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비파커의 닐 블루멘탈 CEO

“수백 년간 독과점을 이뤘던 안경 판매시장을 한순간에 뒤바꿔놓았다.”

미국 유력 월간지 ‘패스트컴퍼니’는 지난 2015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순위 발표에서 미국 온라인 안경 유통업체 ‘와비파커’(Warbyparker)를 1위로 선정했다. 당시 매출 1억 달러 정도의 와비파커를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IT) 기업인 애플(2위)과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중국 알리바바(3위)보다 우위로 꼽은 것이다.

미국 안경 시장은 이탈리아 기업 ‘룩소티카’가 독점해 안경 값이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레이밴, 오클리 등을 비롯해 샤넬과 프라다 같은 명품 안경테와 선글라스가 모두 룩소티카에서 만들어질 정도다. 룩소티카는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판매가를 높여 소비자들의 부담이 커졌다. 레이밴의 경우 20달러에 불과했던 안경이 1999년 룩소티카가 인수한 후엔 150달러로 7배 이상 폭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와비파커는 온라인 유통 혁명을 통해 단돈 95달러로 안경을 구매할 수 있는 길을 열면서 미국 안경 시장의 판도를 뒤집었다. 와비파카는 창립 첫해인 2010년 약 2만개의 안경을 팔기 시작해 2013년엔 25만개, 2015년엔 100만개 이상을 팔면 연 매출 1억달러를 돌파했다. 지난 2015년 기업가치는 12억달러를 넘어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스타트업)의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엔 4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와비파커의 닐 블루멘탈 최고경영자(CEO)는 “습관적으로 생각해선 혁신이 이뤄질 수 없다”며 “선입견을 버리고 호기심을 끄집어내 초심자의 마음으로 생각해야 혁신을 끌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와비파커 로고
“안경이 왜 아이폰보다 비싼 거야”

와비파커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동창생 네 명이 2010년 창업한 온라인 안경 유통업체다. 2009년 펜실베이니아대 컴퓨터실에 닐 블루멘탈과 데이브 길보아, 앤드류 헌트, 제프리 레이더 등 네 명의 와튼스쿨 동창생이 모였다. 대화의 주제는 안경에 대한 불만. 길보아가 태국 배낭여행 중 700달러짜리 안경을 분실했는데 당시 학생 형편으로는 다시 살 수 없어 한 학기 내내 안경 없이 지낸 것이다. 얼핏 보면 가난한 학생들의 사소한 잡담 주제에 그칠 얘기였다.

하지만 젊은 대학생들은 대화의 내용을 발전시켰다. 도화선을 당긴 건 당시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안경 보급 자선 운동을 하는 비영리단체 ‘비전 스프링’을 운영하던 블루멘탈이었다. 그는 안경의 제조 원가가 높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플라스틱 재질인 데다 제작 공정이 복잡하지도 않은 안경이 아이폰보다 비쌀 이유가 없었다. 더욱이 안경은 아프리카 등 낙후된 국가에서 문맹 타파와 취업률 제고를 위해 필수적으로 보급돼야 할 기본 물품이라는 생각에 이들은 뜻을 같이했다.

비싼 안경이 반드시 해결돼야 할 도전 과제로 발전한 순간이었다. “온라인으로 유통단계를 줄여 저렴한 안경을 파는 회사를 만들어보자.” 블루멘탈이 고민 끝에 메일로 보낸 제안에 와튼스쿨 동창생들이 의기투합했다. 블루멘탈은 미국 월간 잡지 ‘In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모두 깨어 있었다”며 “온라인으로 안경을 판다는 아이디어가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혁신은 아이디어를 삶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만큼 투자가 뒤따라 준 건 아니었다. 이들은 투자자를 물색하던 중 가장 먼저 자신들의 담당 교수인 애덤 그랜트 와튼스쿨 교수를 찾아갔다. 아이디어의 가치를 알아봐 주고 다방면으로 지원해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반응이 차가웠다. “누가 안경을 매장에서 직접 써보지도 않고 사겠느냐.” 그랜트 교수가 보기에 젊은 사업자들의 발상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았다. 이들은 와튼스쿨의 ‘벤처창업프로그램’(VIP)에 참여해 2,500달러를 겨우 받을 수 있었다. 그랜트 교수는 와비파커가 미국 안경업계를 뒤흔드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일생일대 최악의 선택이었다”고 실수를 인정했다.

2,500달러는 창업하기에 충분한 자금이 아니었다. 와비파커 공동창업자인 길보아는 “투자할 곳을 선택하고 집중하는 방법이 필요했다”며 “기술 인력과 물품 목록, 패션잡지 홍보 인력 모집에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사업 기반인 만큼 홈페이지 제작과 함께 물품 목록을 정리할 전문 인력이 필요했고, 특히 오프라인 매장이 없는 만큼 잡지 등 매체를 통한 사업 홍보는 필수적이라는 판단이었다. 와비파커의 전략은 적중했다. 오프라인 매장 가격의 절반도 안 되는 95달러로 맞춤 안경을 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언론에 관심을 일으켰고, 미국 패션잡지 ‘GQ’가 와비파커를 ‘안경 업계의 넷플릭스’란 제목으로 소개하면서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넷플릭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는 미국의 회원제 주문형 비디오 웹사이트다. 와비파커도 온라인 안경점을 통해 안경 판매에 혁신을 일으켰다는 내용이 큰 홍보 효과를 발휘했다. 길보아는 “혁신이란 달리 생각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삶으로 가져오는 것”이라며 “우리는 온라인으로 안경을 팔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500달러에 팔던 안경을 95달러에 판매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와비파커의 성공비결

와비파커는 온라인 직접 판매로 유통단계를 줄여 안경 가격을 기존 5분의 1 수준인 95달러로 낮췄다. 디자인부터 제조, 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단순화해 가격의 거품을 뺐다. 와비파커는 안경테를 직접 디자인해 라이선스 비용을 줄인 것은 물론 제조업체에서 안경을 직접 공급받고, 중간 상인을 거치지 않고 온라인 매장으로 판매하는 방식을 택했다.

또 직접 써볼 수 없다는 온라인 매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홈 트라이온’ 서비스를 도입했다. 방식은 간단하다. 소비자가 와비파커 홈페이지에서 마음에 드는 안경을 최대 5개까지 고르면 집으로 택배가 배송된다. 소비자는 3~5일 동안 안경을 써보고 홈페이지에서 마음에 드는 안경을 선택한다. 소비자는 5개의 안경 모두를 다시 와비파커로 반송하고, 2주 뒤 맞춤 제작된 안경을 택배로 받는다. 판매 과정에서 드는 택배비는 모두 와비파커가 부담한다. 와비파커 측은 “소비자는 오랜 시간 자신에게 맞는 안경이 무엇이지 경험해볼 기회를 갖게 된다”며 “오프라인 매장이 지금 당장 물건을 사도록 유도하지만 와비파커는 심사숙고한 뒤 결정할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품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뿔테의 경우 대부분의 명품 안경 브랜드가 사용하는 셀룰로스 아세테이트 같은 고급소재를 사용하며, 150년 전통을 가진 이탈리아 가죽 회사와 협업을 통해 세련된 디자인과 고품질의 안경을 생산하고 있다.

와비파커는 감성 마케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가격을 95달러로 정한 사실이 대표적이다. 와비파커의 자체조사 결과 소비자들은 100달러가 넘으면 비싸다고 생각했다. 반면 99달러로 가격을 정하면 ‘싸구려’나 ‘할인제품’이라는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줄 수 있었다. 결국 ‘95’라는 숫자가 매력적일 것이라고 판단, 4달러의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가격을 맞췄다.

와비파커는 안경을 하나 팔 때마다 동일한 금액을 저개발 국가에 기부하는 캠페인도 하고 있다. 전 세계에 안경을 구매하지 못하는 저소득층이 7억명에 달한다. 이들에게 안경을 기증할 경우 글로벌 생산성과 교육수준이 크게 향상 된다는 분석이 많다. 블루멘탈은 미 경제지인 포브스와 인터뷰에서 “소비자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책임감 있는 기업을 만들고 싶었다”며 “와비파커가 투명한 경영을 유독 강조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에 있는 와비파커 오프라인 매장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와비파커는 최근 오프라인 매장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유통 마진을 없애기 위해 온라인 매장을 선택했던 와비파커의 행보에 비춰 의아할 수 있다. 와비파커는 지난 2013년 뉴욕에 처음 매장을 연 이후 로스앤젤레스, 보스턴 등 미국 주요 도시에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2016년 기준 매장은 50개까지 늘어났다 미국 리서치그룹 가트너는 “온라인 매출을 올리기 위한 일종의 징검다리 역할”이라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해 소비자의 만족도를 올리고 이들을 다시 온라인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와비파커의 잠재고객들을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제품에 더 익숙하게 만드는 등 온라인으론 한계가 있는 체험과 쌍방향 교감을 나눌 수 있도록 오프라인 매장 확장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블루멘탈은 최근 “향후 오프라인 매장을 800~1,000개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와비파커는 단순 유통사업을 넘어 기술 기반 산업까지 진출하려 한다. 대표적인 게 스마트폰 시력검사 시스템이다. 미국에선 안경을 구매하려면 안과의사의 처방이 필요한데 이 과정을 집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와비파커는 구글의 웨어러블 컴퓨터인 ‘구글 글라스’의 차기 디자인을 위한 파트너로 선정되기도 했다. 블루멘탈은 “와비파커는 가격경쟁력만을 따지며 판매를 하는 온라인 유통기업에서 탈피할 것”이라며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에 기반을 둔 정보통신(IT) 기업이 우리의 목표”라고 선언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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