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biz 리더] 리옌훙 바이두 CEO

경극배우 꿈꾸던 어린이
미국 유학 중 다우존스 입사
검색엔진 알고리즘 전문가로
31살에 베이징에 돌아와
직원 6명과 검색엔진 창업
3년 만에 흑자 초고속 성장
인공지능 혁신 전략 세우고
딥러닝 연구소ㆍ자율차 올인
차세대 먹을거리 찾아 질주

“그의 역할 없이는 중국의 인공지능(AI)을 논할 수 없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아시아판은 지난 1월 19일자 표지모델로 리옌훙(李彦宏) 바이두(百度) 최고경영자(CEO)를 다뤘다. 중국 정보기술(IT) 기업인으론 처음이다. 타임은 “리옌훙이 설립한 바이두는 구글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큰 검색엔진”이라면서도 정작 표지모델에 선정한 건 “AI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자국 내 AI 산업 규모를 오는 2020년 1,500억위안까지 늘리고, 2025년 4,000억위안, 2030년에는 1조위안을 넘어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의 산업 고도화 정책 선봉에 선 사람이 바로 리옌훙이다. 중국 공산당의 정책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이기도 한 그는 지난해 4월 ‘2017 중국 IT 리더 서밋’에서 “인터넷이 식욕을 돋우는 애피타이저라면 인공지능은 메인 요리다. 인공지능은 과거 산업혁명을 촉발한 기술에 비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바이두가 보유한 AI 관련 특허는 500개가 넘는, 중국 내 1위다.

리옌훙 바이두 최고경영자(CEO)를 다룬 지난 1월 19일자 타임 아시아판
미국 유학 후 31세에 창업

1968년 중국 동부 산시(山西)성 양취안(陽泉)에서 1남4녀 중 외동아들(넷째)로 태어난 리옌훙의 꿈은 경극배우였다. 침대보로 경극배우들의 의상을 흉내 내며 놀곤 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간 친누나가 주위의 부러움을 사자, 이내 공부로 방향을 틀어 고교를 차석으로 입학했다. 1987년 중국의 대학입학시험인 가오카오(高考)에서 양취안 지역 수석을 차지하며 중국 최고 명문인 베이징대 정보관리학과에 입학했다.

미국 대학원 면접에서 “중국에도 컴퓨터가 있냐”는 수모를 당했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컴퓨터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박사 과정을 준비하다가 1994년 다우존스에 입사했다. 다우존스에서 리옌훙은 금융정보검색엔진 개선 작업 등을 수행했다. 1996년 개발한 ‘랭크덱스’(Rank Dex)란 검색엔진 알고리즘은 미국 특허까지 받았다.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사이트가 화면 위쪽에 나타나게 하는 이 기술은 바이두 검색엔진의 기초가 된다. 미국 검색엔진업체 인포시크에서 1997년부터 2년간 일한 리옌훙은 1999년 중국으로 돌아가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의 나이 31세 때였다.

‘짝퉁 구글’ 비난 넘어 인터넷 검색제국 일궈

바이두의 시작은 초라했다. 2000년 1월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베이징 중관춘에서 직원 6명과 함께 문을 열었다. 바이두라는 이름은 송나라 시인 신치지의 시구에서 따왔다. ‘무리 속에서 그녀를 수백, 수천 번 찾았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가 등불 아래에 있더라’라는 시구 중 ‘수백번(百度)’이라는 말에서 차용한 것이다.

사업 초기 바이두는 중국 내 포털에 검색엔진을 공급하는 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별다른 성장을 하지 못하자 검색엔진에 집중하기로 했고, 2001년 ‘바이두 닷 컴’이 문을 열었다. 세계 최대 검색업체인 구글의 간결한 초기화면을 닮은 모습으로 ‘구글 짝퉁’이란 비난을 받았지만, 바이두는 고속성장을 거듭하며 3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바이두 로고

2005년 리옌훙은 또 다른 도전에 나선다. 세계적인 기업이 되려면 해외 자본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는 미국 나스닥에 바이두를 상장하기로 했다. “비즈니스 전략을 어떻게 구사하는지가 승부를 결정하는 진정한 요소”라는 생각에서다. 2005년 8월 5일 상장 첫날, 바이두 주식은 공모가(주당 27달러)를 훌쩍 웃도는 주당 66달러에 거래가 시작돼 122.54달러로 마감했다. 공모가보다 354% 높은 금액으로 종가를 찍으며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렀다. 나스닥에서 상장 첫날 주가가 300% 이상 뛴 것은 닷컴 열풍이 한창이던 2000년 이후 5년 만이었다. 2007년에는 중국 기업 최초로 나스닥100 지수에 포함됐다. 주가가 700달러 이상으로 치솟은 2010년엔 주식을 10대 1로 액면분할했다. 지난달 27일 바이두 주가는 250.46달러를 기록했다.

모든 스파클링 와인을 샴페인(프랑스 상파뉴 지방에서 나는 스파클링 와인)으로 부르는 것처럼, 현재 중국에선 ‘인터넷 검색=바이두’란 공식이 통용될 정도다. 중국 내 시장점유율이 무려 80%에 달한다. “한 가지 일에 미쳐야 남들이 해내지 못한 것을 할 수 있다”는 리옌훙의 말처럼 그는 검색 기술로 인터넷 제국을 일군 것이다. 지난해 중국 후룬(胡潤)연구소가 꼽은 중국 브랜드가치 순위에서 바이두는 타오바오와 텐센트에 이어 3위(브랜드가치 3,150억 위안ㆍ약 53조7,800억원)에 올랐다.

“AI, 인류의 삶 크게 변화시킬 것”
리옌훙 바이두 최고경영자가 지난해 7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AI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바이두 제공

바이두는 ‘검색 왕국’에 머물지 않고,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인터넷기업에서 벗어나 AI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바이두는 지난해 베이징에서 열린 바이두 개발자대회(Baidu CREATEㆍ바이두 크리에이트)에서 ‘인공지능 올인(All in AI)’ 전략을 발표했다. 여기엔 AI를 새로운 기술혁명으로 보는 리옌훙의 의지가 크게 담겼다.

그는 지난해 출간한 저서 ‘지능혁명’에서 “증기ㆍ전기ㆍ정보기술혁명 등 지난 3번의 혁명은 인류가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과정이었지만, AI 혁명 시대에는 인류와 기계가 공동으로 세계를 혁신하게 될 것”이라고 적었다. 사람이 직접 도구 사용법을 익힐 필요 없이 기계에 지시만 하면 되기 때문에 업무효율이 크게 높아지는 등 비약적인 발전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얘기다. 리옌훙이 “AI 기술혁명은 전 세계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도 있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바이두는 2013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AI 연구소인 ‘딥러닝 연구소’를 세웠고, 2016년 4월부터는 ‘베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9세기 소설가이자 근대 공상과학(SF) 소설의 선구자인 쥘 베른의 이름을 딴 것으로, 바이두가 보유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2~3세 유아의 지능을 갖춘 AI인 ‘바이두 대뇌(百度大腦)’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에는 자율주행차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7월 리옌훙 회장은 ‘2017 AI 기술개발자 대회’에서 자사가 개발한 무인 자율주행시스템 ‘아폴로(Apollo)’를 직접 시연하기도 했다. 타임지는 “현재 130개 제조업체들이 바이두의 자율주행 기술을 채택했다”며 “향후 자율주행차 시장에서 바이두의 역할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전체 매출액의 90%를 차지하는 검색 광고가 위축되고 있는 판단에 따라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아 나선 것이겠지만 리옌훙이 말하는 AI 대세론은 예사롭지 않다. 리옌훙은 “모바일ㆍ인터넷 시장이 성숙기에 들어서 더는 크게 발전할 가능성이 없다”며 “향후 수년 내 언어 장벽이 완전히 깨지는 등 AI는 무인주행ㆍ동시통역ㆍ사물인터넷(IoT) 등에서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맨손으로 자수성가해 산업 생태계까지 바꿔놓은 그의 말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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