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이면서도 현 정부에 경고 암시
혐의 부인… 檢, 구속영장 신중 검토
이명박 전 대통령이 14일 서울중앙지검으로 출두하며 포토라인에 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검찰청 앞에 선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이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검찰에 소환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했고, “참담하다”며 괴로워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할 말이 많다”며 자신을 겨냥한 수사에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14일 오전 이 전 대통령은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출두해 “경제가 어렵고 안보 환경이 엄중할 때에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대단히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는 “저를 믿고 지지해 준 많은 분들과 사건과 관련해서 어려움을 겪는 많은 분들에게도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뜻을 전했다.

그는 이날 종이 한 장에 미리 입장문을 준비해 와 읽었다. 입장문은 이번 소환을 ‘범죄 수사’가 아닌 ‘정치적 사건’으로 보이게 하려는 복선과 암시를 여럿 담았다.

우선 ‘죄송’과 ‘미안’을 연거푸 반복한 이 전 대통령 발언은 수사가 무르익어 가던 지난해 말과 올해 초 강경한 자세에서 상당히 물러선 것이다. 지난해 11월 그는 “현 정부의 적폐청산을 보며 감정풀이냐 정치보복이냐는 의심이 든다”고 했고, 올 1월에는 자신을 향한 수사를 “보수 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으로 규정하며 문재인 정부와 검찰수사를 강력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그의 재산을 관리하고 불법자금 모금에 개입한 측근과 재산관리인들이 잇달아 검찰에서 불리한 증언을 쏟아내고 20가지가 넘게 범죄 혐의가 쌓이자 직설적인 비난을 삼간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몸을 숙이면서도 현 정부에 대한 경고로 읽힐 수 있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의 발언 중 가장 주목할 대목이 바로 “역사에서 이번이 (전직 대통령의 소환의) 마지막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한 부분이다. 이전 정권에서 과거청산 작업에 따라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사정이 이어졌고, 자신 역시 그와 같은 정치적 논리에 의해 희생되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말은 현직 대통령 역시 퇴임 후 자신과 같은 처지에 몰릴 수 있다는 점을 넌지시 경고하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하고 싶은 말도 많지만 말을 아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한다”고 말한 부분 역시나 비수를 드러낸 화법으로 읽힌다. 이것은 이 전 대통령 측근들이 평소 “우리라고 친노에 대한 정보가 없겠냐”고 씩씩거리며 경고했던 일화와도 맥이 닿아 있다.

국민 앞에 사과했던 그는, 몇 분 후 검찰청 조사실 안에 들어가자 그 많은 물증과 증언을 거스른 채 자신에게 쏟아진 갖가지 혐의들을 부인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 전 대통령은 다스와 도곡동 땅 등 차명 의심 재산이 본인과 무관하다는 입장”이라며 “(내 것이 아니라는) 기존 입장에서 변화가 없었다”고 말했다. 뇌물수수 등 중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의심받는 피의자가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만큼, 검찰은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보고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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