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 정치의 키워드는 적폐청산이었다. 우리사회에 누적된 잘못된 관행과 부패, 비리 등의 폐단을 척결하겠다는 움직임이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그런데 막상 대의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 과정의 적폐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선거구획정 기한이 무한정 연장되는 폐단이 그 하나다.

선거는 누구나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참여 방식이다. 국민들은 투표를 통해 공직자를 선출하기도 하지만 본인이 피선거인으로서 참여할 수도 있다. 이러한 권리는 매우 쉽게 들리지만 우리 현실에서는 제대로 보장받지 못해 왔다. 공직선거법은 국회의원선거구 획정안은 선거일 전 13개월까지 국회의장에게 제출하여야 하며, 자치구∙시∙군의원 선거구 획정안은 지방선거일 전 6개월까지 시∙도지사에게 제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난항을 겪은 데 이어, 또다시 4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대비한 선거구 획정도 기한을 넘긴 채 방치되고 있다.

선거는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대의(代議)의 과정으로 선거구 획정은 의사 반영의 형평성을 결정하는 기본 틀을 마련하는 출발점이 된다. 모든 경기는 경연장의 범위가 정해지고 게임의 규칙이 정해진다. 그리고 선수 선발과 경합이 이어진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그간 우리 선거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정치권의 이해 다툼 속에 온전히 이루어진 일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구 획정이 늦게 이루어지면서 후보자 선출 역시 졸속으로 이루어진다. 유권자들은 이렇게 허겁지겁 정해진 선거구에서 뒤늦게 등장한 후보자에 대해 미처 충분히 알지 못한 채 쫓기듯 투표해야 하는 정치권의 볼모가 되어 왔다.

아울러 간과되어 온 것은 결국 이러한 늑장이 현역 정치인에게는 유리한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뒤늦은 선거구 재 획정으로 직장도 포기하고 지역을 근거로 꾸준히 발로 뛰며 노력해 온 신인 예비 후보들은 졸지에 선거구를 잃어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민주주의의 장점은 지속적 사회 변화를 담아낼 수 있는 유연함과 적응력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선거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공직자를 선출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수단으로서 빛을 발한다. 선거구 획정의 불확실성은 유능한 신인들의 진입을 더욱 어렵게 함으로써 유권자의 변화 요구를 제한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왜 선거구 획정은 지연되는가. 선거구 획정은 정치인들에게는 선거 당락, 더 나아가 생계를 결정할 중요한 사안이기에 포기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현행 선거구 획정 방식은 근본적 제도적 변화를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선거구획정이 지연되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철저한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위원회 조직이 국회, 혹은 지자체로부터 분리된 중립적 기구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중립적 헌법 기관으로서 선거관련 업무를 담당해 온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구획정위원회를 두되 이를 상설화 하여 선거구 획정 때마다 정치권의 영향을 받아 구성되는 방식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 또 상설기구화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기 위해서는 중립적 인사로 위원을 엄정히 구성하고, 임기를 보장해 줌으로써 정치적 영향력을 줄이고 책임성은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다. 무엇보다 획정위원회가 내린 결정을 국회나 시∙도의회가 그대로 수용하도록 하는 공직선거법의 개정이 동반되어야 위원회 결정의 실효성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 사회적 혁신, 적폐청산 등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 기회에 선거과정의 적폐라 할 선거구 획정 지연의 관행이 청산될 수 있는 제도 개혁을 통해 선거의 기본 틀이 바로 잡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곽진영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한국정당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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