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주부전’에 등장하는 토끼 이야기. 진심과 가면을 구별할 줄 알았던 바로 그 토끼죠. 인간만이 시도하는 인위적인 반복, 옷에 관한 이야기. 어쩌면 이야기가 끝난 뒤, 간을 꺼내 해변의 바위에 널어 말린 다음 지상으로 돌아왔을 지도 모르는, 인간보다 나은 그 토끼일지도 모르는 의상 이야기.

의상은 입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이 개입되는 곳이죠. 벗고 싶은 옷일 때는 허물이 되고, 입고 싶은 옷일 때는 피부가 되지요. 분명한 것은 허물이든, 피부든 그것이 ‘나’라는 사실이지요. 겉과 속, 현실과 꿈, 현상과 본질을 구분하려는 ‘나’를, 놀란 새처럼 느낄 수 있어야, ‘옷을 입는다’는 행위가 동물과 구분되겠다는 인간의 선언임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죠. 속까지는 위장하지 않으려고 “온몸이 다 삭아지고 녹아지고 지워질 때까지/그것이 되어가는” 되새김질을 멈추지 않는 것이죠. 별주부를 만나기 위해 “택시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바다에 뛰어드는 것이”죠.

제발 자라를 보자는 이야기. 너무 오래 살아온 자라가 나타나 당신은 임무가 있다는 말을 듣자는 이야기. 깊고 깊은 두근거림을 느낄 때 나는 여전히 의상을 걸치고 있구나, 제발 기억하자는 이야기. 한 벌의 옷을 사는 것은 인생을 사는 것인지도 몰라요. 다른 사람을 구입한 것은 아닌지, 새로 짠 관에 누운 것인지, 거두절미, 당장, 거울 앞에 서자는 것이죠.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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