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주로 글을 쓴다. 글을 쓰는 과정은 정제되지 않은 나를 다듬어,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조금씩 알려주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는 두 가지 도우미가 있다. 첫 도우미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반가좌를 틀고 방석에 앉아 이것저것 잡념을 걷어내는 30분 정도의 묵상이다. 그날 내가 해야 일들과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선명하게 알려준다. 두 번째 도우미는 조깅이다. 나는 그 묵상을 통해 결심한 내용을 온몸으로 느껴 구체화하기 위해 동네 한 바퀴를 뛴다. 이 두 도우미는 나를 조금씩 변화시켜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들어 준다. 묵상과 조깅을 통해, 그날 내가 써야 할 주제와 그 순서들을 어렴풋이 떠올린다. 한 순간에 어떤 아이디어가 등장한다. 머리에 스쳐가는 섬광(閃光)과 같은 생각을 포착하지 못하면, 글을 쓰지도 못하고, 쓴다 해도 진부해 지게 마련이다. 나는 이 섬광의 줄기를 잡기 위해 애쓴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그 생각은 금방 사라진다. 이 섬광이 바로 영감(靈感)이다.

인류 문명은 이 영감을 쟁취하는 사람들이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의 두 명의 시인은 이 섬광과 같은 영감을 휘어잡아 서양문명을 구축하였다. 한 사람은 페니키아 상인들로부터 그들의 알파벳을 빌려 그리스 알파벳을 창제하여, 이전부터 입으로만 내려오던 노래들을 곡조가 있는 가사로 남겼다. 그가 바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남긴 호메로스이다. 다른 한 명은 호메로스와 동시대 사람으로 철기시대 농부이며 목동이었던 헤시오도스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일상의 의미를 찾아 찬양하는 ‘일들과 날들’과 ‘신들의 계보’와 같은 시를 지었다. 그가 그리스 중부에 위치한 헬리콘 산비탈에서 양을 치고 있었을 때, 자신의 경험을 넘어선 천상의 존재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음악의 신들인 ‘뮤즈들’이다. 헤시오도스는 자신의 영감의 순간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그들은 그에게 와 “신의 목소리를 그에게 입김으로 불어넣었다.” 이런 신비한 장면이 과학을 종교처럼 신봉하는 현대인들에겐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위대한 예술가들, 작가들, 과학자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은 인식할 수 없지만, 자신만은 뚜렷하게 들을 수 있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고 전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자신에게 찾아오는 이 영감을 섬세하고 용감하게 수용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통로’라고 여긴다.

오늘날에도 이 ‘뮤즈’와 같은 존재를 ‘목격’했다는 보고가 종종 나온다. 오늘날 이런 뮤즈들은 자기표현 방식이 아니라 어떤 인간이 극한 상황에 처해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등장한다고 한다. 특히 극한 스포츠를 좋아하는 운동선수들은 심각한 위험에 처하거나 죽음에 직면할 때, 이 신비한 존재를 만났다고 증언한다. 이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들이 살아남았다고 고백한다. 아일랜드인 어니스트 섀클턴은 1914~17년 남극을 탐험하였다. 1916년 어느 날, 그가 탄 배는 남극을 눈앞에 두고 둥둥 떠다니는 엄청난 크기의 유빙괴(流氷塊)에 완전히 갇혀 수일 동안 떠돌게 되었다. 새클턴은 매 순간 살을 에는 듣는 영하 50도 칼바람을 온 몸으로 느끼며 칠흑 같은 남극 겨울 안에서 살아남아야만 했다. 그와 동료 탐험가 2명은 극단의 결단을 내렸다. 그들은 배를 버리고 그 후 36시간 로프와 피켈만 가지고 칠흑과 같은 밤 빙판 위에서 사투를 벌인다. 새클턴은 심신에 극도로 피폐해진 상태에서도 자신이 반드시 살아남아야겠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들이 36시간 동안 사투를 벌인 삶과 죽음의 첨예한 경계에서 신비한 사건을 체험한다. 그는 이 특별한 순간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이 길고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이 수반된 행군에서 신비한 현상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세 명이 아니라 네 명이 함께 걷고 있었습니다.” 정신이 혼미하고 신체가 얼어붙는 지칠 대로 치친 3명의 탐험가 옆에 알 수 없는 다른 존재 한 명이 등장하여 함께 걸었다고 증언한다. 이 존재는 누구인가? 정말 알 수 없는 제3의 인물이 등장해서 함께 걸었단 말인가?

영감은 새클턴이 경험한 제3의 인물과 같은 존재다. 캄캄하고 추운 밤하늘에서 자신이 생존을 위해 용기를 주는 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다. 내가 생존하여 살아남겠다는 ‘희망’이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나만의 영감’이다. 외부를 향해 습관적으로 열려져 있어 그것을 탐닉하는 눈으로는 ‘영감’을 찾을 수 없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내가 열망하는 나의 미래를 위해 간절한가?” “나는 그 간절함에서 느닷없이 찾아오는 영감의 줄기를 포착할 만한 섬세한 눈과 귀를 가지고 있는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눈이나 귀로 오는 것이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느끼는 것이 아닐까?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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