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며느리 사표’ 영주 작가

응급실 실려가는 혹독한 시집살이
추석 직전 시댁에 선언하며 종결
집안일하는 남편 보며 변화 체감
“건강한 시어머니 롤모델 없어
‘시월드’ 적폐 답습 사례 많아”
본명이 ‘김영주’인 작가는 “딸도 며느리도 아닌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고 싶어” 성을 떼고 이름만 필명으로 삼았다. 작가는 “자식에게 너 뿐 아니라 네 배우자 될 사람도 ‘온전히 일인분의 삶’을 살 수 있을 때 결혼하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성경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며느리 사표’(사이행성 발행)의 저자 영주(본명 김영주ㆍ53)씨 얘기다. 저자가 결혼 23년차에 시부모님께 ‘며느리 사표’를 쓴 봉투를 내밀고 “혁명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된 과정을 담담하게 써내려 간 책은 출간 보름 만에 2쇄 6,000부를 찍었다.

19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영주 작가는 “‘며느리’로 집약되는 가부장제의 불합리함에 많은 분이 공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개인적 치부를 그대로 드러낸” 책은 영주 작가의 첫 단독 저서다. 지난 해 3월 출판사에 투고해 1년 간 다듬었다.

‘장녀로 태어나 ‘착해야 사랑 받는다’고 스스로 여기며 성장했다. 연애 시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만날 정도로 사랑했던 사람과 결혼해 시댁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대가족 장손의 아내로 새벽 5시부터 음식을 준비하고 손님을 맞으며 줄곧 ‘며느리’로 불렸다.’ 책날개에 쓰인 작가의 이력이다. “9남매 장남”인 시아버지, “3남매 장남”인 남편이 일군 시월드는 각오한 것보다 어마어마했다.

‘살던 동네는 조선시대 숙종 때부터 형성된 집성촌이었다. 집 밖을 나가면 거리에서도 촌수도 알 수 없는 친척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결혼 후 맞은 시할머니 첫 생신에 새벽부터 몰려든 손님과 이어진 상차림으로 저자가 응급실에 실려 가는 동안 남편은 철저히 가사에서 배제돼 있었다. 분가에 성공한 건 결혼한 지 8년 뒤인 1997년, 주말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시댁을 찾겠다는 약속을 하고서다. 저자가 시댁을 찾는 동안 결혼 일주일 만에 조기축구회에 가입했던 남편은 꼬박꼬박 혼자만의 여가를 즐겼다.

변화가 찾아온 건 “공부 하면서부터”다. 아들이 3살 되던 1995년 ‘부모 역할 훈련’ 공부를 시작으로 2004년 지역사회교육협의회에서 부모교육 강사를 시작했고, 2005년에는 대학원에 입학해 청소년복지학을 공부했다. 심리 공부를 하던 2007년 ‘꿈 작업 워크숍’ 수업을 들었고 꿈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목소리를 찾았다. “(꿈 공부 전에는) 내 안에 분노가 그렇게 쌓여있는지 몰랐어요. ‘맏며느리는 하늘이 낸다’ ‘여자는 죄가 많아서’ 같은 (시)어머님 말을 반복해 들으면서 세뇌가 된 거 같아요. 혼자 가부장제가 감당 안 되니 참고 견딘 거죠. 한데 (꿈 공부 후) 제 그림자를 딸에게 물려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각자 역할이 굳어진 “콘크리트 관계”를 바꾸기 위해 작가는 먼저 남편에게 이혼을 선언했다. 시댁에서 먼 곳으로 이사하고 3가지 제안(아내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역할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삶을 산다, 부부 상담을 받는다)을 실행하는 선에서 이혼은 2년간 유예됐다.

'며느리 사표'저자 영주. 고영권 기자

이사 이듬해 추석을 이틀 앞두고 며느리 사표를 썼다. “뺨 맞고 욕먹을 각오로 했어요. 아버님 어머님이 ‘네가 한 게 뭐가 있냐’고 노발대발 하시면 저는 이혼할 각오였으니까요.” 사표 쓰고 2년 간 시댁을 찾지 않았던 작가는 “올해 설에는 시댁을 찾았다. 명절에 사람 북적이는 재미가 있어야 하더라”고 말했다. 물론 사표 이전과 생활은 180도 달라졌다. “아무 때든 네가 편안히 오고 싶을 때 와라. 그게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아무런 부담 없이 편안한 마음일 들 때 온다면 좋고, 안 와도 괜찮다”고 답한 시부모는 제사와 명절 의식을 간소화했고, 시할아버지 시할머니 제사를 하나로 합쳤다. 명절 차례를 성묘로 대신했고, 원하는 사람만 성묘를 갔다. 남은 사람들은 명절 오전에 모여 점심을 준비했다.

영주씨는 “명절 변화보다 중요한 건 맏며느리의 의무가 없어졌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사위는 처가에 손님으로 가는데 며느리는 시댁에 일꾼으로 가잖아요. 이제 시댁에 안부 전화 하지 않고, 시부모님도 바라지 않으세요. 남편이 제 친정엄마한테 하듯이. 의무가 없어지니 명절 스트레스도 없어졌죠.”

작가는 전 파는 가게가 많아진 것처럼 눈에 보이는 명절 풍경은 20~30년 전에 비해 달라진 것 같지만 차례 지내고 며느리가 시댁 가는 의무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의심하지 않고 반복하기에, 많은 여성들이 시월드의 적폐에 통감하다 며느리를 맞는 순간 시어머니 스테레오 타입을 반복하게 된다고도 덧붙였다.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를 통해 보고 배우는데, 이 사회에 건강한 시어머니 롤모델이 없는 거죠. 그럼 자기 경험에서 배워요. 자기 시어머니랑 똑같이 하거나 정반대로 하거나. 막장 드라마 속 이상한 시어머니 보면서 ‘나는 안 그러니까 괜찮은 시어머니’라고 착각합니다.”

보다 혁명적인 변화는 졸혼과 자식의 독립 이후다. 2016년 11월 작가가 “작업실로 거처를 옮기면서” 저절로 졸혼이 시작됐다. 부부가 각자 공간에서 지내다 토요일에만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분노의 에너지를 뿜지 않고 설거지 하는 데만 5년이 걸린” 남편은 식사와 청소, 빨래를 온전히 혼자 감당하게 됐고 “집안의 먼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가을 작가가 무릎 수술을 받으면서 한시적 ‘졸혼’은 마감했지만, 남편은 집안일을 스스로 하는 등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작가는 ‘며느리 사표’를 쓴 이유가 딸 때문이라고 말했다. “겁많고 나약하고 찌질하지만, 딸에게 내 삶의 그늘을 넘겨주고 싶지 않아서 목숨 걸고 행동으로 옮긴 것”이라는 설명이다. 작가는 책을 다듬는 지난 1년간 아들과 딸을 6개월치 월세를 쥐어주고 독립시켰다. 며느리 사표를 쓴 궁극적 목적-가족 모두가 ‘온전히 일인분의 삶’을 사는 것-이 비로소 성취됐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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