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에서 만드는 나만의 수제향수

20~300개 원료를 조합해
세상서 하나뿐인 향 제조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함유 성분도 확인 가능
“자신의 성격ㆍ성향 들여다 봐야
어울리는 향 찾을 수 있어”
지난 13일 서울 잠원동 향수공방 보테가스튜디오에서 직원들이 선반에 놓인 기본 향들을 조합해 수제 향수 만들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 홍인기 기자

# 1. 7년간 유명 브랜드 향수를 써 온 직장인 조슬기(34ㆍ가명)씨는 지난 주말 서울 연남동의 한 향수공방 문을 두드렸다. 조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변하는데 향수의 향은 똑같잖아요. 달라진 내 모습과 꼭 맞는 향수를 갖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 2. 수제향수를 2년째 쓰고 있는 박수진(31ㆍ가명)씨는 “처음엔 조금 사치인가 싶었지만 요즘은 개성 시대란 생각에 만족하며 쓰고 있다”는 수제향수 예찬론자다. “가끔 향수를 잘못 사면 머리가 아프기도 했는데, 이젠 백화점을 돌아다니는 수고가 사라졌다”고 전했다.

# 3. 연인과 향수공방을 종종 찾는 조주희(35ㆍ가명)씨는 “내가 원하는 이미지, 성향에 맞는 향기로 상대에게 기억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조씨는 “가끔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친구들이 향수를 선물하는데 그 사람에게 내 이미지가 이런 향인가 싶어 속상했다”고 귀띔한다.

‘나만의 향’을 소비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백화점 선반의 브랜드 향수 가운데 ‘근사치’를 고르는 대신, 세상에 하나뿐인 맞춤형 수제향수를 만드는 것. 개성도 향기(香氣)로워야 하는 시대다.

제한된 선택이 싫은 사람들

“너무 매큼한 거 같아요.” “좀 더 시원했으면 좋겠어요.”

지난 13일 서울 잠원동에 위치한 향수공방 보테가스튜디오. 알쏭달쏭한 주문들이 오가는 이 곳에선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 세상에서 하나뿐인 향기가 만들어진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 켠에 30여개의 투명한 병들이 줄지어 있다. 누가 어떤 병에서 얼마나 향을 빼 쓰는지에 따라 향기들은 제각각 달라진다.

주로 찾는 사람들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 직장인. 공방은 평일 퇴근 시간 이후와 주말에 맞춰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열린다. 하루 두 타임씩 예약을 받는데 매월 30~40명이 꾸준히 찾을 만큼 인기다. 김아라 보테가스튜디오 대표는 “기존 향수들은 출시된 제품 중 선택해야 한다는 제한성 때문에 개인 욕구를 100% 충족시키지 못했다”며 “많은 분야에서 점차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경계선이 모호해 지고 있는 점도 직접 향수를 제조하는 공방의 인기를 더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제향수 전문 판매점 블라썸바이에이치의 김소희 대표는 “수제향수의 가장 큰 장점은 개인취향에 맞추기 쉽고 가격도 비교적 저렴(50㎖ 기준 4만~6만원)하다는 것”이라며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함유 성분에 한층 민감해진 사회 분위기도 수제향수에 대한 관심을 높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아라 대표에게 수제향수는 또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완성된 향수가 문학작품이라면 그 속에 들어가는 향은 수 많은 단어들’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향수를 만들어 가는 과정도 글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며 “내가 원하는 단어 즉, 향의 의미와 의도를 알아가면서 내가 전달하고픈 메시지가 담긴 시, 소설 같은 하모니를 완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13일 서울 잠원동 향수공방 보테가스튜디오의 김아라 대표가 수제향수 만들기 재료 중 하나를 들고 맞춤형 향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 대표는 “후각 청각 등 예민한 감각을 건드리는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나만의 맞춤형 향수 인기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향기로 기억되고 싶은 사람들

‘당신의 향기는 누군가에겐 기억이 됩니다.’

국내 1세대 조향사 정미순씨가 운영하는 공방 지엔퍼퓸스튜디오 유리창에 적힌 문구다. “향은 사람의 무의식에 저장된다”고 강조하는 정미순 지엔스 대표는 “과거 어느 시점에 맡은 특정한 향은 그 시기 일어났던 일과 함께 저장돼 10년, 20년이 지나도 그 향을 맡으면 그 날의 기억이 같이 떠오르게 된다”며 “그게 향이 갖고 있는 묘한 힘”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영식(35ㆍ가명)씨는 프레즐(하트모양으로 굽는 독일식 빵) 향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힘들었던 취업준비 시절 자취방 아래층 카페에선 프레즐 향이 늘 창을 타고 올라왔는데, 요즘도 비슷한 냄새를 맡으면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린다. 대신 출근 첫 날 크게 심호흡을 할 때 느꼈던 알로에 같은 향은 언제 맡아도 반갑다. 이씨는 “벌써 7년차 직장인인데도 알로에 향을 맡으면 그때의 설렘과 긴장감이 같이 떠오른다”며 “그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라고 향수공방을 찾는 이유를 말했다.

정미순 대표는 “첫사랑의 추억이 좋다며, 첫사랑과 닮은 사과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향수를 만들어 갔던 손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그래서인지 요즘 향수공방은 인기 데이트 코스이기도 하다. 정 대표도 “지난 14일 발렌타인데이엔 찾아온 모든 고객이 다 커플이었다”고 전했다. 연인을 위한 향기를 직접 만들어 서로에게 선물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내 연인에게서 맡고 싶은 향을 직접 만들고 그 향을 계속 맡게 되는 경험이 그들을 공방으로 끌어들이는 이유일 것이다.

나만의 향기를 돕는 사람들

향수공방마다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30개, 많게는 200개에 달하는 향이 준비돼 있다. 나만의 향기를 만들려면 이 중 몇 가지를 골라 조합해야 하는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작업을 도와주는 사람들을 대부분 공방에선 ‘퍼퓸 디자이너’라 부른다. 정미순 대표는 “고객이 원하는 향을 잘 만들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퍼퓸 디자이너들은 특정 향기를 갖고 싶어하는 사람이 추상적인 향의 의미를 언어로 구체화해 잘 표현하도록 이끌어 준다. 향이 가지는 느낌을 질감 분위기로 와 닿도록 설명해 주는 전문가로 이해하면 된다.

향을 말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초보에겐 어렵기 때문에 공방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도와준다. ‘스타일리시’ ‘리드미컬’ ‘네이쳐’ 등 명확하진 않지만 어떤 느낌인지 알 만한 단어들을 나열한 뒤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게 하기도 하고, 심리테스트를 하는 곳도 있다. 자기 성향을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무의식에 존재하는 내면을 들여다보도록 하는 과정이다.

김아라 대표는 “향이라는 건 굉장히 주관적이고, 또 각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며 “내 성격과 성향, 나만의 이야기에 잘 귀 기울여 보면 내게 꼭 맞는 향기를 찾는 로망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소희 대표는 “지금도 본인에게 투자하는 세대가 주요 고객이고 앞으로도 자신의 취향을 고집스레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향수공방의 인기는 꾸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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