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남측 대북인식 냉랭해져
파국 막으려는 文 정부 운신 폭 좁아
김정은, 평창 대화국면에 전부 걸어야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고위급대표단을 이끌고 9일 방남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모습.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바라보는 국내 시각이 예전처럼 우호적이지 않다는 데 놀란 건 우리 정부만이 아니다. 북한도 남측 국민들의 태도가 자신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우리 정부가 2030세대의 반응을 예상치 못했듯이 그들 역시 남한 사회의 달라진 여론 지형을 깨닫지 못한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힌 김정은 신년사에 신속히 화답할 때만 해도 북한은 남측의 열렬한 환대를 기대했을 것이다.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선수단과 응원단, 예술단 파견 문제에 일사천리로 합의한 것은 그런 맥락이다. “북한이 이번처럼 적극성을 보인 것 처음”이라며 우리 측 관계자조차 놀랐을 정도다.

북한이 간과한 건 지난 10년간의 대북인식 변화다. 보수정부 시기 남북관계 단절의 후유증이 없지는 않지만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위협이 직접적인 요인이다. 그 기간 발생한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목함 지뢰 사건은 남측으로서는 실재하는 공포였다. 여기에 북한의 남북 합동문화 행사 취소 등 두 차례의 약속 포기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국제규범에 어긋나는 일방적 태도가 남측 여론을 더욱 싸늘하게 만들었다.

북한의 궁극적 목표는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이다. 1993년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이후 북한이 20년 동안 줄기차게 요구해 온 것이 북미수교와 북미평화협정이다.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이후 도발에서 대화로 국면전환 카드를 던진 것도 북한이 체제와 안전보장을 보장받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미 트럼프 행정부가 ‘최대한의 압박’ 전략을 고수하는 터라 북한으로서는 대화의 계기를 찾기가 쉽지 않다. 북미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남북관계를 지렛대로 활용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셈이다.

문제는 북한의 변덕스러운 일방주의적 행태가 문재인 정부의 입지를 협소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 정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현 정부로서는 북쪽 입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줄 형편이 아니다. 남북화해 분위기 자체에 반감을 갖는 보수세력의 목소리를 마냥 무시하기도 어렵다. 빅터 차 낙마 사태에서 보듯 백악관 강경파들의 주장은 부쩍 높아지는 양상이다. 올림픽이 끝나면 재개될 한미연합훈련을 계기로 대북 군사옵션 발동 가능성 얘기도 나온다. 국내의 반발과 동맹국의 이기주의 속에서 어떻게든 파국을 막아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지금 정부의 모습이다.

해결의 물꼬는 결국 북한이 터야 한다. “올림픽이 끝나면 다시 대화의 계기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며 중재자로서의 어려움을 토로한 문 대통령의 말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가장 큰 변수는 올림픽 개막 전날로 예고된 건군절 열병식이다. 북한과 대화를 피하는 미국 측에 명분을 줘야 하는데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미사일이 등장하면 상황은 비관적이다. 북한은 명목상이지만 국가원수인 김영남을 보냄으로써 일단 대화 의지를 내비쳤다. 방한하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2인자 대 2인자’의 접촉 가능성까지 고려한 듯싶다. 설혹 북미 접촉이 불발되더라도 문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최소한 비핵화를 논의해 볼 수 있다는 언급 정도는 해야 올림픽 후에도 대화의 접점을 이어 갈 수 있다.

남북관계와 한미관계, 북미관계를 제로섬으로 보는 일부의 시각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남북관계가 잘 풀리면 북핵 문제가 해결 국면으로 들어갔던 선례도 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게 된 것은 그에 앞서 여러 차례 진행됐던 남북회담의 역할이 컸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평창국면을 활용해 비핵화 문제에 돌파구를 열 수 있다면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은 패를 쥔 것은 자신들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북한이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은 평창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수석 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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