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한 남성이 종로 여관에 들어갔다. 그는 여관주인에게 성매매 여성을 불러달라고 했지만, 주인은 거절했다. 여관을 나온 남성은 경찰에 여관주인을 신고했다. 여관을 나온 남성은 근처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샀다. 여관 입구에 휘발유를 뿌린 남성은 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여관은 불에 휩싸였고, 투숙하던 10명 중 6명이 사망했다. 그 중에는 여행 중이던 엄마와 두 딸이 있었다. 경찰에 체포된 남성은 자신이 술에 취한 상태였고, 성매매를 요구했으나 주인이 거절해서 홧김에 불을 질렀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지난 달 종로의 한 여관에서 일어난 방화사건이다. 나는 지금부터 등장인물의 젠더를 바꿔 보려고 한다.

새벽 2시, 한 여성이 종로 여관에 들어갔고, 그녀는 여관주인에게 성매매 남성을 불러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여관을 나온 여성은 경찰에 여관주인을 신고했다. 그리고 근처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사와 여관 입구에 뿌렸다. 그녀는 불을 붙였고, 순식간에 여관은 불길에 휩싸였다. 투숙객 중 6명이 사망했고, 그 중에는 여행 중이던 아빠와 두 아들이 있었다. 경찰에 체포된 여성은 자신이 술에 취한 상태였고, 성매매를 요구했으나 주인이 거절해서 홧김에 불을 질렀다고 했다.

두 이야기는 같은 사건을 기술한 것이다. 단지 여성과 남성을 바꾼 것만으로 어색함을 느낀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차이가 발생했는지 고민해야 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익숙한 서사이다. 남성이 술 마시고, 여관에서 성매매 여성을 부르는 일은 흔하다. 노래방, 안마시술소, 골프 관광, 채팅 등에서 남성은 자신이 원할 때마다 (성매매) 여성을 언제든지 부르고 구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이야기는 낯선 서사이다. 주변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이기도 하거니와 새벽에 술에 취한 여성이 여관에서 성매매 남성을 불러달라는 이야기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이 사건을 개인에 의한 단순 방화사건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남성의 행위와 진술이 한국사회에 만연한 성매매 문화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위험을 구성하는 방식이 얼마나 젠더 편향적인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인천의 한 편의점에서 새벽에 아르바이트하던 여성이 화장실에서 둔기로 맞았다. 남성은 살인미수 혐의로 붙잡혔고, 경찰에게 담배를 사려다 돈이 없어서 의자에 앉아 있는데 아르바이트생이 자신을 비웃는 듯 쳐다봐서 “혼내주려고” 화장실에 따라 들어갔다고 했다.

남성은 화나면 “홧김에” 여성에게 방화든 폭력이든 가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에서, 남성은 자신을 비웃는 여성을 “혼낼” 수 있고 응징해도 된다고 믿는 사회에서, 위험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위험은 젠더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다.

누군가 자신의 감정을 마음대로 표출해도 되고, 타인을 징벌 혹은 훈육할 수 있는 권한을 지녔다고 여긴다면, 그는 사회에서 내가 타인(여성)의 우위에 있고 그 타인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믿음에서 권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여성은 아니다. 불시에 위험에 노출될 수 있고, 불시에 누군가 자신을 해할 수 있다는 긴장 속에 살아간다.

하필이면, 여관에 세 모녀가 있었고 또 하필이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여성이어서 봉변을 당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심지어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사건에서도 사망자 29명 중 23명이 여성이었다. 이것도 우연이라고 볼 수 있을까?

위험의 우연성은 상당 부분 우리가 일상에서 익숙하고 당연하다고 믿는 관습과 문화에서 나온다. 비대칭적인 젠더권력이 우연을 가장하고 출현하는 것이다. 연이은 화재 사건으로 안전기준을 강화하고 시급하게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위험이 누구에게 더 먼저 가닿고, 이들이 왜 죽었는지 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 한 여성의 죽음은 계속될 것이다.

천주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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