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가 바꾼 아카데미상 시상식

저드 등 미투 점화 세 여배우 연설
“성별ㆍ인종 편견 말하는 분께 경의”
스필버그 등 남자 영화인들도 배지 달아
작년 男주연상 ‘성희롱 전력’ 시상 못해
애슐리 저드와 애너벨라 시오라, 셀마 헤이엑이 4일 오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0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 참여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 연합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변화는 새로운 목소리의 힘을 통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4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 제90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아카데미상) 시상식 무대에 오른 배우 애슐리 저드는 ‘미투(#MeTooㆍ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촉발한 사회 변화를 언급하며 “함께 모여 강력한 소리를 낼 때 성차별의 시대는 끝난다”고 말했다.

1990년대 인기 배우였던 저드는 지난해 10월 미국 할리우드 유명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행을 처음으로 폭로해 미투 운동을 이끌었고, 지난해 ‘침묵을 깬 사람들’ 중 한 명으로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다. 더는 혼자가 아니었다. 애너벨라 시오라와 셀마 헤이엑 등 와인스틴 성폭력을 초기에 고발한 배우들은 저드와 연설자로 나섰다. 그들은 “멈추지 않고 성별과 인종에 대한 편견에 대해 이야기하는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며 여성을 넘어 흑인 등 미국에서 외면 받는 소수자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다.

세 사람의 연설이 끝난 뒤 무대 스크린엔 보수적인 할리우드의 편견을 깬 영화 속 여성 영웅과 감독들이 등장했다. 영화 ‘원더우먼’의 원더우먼(갤 가돗)을 비롯해 ‘델마와 루이스’의 델마(지나 데이비스), 여성 성장 영화 ‘레이디 버드’를 연출한 배우 겸 감독 그레타 거위그 등이었다. 아카데미에서 쫓겨난 할리우드 거물 와인스틴의 빈 자리를 채운 건 여성 예술인들이었다. ‘쓰리 빌보드’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시상식에 참석한 여성들을 모두 일으켜 세운 뒤 다음과 같이 외쳤다. “우리에겐 말할 이야기가 있고 해야 할 계획이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화두는 여성과 이민자 등 소수자를 위한 평등이었다. 이번 시상식엔 골든 글로브처럼 ‘검은 물결’이 일지 않았다. 참석자들은 검은색 옷을 맞춰 입는 대신 ‘타임스 업(Time’s upㆍ성폭력과 성차별의 시대는 갔다)’ 배지를 달고 성폭력과 차별 근절의 메시지를 가슴에 담았다. 제인 폰더 뿐 아니라 스티븐 스필버그, 기예르모 델 토로 등 남성 감독들도 배지를 달고 뜻을 보탰다.

미투 운동으로 아카데미 트로피는 ‘아름다운 동상’이라 불리는 촌극도 벌어졌다. 시상식 진행자이자 유명 방송인인 지미 키멜은 무대 한 쪽에 세워진 아카데미 트로피 모형을 가리키며 “양손이 (주요 부위를 가린 채) 손을 모으고 있고, 상스러운 말도 하지 않는다”고 말해 시상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남성을 닮은 아카데미 트로피 모형을 빗대 와인스틴 사건을 비꼰 것이다. ‘미투’ 가해자인 남성을 향해 ‘19금’ 유머로 울린 경종이었다.

지난해 남우주연상 수상자인 케이시 애플렉은 과거 성희롱이 문제가 돼 이날 시상식에 참여하지 못했다. 전년도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여우주연상을 시상하는 관례를 지킬 수 없어 배우 조디 포스터와 제니퍼 로렌스가 대신 시상자로 무대에 올랐다. 반면 농구 스타 출신 코비 브라이언트는 ‘디어 바스켓볼’로 애니메이션 단편영화상을 받아 구설에 올랐다. 브라이언트는 2003년 19세 여성 성폭행 혐의를 받아 미투 운동에 역행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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