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은 더 이상 남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중학생 때부터 스쿠터와 모터사이클을 타온 20대 직장인 허은서씨는 “내 몸과 탈 것이 하나로 합체되는 바이크에는 자동차로 달릴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치명적 쾌감이 있다”고 말했다. 류효진 기자

슬슬 다시 시동을 걸 시점이다. 겨우내 억눌렀던 질주의 본능이 동면(冬眠)을 깬 짐승처럼 여자의 몸에 전율을 일으킨다. 22일 오후 서울 잠실3사거리. 직장인 허은서(28)씨가 헬멧부터 재킷까지 올 블랙 착장으로 자신의 파란 바이크에 올라탄다. 바이크는 지난해 10월 700만원 주고 구입한 BMW 모터라드 G 310 GS 기종. 디자인에 매료돼 출시 10개월 전부터 기다려온 바이크다. 시트고(좌석높이)가 높아 발이 땅에 안 닿긴 하지만, ABS(자동 브레이크 시스템)가 장착돼 있어 여성들이 타기 좋다. 스트로크(엔진의 피스톤이 움직이는 거리)가 길어 오프로드 환경에서 갑작스레 마주하는 과속방지턱 같은 장애물을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허씨가 시동을 걸자 바이크는 목청을 고르는 테너 가수처럼 부릉부릉 헛기침 몇 번 하더니 이내 매끄럽고 날렵하게 고음을 향해 치달았다. 납작하게 몸을 낮춰 바이크와 하나가 된 허씨가 ‘13인의 아해’처럼 도로를 질주한다. 지난해 그는 잠실 집에서 장지동 회사까지 이 바이크를 타고 출퇴근했다.

직장인 허은서씨가 22일 자신의 BMW 모토라드를 타고 집 근처 잠실3사거리를 달리고 있다. 류효진 기자
3월의 모터사이클, 여자의 속도본능

“야, 무슨 오토바이야!” “땅에 발도 안 닿는데 저걸 어떻게 타고 다녀?” 허씨가 바이크를 타고 출근하자 회사 동료들이 보인 반응이다. 배기량 313cc의 쿼터급(250~400cc) 바이크지만, 묵직한 몸체가 저배기량처럼 보이지 않아 더더욱 염려가 쇄도했다. 남자친구의 반대도 심했다. 그래서 한번도 라이딩 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자동차 같은 탈것에 관심이 워낙 많았어요. 중학교 때 같은 학교 남학생이 스쿠터를 가져왔는데, 빌려서 타봤더니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나도 이걸 사야겠다’ 해서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했죠. 돈을 모아 중고 클래식 스쿠터를 샀고, 학교에 저 같은 여자친구들이 여럿 있어서 함께 타고 다녔어요.”

그렇다면 그는 ‘날라리’ 출신이었단 말인가. 허씨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희 때는 스쿠터가 정말 유행이었어요. 제가 보드나 인라인 스케이트 타는 것도 어릴 때부터 정말 좋아했거든요. 모터사이클도 그 비슷한 거죠.”

학창시절 내내 ‘달리는 소녀’였던 허씨는 고3때 스쿠터를 타다 대형사고가 나 크게 다친 적이 있다. 그럼에도 대학시절 스쿠터를 포기 못했다. 말리다 못한 부모님이 자동차를 사주며 더 이상 바이크를 타지 말 것을 권한 지 어느덧 10년. 어린 시절부터 지속돼온 탈것에 대한 지극한 관심 덕에 그는 대학 졸업 후 자동차 판매 회사에 취업했다. 하지만 그 흥미롭던 자동차가 일이 되고 나니 어쩐지 시들해졌다. 업종을 가리지 않고 적용되는 ‘일과 취미의 부조화 법칙’. 다시 맨몸으로 질주하던 바이크의 쾌감이 떠올랐다.

허은서씨는 “여성이라서 바이크를 타기에 불리한 점은 없다”고 말한다. 아직은 여성들이 관심을 갖기에 벽이 높지만 여성 라이더들이 늘어나는 게 확실히 체감된다고. 류효진 기자

10년 만에 다시 탄 바이크는 조금 겁이 나기도 한다. 예전에는 바이크 좀 탄다면 마땅히 할 줄 알아야 하는 묘기 ‘윌리’(주행 중 앞바퀴 들어올리기)쯤은 가뿐히 할 줄 알았지만, 요새는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바이크를 타는 것일까.

“자동차랑은 다른 쾌감이 있어요. 아무래도 차 안에서 운전을 하는 건 간접적인 체험이잖아요. 하지만 바이크는 제 몸과 하나가 되니까 아주 직접적인 체험이죠. 바이크를 탈 땐 제 몸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해야 하거든요. 내 몸으로 직접 제어하는 즐거움, 그게 너무 좋아요.” 허씨는 고속 질주보다는 자동차가 많은 도로 위에서 차선을 변경하거나 코너링 할 때 각별한 재미를 느낀다고 말한다. 산에도 많이 다녔다. “오프로드는 아니지만 코너가 있는 산이 저는 좋더라고요. 정말 롤러코스터 타는 것처럼 짜릿하거든요.”

헬멧 쓰고 가방 멘 채 달리니까 도로 위 운전자들은 허씨가 여자라는 걸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김 여사’라는 비난을 들을 일도, 만만하게 보고 끼어드는 차량에 분통 터뜨릴 일도 없다. 긴 머리를 휘날리지 않는 한 바이크로 달리는 도로 위는 성 중립의 안전지대다. 쾌락에 도사린 위험을 무릅쓰고 제어할 수 있는 능력. 오래 억눌렸던 여성들의 이 본능이 빠른 속도로 개화하고 있는 중이다.

40대 주부 고보예씨가 마초적 남성미를 과시하는 모터사이클 할리데이비슨을 몰고 있다. 그는 5년차 여성 라이더다. 고보예씨 제공
바이크는 확장된 신체… “나는 자유다”

충북 청주에 사는 고보예(49)씨는 할리데이비슨 소프테일 슬림(2017)을 타는 5년차 여성 라이더다. 4년간 남성 입문자들이 선호하는 할리데이비슨 아이언 883을 타다가 지난해 낮은 시트고로 여성과 키 작은 남성들에게 인기 많은 소프테일 슬림으로 ‘기변 업’ 했다. 새마을금고를 다니다 주부사원 퇴직연령인 46세에 그만두고 도시가스 검침 및 점검 업무를 하는 고씨는 할리데이비슨을 타는 남편 때문에 처음 모터사이클에 관심을 갖게 됐다.

“탠덤(tandem)이라고 하죠, 뒷자리에 앉아 타는 사람을. 남편 등 뒤에서 6년간 탠덤을 했어요. 그러다 할리데이비슨 동호회인 랠리 파티에 갔는데, 여성 라이더분들이 더러 계시더라고요. 얼마나 멋지고 좋아 보이던지, 그날 바로 남편한테 ‘나도 오너로 타고 싶다’고 얘길 했죠.”

그럼 면허부터 따라고 흔쾌히 동의해준 남편 덕분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여성 라이더들을 보고 매료됐던 그날 바로 2종 소형면허를 접수한 후 한달음에 면허 취득에 교육까지 받고 왔다. 기어를 수동 변속해야 하는 점만 빼면 자전거 타는 것과 진배없어 면허 따기는 어렵지 않았다.

여성 라이더 고보예씨가 남편과 함께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제주도 일주여행을 했을 때. 고보예씨 제공

“이게 엄청 재미있어요. 저희는 부부가 함께 타니까 여행도 정말 많이 다니거든요. 저는 제 할리에, 남편은 뒷좌석이 있는 할리 울트라에 짐을 싣고 종종 전국일주를 해요. 작년엔 목포항에서 배에 싣고 제주도에 가 해안도로를 라이딩 했는데,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천백고지에서 중산간도로로 달리다 바닷가 쪽으로 나가 명소들을 바이크로 다 둘러본 거죠.”

할리처럼 2,500만원이나 하는 모터사이클을 누구나 취미로 즐길 순 없다. 헬멧, 가죽 재킷, 장갑, 워커, 가방에 시시바(가방을 싣기 위한 등받이)까지 제대로 장비를 갖추려면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초기비용에 비해 장기적 이익이 월등하다는 게 고씨의 생각이다. “처음엔 돈이 많이 들어가지만, 이걸 타면 술 담배를 안 하니까 길게 보면 비싸다고 할 수 없어요. 기름값만 있으면 어딜 가든 점심값 1만원으로 하루 여행이 끝나거든요.”

즐거움의 비용은 여기 계상돼 있지 않다.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풀어요. 몸과 마음이 젊어지고요. 친구들이 만나면 다들 그래요. ‘넌 왜 안 늙니?’ 주중 힘들게 일하면서 쌓인 스트레스가 주말에 라이딩 한번 하고 오면 싹 날아가거든요.” 남편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처리 비용 또한 반영돼야 한다. 고씨는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질 때 터프하게 한마디 한다. “헬멧 챙겨.” 할리에 올라탄 부부는 말없이 달리다 블루투스를 통해 섭섭했던 일, 짜증났던 일, 속상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달리면서 이야기 나누다 보면 그냥 자연스럽게 풀어지더라고요. 제가 저희 직원들한테도 남편이랑 같은 취미를 가지라고 많이 권해요. 그러면 싸울 일이 없다고요.”

라이딩을 위해 모인 할리데이비슨 여성 라이더 모임 'LOH'의 회원들. 여성에게 할리데이비슨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편견일 뿐이다. 할리데이비슨 코리아 제공

고씨가 평소 달리는 속도는 시속 80~100㎞ 정도다. 아무리 빨라도 시속 120㎞는 넘지 않는다. 세간의 많은 오해와 달리 바이크족이 대체로 폭주족인 것은 아니다.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바이크를 타는 이유는 빨리 달리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 잘 볼 수 없는 것들을 여유 있게 들여다보기 위해 바이크를 타는 거죠. 천천히 달리며 아름다운 풍경도 바라보고, 예쁜 꽃도 보고, 낙엽도 보고 그러려고요.”

할리데이비슨 여성 라이더 모임 'LOH' 회원들이 호젓한 도로 위에서 라이딩을 즐기고 있다. 할리데이비슨 코리아 제공

헬멧과 가죽재킷, 가죽바지, 워커에 가죽장갑까지 풀착장하고 도로 위로 나가면 성별을 구분 못하는 운전자들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알아채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때 운전자들이 보이는 반응은 다양하다. 차창을 열고 엄지손가락을 척 세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다. “그럼 저는 손을 흔들거나 꾸벅 인사를 하죠. 사진 찍힐 때는 연예인이라도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더라고요.”

할리데이비슨 여성 라이더들의 모임인 LOH 강남챕터 최영신(왼쪽) 회장이 회원들과 함께 라이딩을 즐기던 중 잠시 쉬고 있는 모습. 최영신씨 제공
여자의 모터사이클, 도전의 즐거움

크기와 무게 때문에 좀처럼 여성적인 면모를 떠올리기 어려운 할리데이비슨은 오래전부터 ‘레이디스 오브 할리(LOH)’라는 여성 라이더 모임을 운영해왔다. 할리 오너들의 모임인 호그(HOGㆍHarley Owners Group) 강남 챕터(지부)에서 LOH 회장을 맡고 있는 최영신(48)씨는 사회복지기관에서 국장으로 일하는 8년차 라이더다.

“제가 처음 바이크를 타기 시작했을 때는 여성 라이더가 거의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각 클럽에 여성들이 꽤 많아졌죠. LOH 모임이 활성화돼 저변확대가 된 것도 있지만, 요즘 여성들은 도전의식이 강하잖아요. 저도 등산, 골프, 수영 등 다양한 취미생활을 해봤지만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어요. 남들이 안 하는 취미생활을 해보자 하다가 바이크를 타게 됐는데, 처음으로 흡족하게 빠져든 취미를 갖게 된 거죠. 사실 여성으로서 도전하기 쉽지는 않았지만요.”

바이크를 타겠다고 하자 주변 반응은 굉장히 안 좋았다. 8년간 한번도 사고를 겪은 적이 없지만 안전성에 대한 염려가 많았고, 여러 가지 취미활동이 많은데 굳이 남자들의 세계에 뛰어들어서 꼭 같이 활동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특히 남편의 반대가 심했다. 지금도 말리지는 않지만, 환영하지는 않는다고.

“처음에는 혼다 셰도우 750cc로 시작했어요.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 지금 타는 할리 다이나 스트리트 밥 1584cc로 넘어왔는데, 무리해서 이걸 사느라 적금을 깼죠. 남편이 싫어하니까 제힘으로 해보겠다 해서 샀는데, 내가 번 돈으로 산 것이니까 더 떳떳하고 당당하게 타죠.”

2,000만원이 훌쩍 넘는 바이크 가격에 많은 사람이 차라리 그 돈으로 차를 사는 게 낫지 않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바이커들에게 ‘여유가 생기면 자동차와 바이크 중 뭘 바꿀래?’ 물으면 대부분 “바이크”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자동차와는 다른 와일드한 멋이 있으니까요. 자동차 창문 열고 달리는 것과는 바람을 맞는 느낌 자체가 달라요. 바람맛이 다르다고들 하죠. 할리를 타면 배기음과 진동의 울림이 심장박동 소리와도 비슷하거든요. 그게 인간 신체에 가장 자극을 주는 울림이라고 하더라고요. 바이크는 자유예요. 자유롭고 당당하죠. 어떤 취미활동도 주지 못했던 만족을 주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를 주니까요.”

달리는 여성은 용맹하다. ‘레이디스 오브 할리’ 동호회의 여성 회원들이 신나게 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최영신씨 제공

그는 온갖 억압에 시달리는 여성이야말로 대형 바이크가 좋은 취미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도전의식을 자극하고, 이뤄내는 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다른 취미생활을 할 때는 기다려지지가 않았어요. 그런데 바이크는 투어날짜가 잡히면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일주일을 버티는 힘이 되더라고요. 정말 확실하게 스트레스가 풀리니까요. 내가 바이크를 믿고, 바이크가 나와 한 몸이 되려면 두려움이 없어야 하거든요. 바이크는 시선으로 운전하는 거예요. 내 머리가 가는 방향을 바이크가 따라오죠. 내 시선은 몸을 통해 자동으로 바이크에 전달돼서 한 몸처럼, 생각대로 움직여져요. 내가 과연 대형 바이크를 감당할 수 있을까, 몸집이 크고 키가 큰 것도 아닌데 과연 될까, 그런 막연함 두려움이 내가 바이크를 믿고 당당하게 나서니까 떨쳐지더라고요.”

동호회 회원들의 평균 연령대는 남성 45~65세, 여성 40대 이상으로 조금 높은 편이다.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되고 아이들이 좀 자란 다음에야 ‘이제 내 취미 좀 찾아보자’며 탈 수 있는 기종이어서 그렇다. 여성들은 부부가 함께 타는 경우가 많고, 싱글들도 많다. “가정주부는 좀 타기가 어렵죠. 남편 허락을 받기 힘드니까. 남자분들도 아내 허락을 못 받고 몰래 타는 분들이 많아요. 바이크는 센터나 친구네 주차장에 맡겨놓고, 가죽 재킷은 자동차 트렁크 깊이 숨겨두고요.”

뒷자리에 탠덤을 태우고 할리데이비슨을 몰고 있는 최영신씨. 라이딩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다. 최영신씨 제공

내 힘으로 마련한 바이크를 남편 반대에도 불구하고 타고 있는 최씨는 훗날 고2 아들과 함께 바이크 여행을 떠나는 게 “생애 마지막 꿈”이다. “우리 아들은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멋있다고 해요. ‘엄마, 조심해’라는 말을 늘 잊지 않고 해주죠. 아들이 군대에 다녀온 후쯤 둘이서 바이크 몰고 여행 한번 다녀오는 게 제 로망이에요.”

최씨가 아파트 단지 내에 주차해 놓은 할리 앞에는 종종 이웃 주민들이 모인다. “우리 아파트에 여성 라이더가 있다”며 친구 데리고 구경 오는 사람, 와서 사진 찍어가는 사람 등 다양하다. “그 맛에 타는 거죠. 그래서 제가 웬만하면 헬멧을 안 벗으려고 해요. 멋있게 달려야 하는데, 헬멧을 벗으면 나이가 티 나니까….”(웃음)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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