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섭 기자의 교과서 밖 과학] <1>‘미투’ 가해자는 어디에나 있다

“절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19세기 영국 역사학자 로드 액튼의 명언이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새삼 진리였음이 입증되고 있다. 도지사 국회의원 영화감독 유명배우 등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관계ㆍ성추행 폭로가 연일 이어지고 있어서다. ‘미투(Me Too)’ 운동의 가해자로 지목된 이 권력자들은 “강제로 한 건 아니다” “연애감정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강제성ㆍ고의성을 부인하려는 의도다. 끔찍한 경험을 용기 내 공개하는 피해자의 아픔을 조금도 공감하지 못하는 이런 해명이 사람들을 더 분노하게 한다. 그러나 심리학 연구 결과들을 보면 어쩌면 그 권력자들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 있다.

올바른 처신과 훌륭한 언행, 뛰어난 성과를 거둬 권력을 갖게 되지만, 위로 올라설수록 자기중심적인 행동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권력의 역설’을 주변에서 목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06년 미국 심리과학협회가 발행한 심리과학학술지에 실린 ‘알파벳 E 실험’은 이런 ‘권력의 자기중심성’을 명쾌하게 입증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ㆍ뉴욕대 연구진은 평균 연령이 20세인 57명(남성 16명ㆍ여성 41명)의 실험 참가자를 권력자ㆍ피권력자 집단으로 나눴다. 권력자 집단에겐 남에게 명령했던 기억을 떠올리거나 적게 했고, 피권력자 집단에겐 명령을 받은 경험을 쓰도록 했다. 그런 뒤 상대방이 볼 수 있도록 알파벳 E를 이마에 써보라고 했다.

그 결과 권력자 집단 24명 중 8명(33%)이 E를 그대로 적었다. 피권력자 집단에선 해당 비율이 12%(33명 중 4명)에 그쳤다. 알파벳 E를 그대로 쓰면, 상대방은 좌우가 바뀐 모습을 보게 된다. 권력자일수록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자기중심적일수록 상대방 입장을 살피는 공감능력은 떨어진다. 캐나다 토론토대ㆍ윌프리드 로리어대 연구진이 2014년 심리실험학회지에 투고한 ‘거울뉴런(mirror neuron)’ 실험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연구진은 45명의 실험참가자를 고권력(18명)ㆍ중간(10명)ㆍ저권력(17명) 집단으로 나눴다. 실험실로 들어선 고권력 집단에겐 누군가에게 명령한 경험을 적게 했고, 저권력 집단에겐 명령 받은 기억을 쓰게 했다. 중간 집단에겐 실험실에 오기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쓰도록 했다.

그런 뒤 손으로 고무공을 쥐는 영상을 보여주면서 뇌 활동을 관찰한 결과, 저권력ㆍ중간 집단에선 몸을 움직이게 하는 운동유발전위(MEP) 활성화 정도가 각각 26.06%, 12.14% 증가했다. 타인의 말을 듣거나 몸짓을 보면 그 사람을 따라 하거나,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신경세포(거울뉴런)가 작동한 결과다. 반면, 고권력 그룹에선 MEP 활성화 정도가 오히려 4.10% 떨어졌다. 미투 운동으로 폭로된 성폭행을 두고 권력자인 가해자와 피해자의 인식 차이가 크게 나타나는 건 권력자의 공감능력이 크게 떨어져서 일지도 모른다.

권력남용의 또 다른 이유는 욕망이다. 권력자들은 자신의 욕망이 정당하고,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 준다고 여긴다. 부유한 사람일수록 세금 탈루, 뇌물수수와 같은 행위를 용인할 수 있다고 답한 비율이 높았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2012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실린 운전행태 연구결과 역시 이를 입증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려 할 때 운전자가 차를 멈추는지, 지나치는지 여부를 관찰했다. 캘리포니아주 교통법은 차량 운전자가 도로ㆍ교차로 횡단보도에서 완전히 멈춰 보행자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 274대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려 할 때 고급차량 운전자들이 멈추는 비율은 54%에 그쳤다. 가격이 저렴한 차종의 차주들은 보행자가 다가오면 항상 운행을 멈췄다.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비윤리적 행동을 일삼는 건 단지 엄청난 권력을 쥔 소수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국내 대학생의 5%가 조현병(정신분열증) 고위험군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지위가 낮을 때는 공감하는 척 생활하다가, 높은 자리에 올라 견제하는 사람이 없어지면 가학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김명선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조현병 환자는 정서적인 공감에 관여하는 뇌의 앞부분(안와전두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다른 사람의 느낌이나 슬픔을 잘 이해하지 못 한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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