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중환자실 풍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며칠째 도시락을 싸길래 물었다. “이제 밥 먹으러 지하식당 내려갈 짬도 없어요?” 보통 오후 2시 넘어서야 점심을 먹는다는, 가끔 오늘은 바빠서 굶는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아내가 나물을 옮겨 담다 답했다. “그건 아니에요. 담에 말할게요.”

몇 주 뒤 아내가 까르르 웃었다. 병원에 몸져누운 아들에게 늘 ‘너 죽고 나 죽자’ 타박하던 엄마가 영하 날씨에 대기실 의자에서 쪽잠 자는 걸 목격,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 “지방에서 올라와 아침밥 챙겨먹기가 마땅치 않다”길래 도시락을 챙겨 줬다는 자초지종이 이어졌다. 정작 아내의 기쁨은 다음 말에 있다. “그 뒤로 엄마가 나쁜 말을 거의 안 하고 아들 상태도 좋아졌어요.”

팔불출 작정하면 저런 미담들로 글을 도배할 수 있다. 간호사가 얼마나 숭고한 직업인지 나는 안다. 대학병원 중환자실 7년을 더해 경력 17년 간호사인 아내 덕이다. 얼마나 불쌍한 직업인지도 짐작한다. 밥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는 쉼 없는 장시간 노동, 열악한 처우, 탈진(번 아웃), 태움(직장 내 괴롭힘) 등을 아내가 드문드문 호소하면 짐짓 외면하며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물러 줬다.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죠, 뭐” 추임새를 넣으며. 한 푼이 아쉬운 형편이라 그만 둘까 봐 두려웠다.

서울 대형병원 중환자실 간호사의 안타까운 부고를 접하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태움이 죽음을 불렀는지, 왜 태우는지, 해결책은 무엇인지 따지다 보니 궁금하고 헷갈렸다. ‘태움은 그토록 견디기 힘든가, 인력 부족 등 구조만 개선하면 근절될까, 인성 문제 아닌가.’ 고사하는 중견 간호사와 며칠에 걸쳐 안방 심야 인터뷰를 했다.

-태움 당한 경험이 있나.

“‘머리는 장식이냐’ ‘뇌는 집에 두고 머리만 달고 나왔냐’ 셀 수도 없죠. 골육종을 앓다 숨진 다섯 살 딸에게 ‘놀이동산 못 데려가 미안하다’ 오열하는 아빠를 보고 덩달아 울었더니, ‘너만 착한 척하냐’더라고요. 나이트(밤샘근무) 끝나고 집에서 자고 있으면 더 못 자게 전화해요. 임신하고 나이트에서 제외됐더니 ‘그렇게 노니까 좋으냐’는 유령 문자가 날아오고, 결국 유산까지 됐죠. 알게 모르게 이뤄지는 태움에 시달리면 견딜 수 없어요.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어요. 6년 차 때쯤 되니 심신이 탈진해서 죽을 것 같더라고요. 숨진 간호사도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어요.”

-태운 적은 없나.

“교대시간에 준비가 덜 된 후배 업무는 인계를 안 받았어요. ‘앞으로 나한테 인계하지 마’ 화내기도 했고요. 저를 무서워한 후배도 있어요. 피해자이면서 서서히 가해자가 되는 거죠. 작은 실수에 목숨이 오가니까 완벽을 추구하고 예민할 수밖에 없어요. 업무 실수는 따끔히 지적하더라도 독설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후배 돌봐 주던 선배들 본 받으려 했고요.”

-해법이 있을까.

“동등한 존재로 서로 존중해야 해요. 선배는 신규(신입 간호사)도 나중에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격려하며 기다려주고, 신규는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알고 못하더라도 자신을 너무 탓하지 말아야 해요. 배치 부서에서 6개월 정도 충분히 훈련시킨 후 환자를 담당하게 하면 좋겠어요. 인성, 시스템, 처우 모두 지금 그대로여선 안 되죠.”

사실 태움을 간호사들 다툼이나 관행으로 몰아가고, 인력 충원과 교육은 뒷전으로 미룬 채 침상 늘려 신규로 채우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 대신 간호사들 소명의식에 기대는 병원 경영진의 탐욕이 악의 근원이다. 물론 이를 핑계로 그릇된 인성을 돌아보지 않고 악행을 저지르는 자도 각성해야 한다.

-더 할 말은.

“신규들은 밥 잘 챙겨 먹으세요. 병원에 올인(all in) 마세요. 취미생활도 하면서 정서적으로 목마르지 않도록 하세요.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잊지 마세요. 간호사는 의료인인 동시에 육체노동자이고, 감정노동자입니다.”

고찬유 사회부 차장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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