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취업 ‘묻지마 알선’에 저임금ㆍ착취

잡무만 맡기고 사무실서 먹고자고
중도 퇴사한다니 “페널티 금액 내라”
대학ㆍ소개업체, 취업률에만 집착
정부는 ‘고용의 질’ 거름망 역할 못해
해외취업 작년 5000명… 장기취업은 하락
게티이미지뱅크

최미선(26ㆍ가명)씨는 지난해 2월 지방자치단체와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지원하는 취업연수를 통해 일본 한 정보기술(IT) 기업에 애플리케이션 개발 엔지니어로 취업했다. 정부가 알선해주는 기업이니 믿을만하겠거니 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영 딴판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야근에도 교통비가 따로 없어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먹고 자는 탓에 여기저기 침낭이 널려있었고, 회사는 직원들이 잔업을 했는데도 타임카드에 기록하지 못하게 했다. 점심시간은 고작 30분. 그마저도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먹어야 했다. 최씨는 4일 “몇 달을 다녀보니 기업의 재정 상태가 엉망이라 그야말로 언제 망해도 이상할 것 없는 수준이었다”며 “오래 다니면 족쇄가 될 것 같아 6개월 만에 그만뒀다”고 씁쓸해했다.

지난해 해외취업자 수가 처음으로 5,000명을 넘어서는 등 해외취업이 고질적인 청년 취업난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정작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청년 상당수가 현지에서 낮은 연봉과 부당한 대우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부의 해외취업 지원사업으로 일자리를 얻은 경우에도 최저임금도 안 되는 금액을 받고 노동착취를 당하거나, 실제 업무는 단순 반복적인 허드렛일에 그쳐 ‘글로벌 인재 양성’이라는 취지와는 거리가 먼 경우가 상당수다. 일본의 경우 몇 해 전부터 직원들의 혹사를 강요하는 ‘블랙기업’이 문제로 떠올라 정부가 회사 이름을 공개하고 회사 평판을 조회하는 인터넷 사이트도 개설될 정도지만, 정작 우리 정부는 알선하는 기업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문재인 정부도 범 정부 차원에서 능력 있는 청년들의 해외취업을 촉진하겠다며 적극 나서고 있지만, 실제로 현장에서는 취업률 실적을 높이기 위해 무턱대고 취업을 알선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이런 사례가 가장 빈번한 곳은 국내 취업난과 일본의 인력난이 맞물려 최근 한국인 고용이 급증하고 있는 일본 IT 업계다. 일본 취업 비자 중 기술, 인문지식ㆍ국제업무로 비자를 취득한 한국인은 2014년 1,231명에서 2016년 2,487명으로 2배 이상 늘어났을 정도로 인기가 높지만, 일자리의 질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 미취업 청년에게 어학이나 직무 등 맞춤형 연수과정을 제공해 해외진출을 돕는 정부의 케이무브(K-MOVE) 스쿨을 통해 6개월 간 관련 교육을 받고 일본 IT 기업에 들어갔던 강성태(31ㆍ가명)씨도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던 일자리에 중도 하차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정부 산하 산업인력공단은 민간 직업소개업체에 케이무브 스쿨 운영을 위탁해 어학 및 직무교육부터 취업 알선까지 책임지도록 한다. 강씨는 “교육 후 연수기관이 취업 가능한 기업을 20여개 추천해줬는데 대부분이 한국계 기업이었다”면서 “어렵사리 취업은 했는데 막상 첫 달을 일하고 나니 IT와 관계없는 전공인데다 일본어도 능숙하지 않으니 연봉을 당초 약속했던 금액의 80%밖에 못 준다고 하더라”고 했다. 회사가 제시한 연봉은 일본 현지 최저임금에도 한참 못 미치는 2,000만원 안팎. 결국 강씨는 방값이나 생활비로만 써도 빠듯한 월급을 견디다 못해 취업 4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 두기로 했다. 그러자 회사 측은 ‘페널티 금액’을 물어내라고 요구해왔다. 그의 한달 월급에 회사가 연수기관에 지불했던 이른바 알선비까지 더해 350만원 가량을 지급하라는 것이었다. 강씨는 “업계가 좁아 여기서 안 좋게 나가면 다른 회사에도 취직하지 못할 거라고 하는 얘기에 그냥 페널티 금액을 주고 도망치듯 한국으로 왔다”고 털어놨다.

중개 역할을 하는 정부는 거름망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인력공단은 ‘월드잡 플러스’라는 해외 구인ㆍ구직 정보 통합망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여기에 채용공고를 올릴 수 있는 기업의 규모라든지, 매출액, 재정 상태에 대한 기준은 따로 없다. 공단 관계자는 “중소기업이라는 이유로 구인을 못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기준은 설정해 놓지 않았다”며 “연봉이나 처우보다는 취업비자 발급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 예산으로 각종 연수를 받고 해외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국내보다 낮은 수준의 연봉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2016년 기준 해외취업의 평균연봉은 2,686만원으로, 같은 해 대졸 국내 신입사원 평균연봉 3,228만원에 크게 못 미쳤다. 케이무브 전체 취업률은 상승하고 있지만 6개월 이상 장기과정 취업률은 2013년 74.2%에서 2014년 69.2%, 2015년 66.2%으로 매년 낮아지는 것도 이런 현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연수 중간에 포기를 택하는 청년들에게 대학이나 업체 측에서 정부 지원금을 대신 변상하라고 종용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케이무브 스쿨 사업의 경우 정부가 단기과정(3~6개월과 장기과정(6개월 이상)을 운영하는 대학 및 직업소개업체에 연수비용을 각각 최대 580만원, 800만원을 지원하고 있어서다. 대학의 해외 인턴사업으로 동남아시아에 다녀온 윤소영(26)씨는 “1년 동안 커피 타고 쓰레기를 치우거나, 회의 때 수첩이나 펜을 정리하는 잡무만 했다”면서 “시간을 버린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중도에 돌아올 경우 항공료를 포함해 인턴으로 지원받은 금액을 모두 갚아야 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그만 둘 수도 없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청년 해외취업 지원사업이 취업률이라는 수치 목표에만 집착하면서 ‘밀어내기 식’으로 추진된 탓이라고 꼬집었다. 해외취업을 알선하는 민간 직업소개업체는 정부의 취업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 대학들은 학생들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서 앞뒤 재지 않고 뛰어든 뒤 일단 취업을 하고 나면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설명이다. 박창규 글로벌잡센터 대표는 “더 많은 청년이 해외에 나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청년들이 원하는 곳에서 좋은 일자리를 찾는 것”이라며 “대다수 청년이 고용의 질이 높은 선진국 취업을 꿈꾸지만 정작 정부 정책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경득 선문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해외청년들에 대한 외국의 취업시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호적이지 않다”면서 “취업자 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자리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이 첫째가 돼야 한다”고 전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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