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리포트, 한국이 위험하다] <6> 갈 곳이 없다 : 취업과 치료 거부하는 사회

복지부 지정 전국 22곳 중
강남을지병원ㆍ국립부곡병원
2곳이 중독치료 92% 떠맡아
치료 지원액 한 해 1억대 그쳐
지정병원 “치료할수록 손해”
마약 중독자 치료 거부하는 서울의 한 마약류 중독 치료보호지정병원. 마약류 의존자 정모씨 제공.

2016년 3월 15일 새벽, 필로폰을 투약한 정모(53)씨가 서울 정릉동 동네 상가에서 환각 증상을 보였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정씨 모친(91)에게 연락하고 119 구급대와 함께 정씨를 인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하지만 병원은 “약물 환자는 못 받는다”고 거부했다.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마약류 중독 치료보호기관이 약물 남용자 치료를 거부하고 있다. 전국 22개 지정 치료보호기관 중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은 사실상 두세 곳뿐이다. 2016년 치료 252건 중 강남을지병원(146건)과 국립부곡병원(86건) 두 곳이 무려 92%를 맡았다. 나머지 20곳은 모두 5건 이하. 그마저도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등의 요청을 받고 마지 못해 환자를 받은 경우가 대부분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결국 치료도 못하고 교도소로 갔다. 마약 전과 10범인 정씨에게 무의미한 옥살이(징역 1년 6개월)만 더해진 셈이다. 30년간 반복된 아들의 중독을 감당해온 노모는 병원 거부로 큰 상처를 입었다.

정부가 허울뿐인 지정 병원 수만 유지하는 사이, 병원 문을 두드린 마약 중독자들은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고 극심한 좌절감에 휩싸였다. 7~8년째 필로폰 중독에 신음하는 이모(28)씨도 지난해 6월 맨 정신에 수도권 한 지정병원을 찾아 입원을 호소했지만 거절 당했다. 약을 끊기 힘들어 아예 해가 뜨면 산에 올라가 있었다는 이씨는 입원을 허락하는 병원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반복된 문전박대를 당한 그녀는 알코올 중독까지 걸렸다.

병원이 마약 중독환자를 꺼리는 건 여러 사정이 있다. 우선 정부 지원 예산이 턱없이 적어 약물 중독환자를 치료할수록 병원에 재정 부담이 커진다는 점이다. 약물 중독자는 마약류관리법과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규정에 따라 최대 1년간 전액 무료로 치료비 지원을 받는데, 복지부의 2017년 치료보호 예산은 1억2,700만원이다. 홍보비 5,000만원 등을 뺀 실제 치료 지원액은 7,200만원에 그친다. 국비와 지방비 절반씩으로 이뤄지는 지원액은 1억 4,400만원쯤 된다. 외래치료는 월 50만원, 입원치료는 월 200만원 가량 든다는 점을 감안하면, 환자 6~24명의 1년치 치료비에 그친다.

민간 지정 병원은 각 시ㆍ도로부터 허용 가능한 자체 책정 지원 한도 예산액을 듣고 “이를 넘는 치료비는 청구하지 말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이런 사정으로 외래치료만 하는 강남을지병원은 “받지 못한 누적 치료비가 5억여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국립부곡병원을 뺀 국립병원 4곳은 어떤 지원도 없이 자체 예산으로 충당해야 해 마약류중독 환자를 치료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여서 치료 유인이 떨어진다.

병원은 가뜩이나 수익성에 보탬이 안 되는 마약 중독 환자가 혹시 병동에서 다른 환자에게 마약을 퍼뜨리거나 자칫 환각 증세 등으로 사고를 일으키면 법적 책임도 질 수 있다는 우려로 더욱 꺼린다. 아울러 전문 의료진이 크게 부족한 데다 마약 중독 치료ㆍ재활에 별 의지가 없는 우리 의료현실도 약물 환자의 치료 접근성이 매우 떨어지는 실정이다.

마약중독 임상분야 전문가인 김낭희 박사는 “정부가 그 동안 대표성 있는 마약중독자 실태조사도 없이 치료 분야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며 “지정병원 운영현황을 점검하고, 관련 전문 치료자원 육성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글 싣는 순서>

1 도돌이표: 절망과 참회의 악순환

2 상상 초월: 청정하지 않은 대한민국

3 좀 이상해: 개운치 않은 수사와 재판

4 마약 양성소: 전문가 키우는 교정시설

5 보름 합숙: 쉽지 않은 재활의 길

6 갈 곳이 없다: 취업과 치료 거부하는 사회

7 일본 가 보니: 민간이 주도하는 재활센터

8 재사회화: 극복하고 있어요 응원해 주세요

특별취재팀=강철원ㆍ안아람ㆍ손현성ㆍ김현빈ㆍ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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