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권력게임 변질된 개헌 논의
특권 젖은 제왕적 의회가 더 문제
선거구제 개편ㆍ국민소환제 도입 절실
여의도 정치인들 다수는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를 선호한다. 이를 위해선 안정된 정당정치와 생산적인 국회가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 국회의 수준은 부끄럽기 그지 없다. 막말 등 볼썽 사나운 구태와 반대를 위한 반대가 넘쳐난다. 생산성은 낮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8명의 보좌진과 국비 해외시찰, 선진국을 능가하는 세비 등 온갖 특권을 누린다. 사진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찾은 어린이들이 20대 국회의원 기념사진 앞을 지나는 모습. 오대근기자

개헌 공방이 뜨겁다. 핵심은 권력구조(정부형태)다. 여야 간 온도차는 있으나 이원집정부제(혼합정부제)나 의원내각제 선호가 강하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목격했으니 대통령의 권한을 줄여야 정상적 국정 운영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그러면서 분권형 모델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를 거론한다. 프랑스 헌법은 대통령이 국방과 외교를, 수상은 내치를 맡도록 규정했다. 형식상 분리일 뿐 실질적 권력 분립으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강력한 대통령제에 가깝다. 우리나라 총리는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프랑스 총리는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임명하고 해임한다. 사실상 대통령의 꼭두각시다.

‘마크롱, 올랑드, 사르코지, 시라크, 미테랑, 지스카르데스탱, 퐁피두, 드골.’ 프랑스에서 수상은 존재감이 없다. 대통령 이름은 기억해도 수상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그럼에도 프랑스가 분권형 모델의 상징인양 비치는 것은 좌우 동거정부 경험 탓이 크다. 오스트리아도 형식만 이원집정부제 국가다.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지만 영국 여왕처럼 상징적인 국가원수에 머문다. 사실상 총리가 모든 권한을 갖는 의원내각제 국가다.

우리나라는 프랑스와 닮은 점이 많다. 프랑스는 좌파, 우파 용어를 탄생시킨 나라다. 이념 갈등이 심각하고 국민성이 다혈질이다. 이런 나라에서 책임 정치를 하려면 강력한 대통령이 요구되듯, 초강대국으로 둘러싸인 분단 국가에서 혼합정부제나 내각제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론에 가깝다. 외치와 내치 구분이 쉽지 않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대통령 권력이 비대한 게 문제라면, 부통령제나 총리 권한을 강화하는 책임 총리제를 통해 분산하면 된다. 의회가 총리 인준의 키를 쥐는 등 우리 대통령제에는 이미 의원내각제 요소가 많이 가미돼 있다. 국민 다수가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이유기도 하다.

의회권력은 지금도 막강하다. 어떤 면에서는 대통령 권력을 뛰어넘는다. 예컨대 대통령과 총리가 헌법상 의무를 위반하면 탄핵을 당한다. 지방의원과 단체장은 주민소환의 대상이 된다. 국회의원은 임기 4년간 아무런 견제장치가 없다. 국회가 발목을 잡으면 대통령도 힘을 못쓴다. 20대 국회에 발의된 7,000건 넘는 법안이 야당 횡포에 가로막힌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생산성은 세계 꼴찌이면서 세비, 보좌진, 해외시찰 등 온갖 특권을 누린다.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는 의회권력을 키우는 제도다. 당연히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는 의회 구성이 전제돼야 한다. 현행 승자독식형 소선구제는 영ㆍ호남에서 ‘공천=당선’일 정도로 지역패권당에 유리하다. 국민 정치의사를 왜곡하는 선거제도를 그대로 둔 채 대통령 권력만 축소하면 지역주의에 기생하는 중진 정치인의 힘만 키워 주는 꼴이다. 제왕적 의회권력을 넘어 ‘의회독재’를 하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지역패권당에 유리한 소선거구제 폐지, 민심과 동떨어진 비례대표제 개선, 국회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국민공천제, 국민이 개헌과 입법 관련 의견을 낼 수 있는 국민발안제, 국회의원 특권 폐지와 국민소환제 등이 이뤄져야 한다. 이런 노력이라도 한 뒤에 권력을 더 나눠 달라고 하면 모르겠다. 국민 신뢰가 바닥 수준인 제왕적 의회권력이 분권을 요구하는 건 몰염치의 극치다. 그러고 보니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를 강하게 주장했던 김무성 김종인 홍문종 등은 하나같이 대통령 꿈도 꾸기 힘든 정치인이다.

지금 헌법이 1987년 민주항쟁의 결과물이라지만 국민 의견을 정확히 수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그 이전 여덟 차례 개헌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의회 기득권을 지키려는 정당 간 권력 게임이었을 뿐이다. 1987년 체제를 극복하는 개헌은 촛불시민의 명령이다. 헌법 제1조는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고 모든 권력의 원천임을 부르짖는다. 헌법을 만드는 주체는 국민이다. 국민이 헌법에 앞서고, 헌법이 국가에 앞선다. 이번에야말로 국민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는 진정한 의미의 개헌이 돼야 한다.

고재학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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