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건 외 혐의 많아 미지수”
안종범 전 경제수석. 한국일보 자료사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주도해 온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검찰이 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항소심 판결로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 특검이 ‘스모킹 건(결정적인 증거)’으로 제시해 온 ‘안종범 업무수첩’에 대해 법원이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같은 판단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등 다른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날 열린 이 부회장 항소심 선고에서 재판장인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안종범 수첩에 박 전 대통령 지시 내용과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대화가 기재돼 있다는 자체만으로 대화 내용을 인정한다면 전문증거(간접증거)가 우회적으로 진실 증명의 증거로 사용되게 된다”고 밝혔다. 안종범 수첩은 다른 사람에게 들은 말을 적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발언자가 그 내용을 확인해주지 않는 이상 증거로서는 가치가 없다고 본 것이다.

수첩에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 내용뿐 아니라 박 전 대통령 지시사항, 발언 등이 꼼꼼히 적혀 있어 ‘박근혜 정부 사초(史草)’로 불렸다. 안종범 전 수석도 법정에서 수첩 내용은 박 전 대통령 지시사항을 기재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수첩의 파괴력을 잘 알고 있던 특검 측은 그간 국정농단 재판에서 이 수첩들을 핵심증거로 제시해 왔다. 하지만 이 부회장을 비롯해 박 전 대통령과 최씨 등 국정농단 사건 피고인들은 재판에서 이 업무수첩을 증거로 채택하는데 반대해 왔다.

지난해 8월 이 부회장 1심 선고에서 재판부는 안종범 수첩을 박 전 대통령이 현안들을 지시하거나 발언했다는 간접사실에 대한 정황증거로 채택했다. 이를 근거로 이 부회장을 승계작업의 주체이며 승계작업 성공으로 가장 이익을 많이 볼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 간주했다. 최씨 조카 장시호씨와 광고감독 차은택씨 재판에서도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은 증거로 인정 받았다. 하지만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가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 자체를 배척하면서 결과적으로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왔다.

문제는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이 이 부회장 재판 외에 향후 예정된 다른 사건 재판에도 부정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13일 예정된 최씨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1심 재판과 다음달로 예정된 박 전 대통령 1심 재판에서도 검찰은 안종범 수첩을 핵심 증거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상급법원인 서울고법이 증거능력을 부정한 만큼 박 전 대통령과 최씨 1심 판결에도 영향을 주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과 최씨는 삼성 관련 사건 이외에도 범죄 혐의가 많기 때문에 수첩의 증거능력이 배척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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