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7일 전체회의를 열고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연합뉴스

지난 설 연휴 직후 수도권의 한 대형 쇼핑센터 옷 가게 업주가 매장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인들은 명절 연휴에도 쇼핑센터의 ‘연중무휴’ 정책으로 인해 가게 문을 닫지 못하고 일한 그가 마음 편히 하루도 쉴 수 없었던 고통을 표현하려고 창고를 죽음의 장소로 선택했을 것이라 전했다. 짧은 설 연휴를 투덜대며 명절 당일에도 각종 위락시설과 쇼핑몰들이 문을 열어주기를 바란 우리, 그리고 이 심리를 이윤창출의 동력으로 삼아 연중무휴라는 상술을 정당화한 기업들이 공범이었을 법한 안타까운 죽음이다. 연중무휴라는 불합리를 지탱하기 위해 누군가의 ‘논스톱 노동’을 강요할 만큼 우리는 소비와 돈벌이에 지독히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장지상주의 산업화 시대의 유물과도 같은 24시간, 365일 영업 명령은 2018년 현재도 곳곳에서 비인간적 노동 현실을 빚어내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10명 중 8명의 편의점주들이 명절 연휴 동안 자율영업을 원한다. 그럼에도 본사와의 24시간 365일 계약으로 인해 잠시라도 가게 문을 닫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연휴 중 하루라도 불을 끄고 싶은 편의점주의 마음을 돌아보지 못할 정도로 한국 사회는 멈춤 없이 소비하고 성장해야 할까. 대다수 국민의 편리한 생활을 위한다는 논리 아래 소비자와 자본의 요청에 따라 쇼핑센터 상점, 편의점주 등 영세 자영업자들이 휴식 없는 노동으로 내몰려야 한다면 한국 사회는 멀어도 한참 멀었다.

쉼 없는 극단의 노동 현실에 놓인 처지는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법의 사각지대인 농ㆍ어촌 노동현장에서는 오늘도 폭력적인 노예노동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본보 20일자 보도). 다름 아닌 고용허가제를 통해 합법적으로 국내 취업한 이주 노동자들이 바로 그 희생자들이다. 일반 제조업 현장과 달리 근로시간 제한이 없는 특례업종으로 규정된 농ㆍ어촌에서 이들은 근로계약과 비교해 터무니없이 많은 월 330시간 중노동과 임금체불에 시달리고 있으며, 고용관계가 성립하지 않은 농장으로 불법 파견되는 일마저 비일비재하다. 고용주들은 사실상 ‘마을의 노비’로 이들을 부리면서 인간으로 대해주길 거부한 것이다. 난방이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와 최소한의 위생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공간에서 생활하도록 하는데 그치지 않고, 심지어 여성 이주 노동자들을 성 노리개로 일삼은 사례도 적지 않다. 같은 국민에게도 연중무휴의 강압적 희생을 강요하는 마당에 이방인들을 향한 매질에 사정을 둘 필요가 있냐는 것일까. 일각에서는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와 내국인의 일자리를 가져간 이들의 사정까지 봐줘야 하냐는 푸념도 들려왔다.

인간이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노동 조건이 박탈 당했다는 점에서 처지가 다를 바 없는 이들 연중무휴, 무임금 노동으로 쉴 새 없는 영세업주와 외국인 노동자에게 흔히 말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ㆍ일 가정 양립)’은 현실과 동떨어진 사치에 불과하지 않을까. 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처리해 대다수 근로자의 워라밸이 크게 상승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이들에겐 언감생심일 뿐이다. 영세업주의 경우 점원의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동 강도를 끌어올려야 할 것이고, 근로시간 제한 규정에서 제외되는 특례업종이 5개로 줄어들지만 보건ㆍ운송 분야는 그대로 남아 누군가의 연중무휴 근절은 요원하다. 더구나 비인간적 노동현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시간 제한의 대상이 되지 않은 점도 아쉽다. 결국 노동환경의 양극단화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해는 공평히 뜨고 지듯이 ‘저녁이 있는 삶’도 그렇게 주어져야 한다. 최저임금만큼 최저 수준의 워라밸도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양홍주 기획취재부장ㆍ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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