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 때부터 우리 주위엔 괴물들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중학교 때 사회 선생의 체벌 방식은 성기를 움켜쥐는 것이었다. 그 나름대로 선은 있는 건지 여학생들을 건드리진 않았다. 여학생들 앞에서 남학생을 추행했을 뿐. 뭐, 그렇다고 그가 괴물이 아닌 것은 아니다.

대학교 때 어떤 교수에 대한 안 좋은 소문도 있었다. 술자리에서 학생들의 허벅지를 그렇게 쓰다듬는다는. 그래서 그 교수의 옆자리는 늘 남학생들이 대신 채웠다. 뭐, 그 나쁜 손버릇은 딱히 성별을 가리지 않았지만.

퇴폐업소를 드나드는 상사는 정말이지 끔찍한 존재다. 그들은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며 꼭 팀원을 데려간다. 특히 막내 직원들은 “좋은 게 좋은 거”, “기분 좀 맞춰 드리라”는 주변의 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2차에 합류해야 한다. 그런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에 넌더리를 내면서도 벗어나진 못했다.

모두가 이런 괴물은 아니었다. 굳이 세라면 착한 사람이 훨씬 더 많다. 그러나 이런 괴물은 조직 속에 단 한 마리만 있어도 셀 수 없이 많은 피해자를 만든다.

괴물은 피해자를 겁박한다. 반드시 협박이나 폭력만은 아니다. 괴물의 요구를 거부하면 불이익이 따를 것만 같다. 그 세계에 더 이상 발붙일 수 없을 것만 같다. 때로는 주변 사람들이 덩달아 피해자를 겁박하기도 한다. 이 판을 깨지 말라. 참아라, 세상이 이대로 평화로울 수 있도록. 그게 사실 괴물이 지배하는 평화일지언정.

‘미투 운동’은 근래 세계적으로 촉발되고 있는 성폭력 고발 운동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곪을 대로 곪아 언젠가는 터져 나올 수밖에 없던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이를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실 이제야 이렇게 공론화되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이미 괴물들이 도처에 있었으니까. 성기를 움켜쥐던 선생과, 허벅지를 만지던 교수와, 퇴폐 업소를 강권하던 상사들이.

어떤 사람들은 미투 운동을 여성과 남성의 대결 구도로 단순화한다. 물론 남성으로서,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어온 성희롱과 추행, 그 이상의 성폭력에 대해 완전히 공감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남성들이라 해서 알량한 권력을 흔들며 약자들을 겁박하던 그 괴물들을 몰랐을 수는 없다. 그 겁박에서 자유로웠을 수도 없다.

괴물들은 굴욕을 주기 위해, 자신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 상대를 추행했다. 양상은 다르지만 폭력을 통해 상대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맞닿은 데가 있다. 여성들이 당한 것과 동등한 것은 아닐지라도 젠더 폭력은 남성들도 병들게 한다. 그런데도 성별이 같다는 이유로 가해자의 편이 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생각해보면, 소년들의 유년기는 약육강식의 정글이었다. 나는 포식자가 아니었다. 몸은 왜소하고 운동은 젬병이었으며, 잘 노는 것도 아니었고 연애 상대로서 인기도 없었다. 언어폭력은 물론 육체적 폭력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교실은 그런 나를 더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남성답다는 고정관념에 맞춰 행동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먹잇감이 된다. 그 때문에 나는 의연한 척해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성기를 움켜쥐어도 장난인 척 웃어넘기면서 말이다. 괴물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나는 소위 남성다움이라는 고정관념에 부응하려 애를 쓰고 괴로워했다. 때로는 기사도를 발휘했고, 때로는 남자들만의 문화에 순응했다. 진짜 싸워야 할 괴물과 싸우는 대신, 괴물들이 만든 질서에 나 자신을 옭아매고 살았다. 그것도 우리의 병이었다.

우리는 짐승들의 시대를 살아왔다. 그로부터 해방되어야 할 것은 여성뿐만이 아니다. 버락 오바마는 이렇게 얘기했다. 페미니즘이란 우리 모두가 평등할 때 더욱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괴물들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그 겁박에서 해방된 세상을. 미투 운동이 우리 모두를 해방할 것이다.

임예인 슬로우뉴스, ㅍㅍㅅㅅ 편집진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