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올의 2018 가을겨울 패션쇼장 모습. 여성의 인권에 대한 각종 구호로 도배돼 있다. 디올 인스타그램

2018년 가을 겨울의 옷을 선보이는 뉴욕, 런던, 파리, 밀라노의 패션위크도 이제 마무리에 들어가고 있다. 이번 시즌 역시 많은 디자이너들이 다양한 사회ㆍ정치적 메시지를 패션 안팎에 담아냈다.

디올은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후 벌써 네 시즌 째 소설가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의 책 제목이기도 한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We should all be feminists)’ 슬로건을 앞세우고 있다. 디올은 톰보이 스타일의 1960년대 풍 페미니즘 패션을 전면에 내세우며 아예 패션쇼장의 벽과 캣워크 위에 슬로건을 깔았다. 2012년 동성 결혼을 한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버버리를 떠나는 마지막 패션쇼에서 LGBTQ+(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에 대한 존중의 메시지를 담았다. 성소수자의 상징인 무지개 컬러를 버버리의 대표 상품인 트렌치 코트, 머플러뿐 아니라 거의 모든 제품에 집어넣었고 “다양성이 창의력의 근본"이라는 인터뷰를 남겼다.

캣워크 위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외에 다른 방식도 있다. 세 번째 아이를 출산하면서 이번 뉴욕 패션위크 참가를 포기한 레베카 밍코프는 대신 매년 1월 열리는 ‘여성 행진(Women’s March) 2018’을 후원했다. 그러면서 ‘RM 슈퍼우먼’이라는 이름으로 행사 주최자들과 참가자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담은 캠페인을 벌였다. 버질 아블로의 ‘오프-화이트’는 이민자들로 구성된 파리의 축구단 ‘멜팅 패시스(Melting Passes)’의 유니폼을 나이키와 협업해 제작했다. 이 팀은 적법한 거주 요건을 갖추지 못해 어떤 공식적인 팀에도 들어갈 수 없던 이들로 이뤄져 있다. 오프-화이트는 이번 파리 컬렉션에 이 팀의 멤버 16명을 초대하기도 했다. 구찌의 경우도 있다. 지난달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으로 17명이 사망하자 미국 내 총기 규제에 대한 여론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구찌는 이달 말 워싱턴 DC에서 예정된 총기 규제 강화를 위한 시위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에 50만달러를 기부하기로 했다.

이민자들로 구성된 프랑스 파리의 축구단 멜팅 패시스. 오프-화이트는 나이키와 협업해 이 팀의 유니폼을 제작했다. 멜팅 패시스 홈페이지

패션 브랜드들이 전달한 메시지는 크게 페미니즘, 인종주의 반대, 반 이민정책 폐지 등으로 묶을 수 있다. 이런 이슈들은 패션 산업을 유지시키고 있는 중요한 틀이기도 하다. 과거엔 많은 디자이너들이 티셔츠 위의 슬로건, 핀과 배지를 통해 보다 직접적으로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냈다. 그때와 비교하면 메시지는 다소 간접적이고 상징적으로 바뀌었지만 대신 차곡차곡 패션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은 걸 볼 수 있다.

물론 패션이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지겹다는 반응도 있다. 어차피 옷 팔려고 하는 거 아니냐며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고급 패션이 정치적 메시지를 쏟아내는 건 실제 옷 구입 여부와 무관하게, 대중과의 접점이 늘어나고 문화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졌기 때문이다. 고급 패션은 한때 상류층 소비자들만으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이제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그것만으로 버틸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소비 계층도 훨씬 다양해졌다.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 자체에 반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불합리했던 과거의 질서를 바로잡고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정도의 당위적 메시지에도 반발이 있다는 건, 이런 당연해 보이는 메시지들이 여전히 효용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메시지의 유효성은 그에 따른 행동이 만든다. 메시지를 만드는 데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특히 패션위크처럼 많은 이들이 참여하고 보고 구입하는 행사에서 홀로 사회와 동떨어져 존재할 수 있는 건 없다. 메시지의 등장은 그만큼 사회가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꼼 데 가르송은 지난 10년 간 유색 인종, 특히 흑인 모델을 백인에 비해 훨씬 적게 등장시켰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었는데 올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비율의 흑인 모델이 등장했다. 메시지가 크게 울릴수록 신경을 쓰는 사람은 이렇게 늘어나기 마련이다.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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