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업 외국인 노동자 피눈물]

#1
노동법 사각지대 악용한 고용주
살인적 작업시간에 임금체불까지
“오늘은 다른 농장에서 일해라”
1주일에 2, 3번 불법파견 근로도
#2
언어소통 어려움 등 약점 악용해
근로계약서 외 이면합의서 작성
“계약과 달리 월 330시간 중노동
혹한 속 차디찬 숙소에 방치도”
#3
네팔 등 16개국 고용허가제 적용
일부는 본국 임금의 5배 더 받아
농어촌 외국인 노동자 늘었지만
부당 대우 알려지며 기피 현상도
외국인 노동자 초은 토미코씨가 매끼 식사를 해결 하는 비닐하우스의 천장이 찢어져 뻥 뚫려 있다. ‘지구인의 정류장’ 제공

충남 논산의 한 딸기 농장에서 2016년부터 일해온 캄보디아 출신 초은 토미코(31ㆍ여ㆍ가명)씨는 영문도 모른 채 마을 곳곳의 농장으로 끌려다녔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자신을 고용한 농장주 장모(48)씨가 지난해 6월부터 갑자기 1주일에 2, 3번은 “오늘은 다른 농장에서 일해라”라며 지인의 농장 4곳으로 그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 새벽 갑작스레 차에 실려 가 내리면 낯선 농장이 펼쳐졌고, 길게는 2주간 그곳에서 고된 작업이 이어진 나날이었다. 때론 휴일에도 비고용 농장에 불려가 작업하는 등 불법파견 근로는 계속됐다. 외국인 고용법상 자신의 사업장 외에서 일을 시킨 고용주는 고용 관계 종료와 함께 3년간 외국인 고용이 제한되고, 파견법 위반 소지 역시 다분하지만 이 사실을 알 턱이 없던 토미코씨는 어느덧 마을의 ‘노비’가 되어버렸다.

지난 1월 충남 부여의 한 상추 비닐하우스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지구인의 정류장’ 제공
농ㆍ어업 외국인 노동자의 피눈물

일은 터무니없이 많았다. 당초 맺은 표준 근로 계약서상 근로시간은 오전 8시~오후 6시로 명시된 휴게시간 2시간을 제외하면 월 226시간(28일 기준)이었다. 하지만 그가 매일 자필로 기록한 노동시간 노트에는 오전 6시~낮 12시 작업 후 2시간의 휴식, 그리고 오후 6시까지 작업 등 하루 10시간 노동이 일상이었다. 휴게시간이 1시간일 때도 있었다. 이렇게 계산된 토미코씨의 실제 근로 시간은 계약보다 월 50~70시간 많은 300여 시간이었다. 하지만 손에 쥐는 돈은 계약된 226시간에 최저임금을 곱한 월 140만원뿐이었다.

초과 노동은 그래도 견딜 만 했다. 생활비 1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130만원을 본국에 보내면 엄마와 남편 그리고 여섯 살 아들이 먹고살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이 모두 농사를 지어도 월 50만원을 채 벌지 못하는 것에 비하면 상당한 액수다. 천장이 찢어져 찬 바람이 몰아치는 비닐하우스 아래 때가 찌든 식기로 밥을 먹어도 토미코씨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러나 영하 10도 추위 속에 숙소로 사용하던 컨테이너의 고장 난 난방장치를 고쳐달라고 애원해도 농장주가 무시하자, 그는 지난 1월 결국 농장을 나와 고용노동청에 사업장 변경 신고를 했다. 그간 토미코씨가 받지 못한 체불 임금은 1,600만원에 달했다. 지난 6일 한국일보와 만난 토미코씨는 “가족을 생각해 버티고 싶었지만 얼어 죽을 것만 같아 나오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자국 노동시장에 비해 최대 5배 많은 고임금, 그리고 한류의 나라. 외국인 노동자의 가슴 속에 이렇게 자라났던 ‘코리안 드림’은 노동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농ㆍ어업 노동 현장에서 무참히 일그러지고 있다. 고용허가제 등 적법한 절차를 통해 한국 땅을 밟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젊은 일손이 부족한 농ㆍ어촌의 귀중한 인력이지만 만성화된 차별적 시선과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임금체납, 초과노동, 폭행을 일삼는 악덕 사용자들로 인해 현대판 ‘합법 노비’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한국은 노동만으로도 대박을 꿈꿀 수 있게 하는 나라다. 베트남, 필리핀, 네팔 등 16개국에서 고용허가제로 한국을 찾은 이들은 최대 4년 10개월 동안 한국에서 일할 수 있다. 대부분 시간당 최저임금을 적용받지만 일부 국가와 비교하면 최대 5배 높은 임금으로 이들의 4년 10개월은 본국의 25년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온 가족의 일생을 변화시킬 만큼의 귀한 시간이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네팔에서 하위직 공무원들 임금은 월 200달러(20만원) 수준에 불과해 교사나 공무원 등도 휴직하고 한국으로 올 정도다”라고 설명했다.

19일 법무부에 따르면 E9(비전문취업)ㆍE10(선원취업) 비자를 통해 국내에 등록된 외국인 노동자(사업장 이탈ㆍ변경자 포함)는 지난해 말 기준 5만6,847명(농업 3만582명ㆍ어업 2만6,265명)이다. 2013년 3만5,024명이던 것이 농ㆍ어촌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5년 새 62.3%(2만1,823명)나 증가했다. 20톤 이상 연근해 선박 노동자 10명 중 4명(36.1%)이 외국인일 정도로 급속한 고령화와 젊은 일꾼들의 부재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농ㆍ어촌에 있어 외국인 노동자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토미코씨가 매끼를 해결하는 취사시설인 비닐하우스 안의 모습. 흙바닥 위에 비료와 석유통이 그대로 방치된 가운데 오른편에 보이는 의자와 테이블이 토미코씨가 동료들과 식사를 하는 공간이다. ‘지구인의 정류장’ 제공
질병 이유로 해고하며 1,000여만원 체불

농ㆍ어촌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있어 고용주는 절대적 존재다. 언어 소통의 어려움과 지리적 여건 탓에 부당한 대우에도 쉽사리 저항하지 못하는 이들의 약점을 악용한 일부 고용주들은 임금체불과 초과노동은 물론이고 근로계약을 제멋대로 파기하기도 한다.

2016년 3월부터 경기 포천의 한 농장에서 근무하던 캄보디아인 속 니타(30ㆍ여ㆍ가명)씨는 매일 오전 4시50분 일어나 10명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66개 비닐하우스에서 상추와 청경채, 열무 수확 등을 위해 하루 13시간(휴게시간 1시간)을 일했다. 근로계약서에 적힌 226시간보다 무려 100시간 많은 월 330시간을 일하기도 했다. 그런 니타씨는 지난달 27일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결핵에 걸려 수술과 치료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한 뒤 8일째 된 날이었다. 농장주 김모(58)씨는 “결핵이 나에게 전염될 수도 있다. 나가라”라며 일방적으로 니타씨와 그의 룸메이트를 해고하면서 고용노동부에는 “자율합의로 근로계약을 종료했다”는 취지의 고용변동신고서를 접수했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그는 3개월 내 다른 사업장을 구하지 못하면 불법체류자가 된다. 지난달 31일 경기 안산의 한 이주민지원단체에서 만난 니타씨는 “캄보디아 의류공장에서 일했을 때는 월급이 200달러(20만원)에 불과했지만 주말, 휴일 수당까지 받았다”라며 “한국에 오면 좋은 사장을 만나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라고 토로했다. 해고 당시 그가 받지 못한 임금은 1,100만원에 달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이주 인권 가이드라인 재구축을 위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농ㆍ축산업 외국인 노동자의 월평균 노동시간은 287시간이며 60% 이상이 불법 파견 경험을 갖고 있었다.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등 난방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고 누전되는 열악한 임시주거시설을 기숙사로 제공하면서 매월 15만~40만원을 공제하는 일도 허다하며 표준 근로계약서 외 부당 공제 내용을 담은 이면 합의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많다.

토미코씨는 매일 자신이 일한 시간을 노트에 정리해 왔다. 오른쪽 페이지 노트 상단은 2017년 9월을 의미하고 아래에는 날짜에 맞춰 노동시간이 적혀 있다. 오전6시에 시작해 12시까지 일한 뒤 2시까지 쉰 후 다시 오후6시까지 일한다는 뜻으로 이렇게 되면 노동시간은 10시간이 된다. 표준근로계약서상 8시간보다 매일 2시간이나 많은 셈이다. 다른 페이지의 노동시간을 보면 휴게시간이 하루 1시간인 경우도 있다. ‘지구인의 정류장’ 제공
업무 중 재해에도 최저임금 적용 부당 대우

과도한 노동 속에 다친 경우에도 차별과 부당한 대우는 적지 않았다. 2013년 6월 E10(선원취업)비자로 입국한 베트남 출신 응우옌 꽝 하이(38ㆍ가명)씨는 부산의 고등어잡이 배 선원으로 일하던 2016년 3월 생선을 내리는 작업을 하다 크레인에 목을 부딪쳤다. 그러나 목뼈가 부러지고 신경이 손상되는 중상을 입어 7개월간 치료를 받았음에도 그는 수협 어선원 보험 재해보상금으로 1,200만원만 받을 수 있었다. 당시 해양수산부 고시대로라면 승선원의 재해보상에는 평균임금 월 351만3,000원(2016년 기준)을 기준으로 2,500만원이 지급돼야 했지만, 응우옌씨에게는 평균임금이 아닌 당시 최저임금 164만1,000원 기준으로 적용된 것이다. 이에 그는 외국인 노동자 지원단체 ‘이주민과 함께’의 도움으로 지난해 6월 심사 청구를 제기하고 나서야 상병급여 등 추가로 1,90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2013년 8월 경남 통영의 멸치잡이 배에서 일하다 사고로 다리를 절단하게 된 중국인 장웨이(30ㆍ가명)씨도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3년여의 행정소송 끝에서야 추가 재해 보상금 6,50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주민과 함께’측은 “지난해 11월 한 베트남 선원이 갑자기 배 위에서 사망했지만 회사는 시민단체와 연락하면 시신을 인도하지 않겠다고 유가족을 협박해 합의서에 서명하도록 했다”라며 “법에 취약한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최대한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고용주들의 속셈”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시간 제한 없는 농ㆍ어촌 취업 기피 현상

국내 상황이 알려지면서 한국행을 준비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농ㆍ어촌 기피 분위기가 번지고 있다. 네팔에서 400명 규모의 한국어 학원을 13년째 운영 중인 정도용(57)씨는 “농가는 제조업에 비해 임금과 휴일이 적어 대부분 제조업을 1순위로 희망하며 한국어 능력시험 합격선도 제조업 분야가 더 높다”라며 “한 학생은 농업 비자를 받을 수 있게 됐는데도 제조업으로 간다며 재수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근 한국의 농가를 경험하고 온 이들의 경험담이 퍼지면서 농촌 기피 현상이 더해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농업과 어업 분야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탈률은 각각 21.9%와 42.1%에 달한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시간이 제한되고 수당을 받는 제조업(16.6%)보다 확연하게 높은 수치다. 이탈은 사망, 부상 또는 정당한 절차 없이 5일 이상 결근하거나 소재가 불분명한 경우를 뜻하는데 근로 환경 악화로 사업주와의 관계가 틀어진 것이 이탈의 주된 사유로 꼽힌다.

이한숙 이주와인권연구소 소장은 “농ㆍ어촌 외국인 노동자들은 지리적으로 외진 곳에서 일해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기 어려울뿐더러 행정당국의 관리체계도 허술해 노동환경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라며 “최소한의 휴게시간 보장과 고용허가제 완화 등 제도적 장치 없이 이들의 희망을 악용한다면 장기적으로 농ㆍ어촌 일손 부족도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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