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건 철수뿐” 잿빛 전망

자산매각대금을 부채로 처리해
매년 1000억원대 현금 챙기는 식
연구개발비ㆍ이전가격 등 명목으로
16년간 투자 없이 이익만 가져가
“中 생산 키우고 한국 철수 수순”
“껍데기만 남아 정부에 손 벌린 것”
공적 자금 투입해도 회생 어려워

“제너럴모터스(GM)는 이미 오래전에 한국GM 인수금액 이상을 뽑아낸 만큼 당장 철수해도 아쉬울 게 별로 없다.”

자동차 업계에서 13일 GM의 군산공장 폐쇄 발표를 보고 내놓은 향후 시나리오다. GM은 2002년 헐값에 한국GM을 인수한 후 기업의 성장보다는 주로 당장 현금을 빼가는 용도로 운영해왔고, 마침내 빈 껍데기뿐인 회사로 전락해, GM이 다른 해외 진출 지역에서 그랬던 것처럼 냉정하게 철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13일 한국GM 감사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GM이 한국GM을 인수하며 투자한 금액은 5,000억원 가량이다. 2009년 유동성 위기 극복을 위해 단행한 유상증자(4,912억원)를 감안하더라도 투자액은 1조원에 불과한 셈이다. 그러나 2013년부터 매년 최소 7,000억원 이상을 본사로 챙겨갔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한국GM을 인수해 최소 2조원 이상 이득을 본 것이다.

GM은 2001년 9월 옛 대우자동차를 채권단 대표인 산업은행과 협상 끝에 4억달러(당시 환률로 약 5,200억원)에 인수하게 된다. 채권단이 상환 유예를 시켜준 12억달러(우선주로 전환) 등 자산매각대금은 이익이 나면 추후 갚으라는 의미에서 인수 후 15년간 저리의 이자(현금배당 형식)만 내도록 했다. 이후 한국GM은 이 채무를 놓고 산업은행과 여러 차례 협상을 벌인 끝에, 2012년과 2013년 각각 7,220억원, 7,600억원을 본사에서 들여와 모두 상환한다. 이후 한국GM은 GM본사에 연 5%대 고리 이자를 내게 됐고, 모두 한국GM 차입금으로 쌓이게 된다. 한국GM은 산업은행의 저리 부채를 미국 본사의 고리 부채로 전환하는 상식 밖의 거래를 통해 부실화를 자초한 것이다. 반면 GM이 한국GM을 인수하며 직접 조달한 비용은 5,000억원대 불과하고, 자회사를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해왔다.

한국GM을 인수 당시 GM은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시장에 대한 수출용 생산기지로 활용할 계획도 있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유동성 위기를 겪자 북미와 중국 시장 위주로 판매전략을 재수립했고, 중국 내 자회사인 상하이GM을 연간 400만대 생산 가능한 생산시설로 키웠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국은 글로벌 최대 시장인 데다, 자동차 생산원가도 현저하게 낮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을 고려할 때 한국GM을 성장시킬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GM 본사는 상하이GM을 생산기지로 키우면서, 한국GM은 현금조달 창구로 만들었다. 이익을 거둬 공식적으로 챙겨간 배당금을 제외하더라도, 매년 이자에, 연구개발(R&D) 비, 이전가격 등을 불투명한 수법으로 한국GM의 돈을 미국으로 옮겼다.

차입금이 대표적이다. 한국GM을 인수하며 부담한 자산매각대금을 부채로 처리하면서 생긴 차입금을 눈덩이처럼 키워 매년 1,000억원대 현금을 챙기게 됐다. 차입금 규모는 알려진 것만 2조4,000억원(2016년 기준)에 달한다. 2014년부터 한국GM이 적자에 빠질 때마다 GM 본사가 고리 자금을 빌려주며 한국GM의 경영을 악화시켰다. 연 4.7~5.3%에 이르는 고리의 이자를 통해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챙겨간 이자가 4,620억원에 이른다.

한국GM의 R&D 비용도 GM에겐 돈을 빼갈 구실이었다. 적자가 발생한 2014년에도 전년보다 5.4% 늘어난 5,952억원의 R&D 비용을 챙기는 등 2014년부터 2016년까지 1조8,580억원을 챙겼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출시된 신차 수만 보더라도, 본사에 보낸 R&D투자가 헛된 비용임을 알 수 있다”며 “교묘한 장부 작성을 바탕으로 한국GM에 뽑아낼 수 있는 자금을 모두 뽑아냈다고 판단이 들어, 우리 정부에 손을 빌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가격도 GM에게 수익을 줬을 가능성이 높다. GM이 부품 등 원재료를 고가에 넘기고 한국GM이 생산한 완성차는 싸게 받는 방식이다. 한국GM의 매출원가율이 93%로, 80%대인 다른 국내 완성차 업체보다 높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GM이 이번 군산공장 폐쇄에 따른 처리비용 8억5,000만달러 전액을 2018년 한국GM 회계에 반영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GM이 결정은 내리지만 그에 따른 손실 모두 한국GM이 지게 하는 식이다.

업계에선 GM이 지난 16년간 사실상 별다른 투자 없이 이익만 챙겼던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 이후에도 한국GM을 회생시키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적의 70% 이상을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GM 특성을 고려하면 유럽 등 주요 수출시장을 빼앗긴 이상 생산물량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점도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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