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능력개발원 보고서

고용과정에서 업무역량보다
학력이 더 중요하게 작용
OECD 회원국 중 한국이 유일
게티이미지뱅크

“추천채용으로 면접을 보러 가도 꼭 ‘고졸이시네요?’라고 물어볼 때가 있어요. 그럼 그 회사는 떨어진 거나 다름없죠.”

경력 10년의 온라인 쇼핑몰 마케터 박윤선(가명ㆍ31)씨는 구직과정에서 여전히 ‘졸업장’의 벽에 부딪힌다. 박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작은 회사의 계약직 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직이 잦았지만 업계와 상품을 가리지 않고 능력을 쌓는 기회로 여겼다. 장기적으론 학력보다 실력으로 승부가 가려질 거란 믿음도 있었다. 성과도 인정받아 또래들이 구직을 시작하는 20대 중반에 대리 직함을 달았고, 박씨의 능력을 높게 산 상사들이 추천서를 써 준 것도 여러 번이다. 하지만 여전히 박씨의 긴 이력서 중 ‘학력’ 한 칸이 취업을 좌우한다는 것이 박씨의 설명이다. “답답한 마음에 몇 년 전부터 방송통신대에 등록해서 공부를 하고 있어요. 이 졸업장이라도 있으면 좀 나아질까요?”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선 박씨처럼 개인의 업무역량이 높아져도 취업과 재취업 기회가 많지 않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고용 과정에서 여전히 학력 등 스펙의 영향이 업무역량보다 훨씬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양상을 보이는 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6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국제비교를 통해 살펴본 한국 노동시장의 개인 역량과 고용률의 관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선 학력이 높을수록 고용률과 시간당 임금이 상승했지만 역량이 높아져도 고용률이 증가하지는 않았다. OECD가 2013년 21개 회원국의 16~65세를 대상으로 실시한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를 분석한 결과다.

대졸 이상 근로자의 역량 수준(0~5)별 고용률을 보면 최저 역량(1 이하) 근로자는 83.8%, 최고 역량(4~5) 근로자는 80.0%로 큰 차이가 없었다. 역량 수준과 고용률이 무관하다는 얘기다.

고졸 이하는 역량 높아질수록
고용률 되레 낮아지는 기현상
“조직 중시 위계적 기업문화 탓”

특히 고졸 이하 근로자들은 역량이 높아질수록 오히려 고용률이 낮아지는 역(逆)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고졸자는 역량이 가장 낮은 근로자(0~1)의 고용률이 74.4%인 반면 역량이 가장 높은 근로자(4~5)는 47.0%에 그쳤고, 고졸 미만은 같은 그룹의 고용률이 각각 60.1%와 7.2%로 무려 10배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이는 OECD 평균과 정반대 현상이다. 다른 OECD 국가들의 경우 고학력 근로자의 역량수준이 높아질수록 고용률이 증가했고, 저학력 근로자의 경우는 반대로 역량수준과 고용률이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개인보다 조직을 중시하는 한국 기업 특유의 위계적 문화가 역량 경시현상을 불러일으켰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반가운 부연구위원은 “한국 기업은 업무 결정자의 지시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진행하는 것을 중시하기 때문에 채용과정에서 직무경험 등 개인 역량 수요가 적으며 역량이 임금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기업이 시간을 투자해 개인 역량을 측정하고 활용할 방법을 개발하는 대신, 학력을 능력의 대리지표로 삼아 평가하는 익숙한 선택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강순희 경기대 직업학과 교수는 “실업자들을 대상으로 같은 직업훈련을 해도 고학력자일수록 취업성과가 높게 나타나는 것은 오래된 경향”이라며 “학력에 상관없이 역량을 평가하는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정부 역시 구직자 매칭 과정에서 역량 위주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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