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고발자의 편에 선 사람들

“아무도 우리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미미한 발걸음일망정 한 발씩 스스로 나아가야만 우리 모두가 원하는 진정한 내부의 정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됩니다”
서지현 검사와 최영미 시인. 연극연출가 이윤택씨의 성폭력을 폭로한 홍선주씨의 페이스북. 한국일보 자료사진, 페이스북 캡처

8년이 걸렸다. ‘부당함 앞에 맞설 다른 방법이란 없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댓글 한 줄 다는 것조차 수십 번 망설일 정도였던 그가 조직의 치부를 낱낱이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지난달 29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린 서지현 검사의 글은 그렇게 폭로의 서막을 열었다.

“이건 단순히 ‘성추행’이라는 범죄행위에 대한 고백이 아닙니다. 썩을 대로 썩은 검찰 조직 전체를 겨냥한 내부 고발이죠. 나서서 덮은 사람이나, 보고도 모른 척한 사람이나 ‘더러운 손을 뻗은 그 사람’과 무엇이 다른가요.” 지난 몇 년 간 내부제보자들의 법률 지원을 해온 이선경(42) 변호사는 말한다. “균열은 시작됐습니다.”

폭로는 끝없이 쏟아지고 있다. 또 다른 검사는 수사과정에서 벌어진 윗선의 외압 의혹에 대해 입을 열었고, 예술인들은 거장이라 떠받들어 온 이들의 상습적인 성범죄와 이를 묵인해 온 오랜 관행을 고발했다. 이들이 이렇게 자신의 삶을 담보로 용기를 내는 사이, 조용히 그들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1992년 군 부재자 부정투표를 고발한 이후 수 십 년간 내부 제보자들을 돕고 있는 이지문(50) 한국청렴운동본부 본부장과 호루라기 재단에서 법률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영기(61) 이사장, 이선경 변호사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폭로는 짧고 인생은 길다”라고. 내부고발자들의 외로운 여정은 예기치 않게 시작돼 끝날 줄을 몰랐다.

13일 오전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난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지문 본부장. 박미소 인턴기자
폭로가 ‘유일한 선택’이 되는 이상한 세상

”군에 있는 동안만 여당 후보 찍어주면 되는데, 뭘 그렇게 유난스럽게 구냐, 상급자도 동료들도 그렇게 말했어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겠구나.”

1992년 장병들에게 여당 후보를 찍도록 강요한 군의 부정선거행위를 폭로했던 중위의 나이는 고작 스물 넷이었다. 대학 시절, 시위대 맨 앞줄에 서는 운동권 학생도 아니었다. “여당에 투표하는 것이 군인의 길이다”라는 대대장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도, 간부가 보는 앞에서 투표용지를 마주해야 했을 때도 확고한 결심은 서지 않았다. 그저 ‘뭔가가 잘못됐다’는 불편함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지금은 내부제보활동을 돕는 시민단체 ‘한국청렴운동본부’의 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지문 씨의 얘기다. 결국 그의 증언으로 법이 바뀌고 모든 군인들이 영외로 나와 비밀투표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조직의 병폐가 폭로 없이 자정의 노력으로 해결되는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은 2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부패 방지법’이니 ‘공익신고자보호법’이니 관련법은 날로 진화했다. 그러나 법에 담길 취지를 살릴 ‘의지’는 진화하지 않았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내부 제보를 처리하는 주무 기관의 역할을 하게 됐지만 여전히 조사권은 없다. “권익위로 들어온 사건은 내부 조사권을 갖고 있는 해당 관계기관으로 이첩돼요. 쉽게 말해서 내가 고발한 조직에서 내가 고발한 내용을 검토하게 된다는 말이죠.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인데요.” 당연히 제대로 된 구제 수단이 될 리가 없다. 지지부진한 과정을 거치며 불신은 쌓여간다. 결국은 온 세상에 신상이 드러날 각오를 하고 ‘폭로’를 결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그 유일한 선택마저 ‘마음 놓고’ 할 수 없다

문제는 언론을 통한 폭로가 가져오는 ‘돌이킬 수 없는 희생’이다. 이 본부장은 1992년이 아니라 지금이었다면 감히 기자회견장에 설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내부고발은 누가 하든 상관없이 ‘그 내용’이 중요한 건데, 흔한 표현으로 달은 안 보고 ‘달 가리키는 손가락’이 어떻네 따지기 바쁘니까요. 서지현 검사만 해도 엄청난 2차 피해에 직면해 있지 않습니까” 제보자의 극히 사적인 부분들까지 모두 발가벗겨지고 정작 ‘폭로의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뒷전이 된다. 문단 내 성폭력 고발 사건을 맡아 온 이 변호사는 언론에 ‘미투’하지 않으면 진실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나 도리가 없는 현실을 꼬집는다. “어떻게 보면 참담한 일이에요. 이런 희생을 감수할 정도로 조직에 대한 불신과 억울함이 쌓였다는 방증이니까요.” 병폐를 괴물로 키운 건 침묵해온 자들의 책임인데, 정작 화를 입게 되는 것은 어렵사리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다.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유림 사무실에서 만난 이선경 변호사. 이 변호사는 현재 호루라기 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박지윤 기자

이 변호사는 고발자들의 용기를 응원해야 마땅하지만 ‘너도 폭로해라’라고 강요해선 안 된다고 선을 긋는다. 신분을 안전하게 보장받으면서 변호인을 통해 익명으로 제보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내부제보를 하는 사람은 반드시 소속기관의 감사실이나 감독기관, 권익위 등에 신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신분이 그대로 노출되고 보복을 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지만, 언론이나 변호인을 통한다면 ‘공익 제보’로 인정될 수 없는 것. 내부제보자들을 돕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미국처럼 ‘변호사 대리신고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언론에 한번 신분 노출이 되면 잊히고자 할 때 잊힐 수 없어요. 고발을 한 이후에도 편하게 직장동료들과 커피 마시고 수다 떨면서 예전처럼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끝나지 않는 ‘소송 지옥’… 배신자라는 ‘낙인 지옥’

“자그마치 12년. LG전자의 내부 비리를 폭로했던 정국정 씨는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을 치르는데 12년이 걸렸습니다. 생계활동까지 포기하고 소송에 매달리는 동안 삶은 피폐화됐죠”

호루라기 재단 운영자 이영기 이사장은 내부고발자들이 조직으로부터 당하는 온갖 종류의 보복을 함께 지켜봐 왔다. 어떻게든 빌미를 잡는다. 폭로의 증거자료로 문건을 공개했다면 ‘절도’ 혐의를, 회사에 찾아와 항의를 했다면 ‘주거침입’ 혐의를, 폭로 사실이 언론에 공표됐다면 ‘명예훼손’ 혐의를 내건다. “장진수 씨만 하더라도 MB 정권의 민간인 사찰 사실을 폭로했을 때, ‘공범’이란 이유로 공무원직에서 해고됐죠. 고발을 했는데 역으로 처벌을 받는 난센스가 벌어졌어요.” 이 이사장을 비롯해 호루라기 재단에 소속된 변호사들이 있는 힘껏 법률 지원을 하지만, 기업에서 억대의 수임료를 받는 대형 로펌의 ‘어벤져스’급 변호인단에 대적하기엔 역부족이다. 국선변호인도 지원되지 않기 때문에 재단이나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는 것이 전부인 상황. 이 이사장은 적어도 이들이 겪는 ‘소송 지옥’의 부담을 나라가 나눠 져야 한다고 말한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피해자들의 법률 상담을 여성가족부가 지원하듯이 내부제보자들의 경우도 권익위든 감사원이든 관계기관이 나서 줘야 해요.” 조직의 병폐가 드러나 바로잡히면 그 수혜는 국가 전체가 입게 되는 만큼, 이들이 ‘소송 지옥’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20일 오후 서울 서초동 호루라기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이영기 이사장. 이영기 변호사는 현재 호루라기 재단 이사장과 국가인권위원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박지윤 기자

외부의 고발자엔 용감하다며 박수를 치다가도, 내부의 고발자엔 ‘배신자’ 낙인을 찍는 이중적인 시선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이 변호사는 고은 시인의 상습적인 성추행 사실을 폭로한 최영미 시인에 대해 문단 내에서 오가는 수많은 말들을 예로 든다. “사생활과 업적은 분리해서 인정해야 한다는 섣부른 동정론은 둘째 치고, 유일한 노벨 문학상 후보를 잃게 됐다며 험담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서지현 검사에 대해서는 ‘왜 그때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8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냐’며 비난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본부장은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건 용기는 언제가 됐든 박수를 받을 일이지 손가락질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오래된 관행일수록 다수가 침묵할수록 거스르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폭로에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분들이 준비과정이 없이 폭로를 했다가 조직으로부터 보복을 당한 후에 도움을 청하세요. 그땐 이미 해 드릴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요. 내부고발을 준비하는 단계서부터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셔야 합니다.”

이영기 이사장과 이선경 변호사, 이지문 본부장이 이구동성으로 당부하는 것이 있다. ‘폭로에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미리 재단 명의로 된 ‘내용 증명서’를 보내거나, 증거가 될 만한 자료들을 법적 절차에 맞게 수집할 수 있다. 회사나 기관 입장에서도 외부의 공신력 있는 재단이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함부로 처리하기 어렵다. 단, 회사로부터 빌미를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이 모든 준비는 철저히 업무 시간 외에, 근무공간 밖에서 해야만 한다. 아주 기본적인 것임에도 이런 사소한 것들로 인해 나중에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으니 유의해야 한다.

검찰 내 성추행 의혹 사건과 관련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를 검찰 간부가 은폐했다는 의혹 등을 공론화한 임은정 검사가 6일 오전 서울 송파구 동부지검에 참고인 진술을 위해 출두하고 있다. 류효진기자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앞으로 건강한 고발 문화가 안착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식상한 질문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더 이상 누군가의 폭로에 기대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랍니다”. 이들은 말한다. “한 명이 나서면 그 한 명을 내쫓으면 되지만, 전부가 나설 때 전부를 내쫓을 수는 없어요. 다 같이 싸우면 아무도 다치지 않습니다.” 검찰의 ‘이단아’로 불렸던 또 한 명의 내부 고발자, 임은정 검사가 검찰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에도 이런 인용구가 있었다.

“시스템은 한 개인의 반대를 착각으로, 두 사람의 반대를 감응성 정신병으로 매도할 수 있지만, 세 사람이 같은 편에 서면 함부로 하기 어려운 힘이 된다.” -<루시퍼 이펙트>의 한 구절 –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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