 있는 먹잇감이 꼭 필요했습니다. 우선 가까운 곳에서부터 테스트를 시작해 조금씩 종류를 확장해 갔는데요. 키가 작은 나무와 초본류(풀)를 비롯해 질이 단단한 10m이상의 목본류(나무)까지 약 50종의 나뭇잎을 주면서 선호하는 목록을 작성했습니다. 그 와중에 매우 선호하는 식물과 선호하지 않는 식물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가지고 간 나뭇잎을 다시 밖으로 버리느냐, 안 버리고 먹이원으로 활용하느냐였습니다. 하지만 잎꾼개미는 호기심이 많은 생물입니다. 비록 좋아하지 않는 식물이라도 일단 잘라서 가져가는 경우를 여러 차례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식물이 아닌 종이나 비닐 같은 재질도 다양한 방법으로 자르는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이것들은 곧바로 입구 밖으로 버려지는 쓰레기 신세가 되었지요. 가장 좋아하는 나뭇잎은 밤나무와 참나무류입니다. 또 나뭇잎이 아니어도 열매나 과일도 때에 따라서는 매우 선호합니다. 과일의 수분과 당분은 잎꾼개미의 간식 같은 역할을 하지요.

기생파리가 나뭇잎을 문 상태로 움직이지 못하는 잎꾼개미의 관절을 공격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공격 당하지 않기 위해서 경비개미와 이동

일개미가 나뭇잎을 잘라서 둥지로 이동하는 거리는 짧게는 몇 m에 불과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50m이상이 되는 거리를 이동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장시간 외부에 노출될 경우 기생파리에게 기생 당할 확률도 그만큼 높아지는데요. 외골격으로 무장한 개미들은 딱히 기생파리에게 약점이 없지만 입에 커다란 나뭇잎 조각을 물고 간다면 상황은 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곤충들의 가장 큰 약점은 단단한 외골격을 연결해주는 관절입니다. 벼룩파리(Phorid fly)라 불리 우는 기생파리는 개미가 나뭇잎을 문 상태로 움직이지 못하는 틈을 놓치지 않고 머리로 연결되는 관절을 향해 공격합니다. 개미의 몸 속에 알을 낳기 위한 행동인데 딱히 저항할 길이 없는 일개미는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기생파리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물고 가는 나뭇잎 위에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경비개미를 한두 마리씩 붙이고 이동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연을 모르는 이라면 무임승차한 개미가 얄밉게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국립생태원에서 전시중인 잎꾼개미도 도입 당시 나뭇잎에 올라타 이동하는 개미가 자주 관찰되었습니다. 하지만 안정기가 지나고 기생파리가 없다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는지 현재는 나뭇잎에 올라타 이동하는 개미의 모습은 예전보다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잎꾼개미들이 덩굴을 따라 부지런히 나뭇잎을 옮기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사람 주택보다 큰 잎꾼 개미의 집

잎꾼개미 둥지는 군체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며 큰 경우는 사람이 살고 있는 주택보다 더 크게 건설되기도 합니다. 문헌에 따르면 지하 5m 이상의 깊이까지 굴이 연결되어 있으며 환기를 원활히 해주는 주요 통로를 기준으로 수백개의 개미 방이 고구마 뿌리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각 방은 알과 애벌레를 키우는 방, 버섯을 키우는 방, 먹이를 저장하는 방 등 다양하게 이용됩니다.

잎꾼개미 둥지는 햇빛이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땅속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곰팡이가 생길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자칫 군체가 전멸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개미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로, 곰팡이가 생기지 않도록 둥지 밖으로 쓰레기를 열심히 내다버립니다. 잎꾼개미는 자신의 몸을 공생박테리아(Actinobacteria)에게 제공하고 항생물질을 얻기도 합니다. 공생박테리아로부터 얻은 항생물질은 주먹이원인 버섯을 감염시키는 곰팡이균을 억제시키고 쾌적하고 깨끗한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바로 개미와 박테리아의 공생관계가 형성된 겁니다. 흑갈색의 개미는 흰색 가루처럼 보이는 공생박테리아를 몸에 두르고 곳곳을 누비며 소독을 하는데 공생박테리아가 많을 때에는 개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만큼 온몸을 둘러싸기도 합니다.

잎꾼개미들이 기호에 맞지 않아 버린 나뭇잎들이 둥지 입구에 쌓여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국립생태원에 사는 잎꾼개미들

국립생태원에서 전시중인 잎꾼개미 아타 세팔로테스(Atta cephalotes)의 고향은 트리니다드 토바고라는 남미의 작은 나라입니다. 2015년 10월에 한국에 들어온 잎꾼개미는 엄격히 정해진 검역절차를 거쳐 생태원으로 이송되었고, 외부 탈출방지를 위해 특수하게 제작된 전시장에서 관리 중에 있습니다. 처음 도입하였을 당시 여왕개미를 중심으로 어른 주먹 정도 크기의 버섯덩어리와 500여마리의 일개미가 전부였지만, 관리자의 노력으로 현재는 100배 이상의 군체로 성장했습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개미생태를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좋은 편입니다.

임헌명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연구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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