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태산이 큰 소리를 내며 흔들리더니 겨우 쥐 한 마리가 튀어 나오더라는 뜻이다. 요란하게 시작했지만 보잘것없는 결과로 끝난 모양을 가리킨다. 정부가 발표한 ‘일본군위안부문제 합의’(2015.12.28.), ‘후속조치 기본방향’(2018.1.9.)이 모두 그 꼴이다. 정부가 피해자와 국민의 기대를 잔뜩 부풀려 놓고는 갑자기 꼬리를 내렸다.

정부는 한일관계의 경색을 타개할 방안으로 ‘투 트랙’ 외교를 내세웠다. 역사문제는 원칙을 가지고 따지되, 그 밖의 현안은 실질ㆍ실무적 차원에서 협력을 꾀한다는 게 골자다. 셔틀외교를 재개해 정상회교를 복원하고, 북한의 핵ㆍ미사일 도발에 대해서는 미일 양국과 긴밀히 공조한다는 것은 당연한 전략이다. 성공을 기원한다.

정부의 ‘투 트랙’ 외교가 실현되려면 일본이 ‘투 트랙’에 들어와야만 한다. 열차는 두 바퀴로 굴러간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이미 ‘투 트랙’에 들어오지 않겠다는 뜻을 비쳤다. 역사문제와 기타 현안을 연계하겠다는 속셈이다. 이런 일본 정부를 상대로 문재인 정부가 ‘투 트랙‘ 외교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고도의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흔히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고 한다. 여기서 ‘지피(知彼)’는 일본이 한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폄하 의식과 일본 국민의 혐오 감정을 잘 알아야 한다. 일본을 ‘투 트랙’에 세우기 위해서는 응어리를 풀 수 있는 처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아베 정권은 한국을 이렇게 여긴다. 한국은 자유와 법의 지배 등 기본적 가치를 일본과 공유하지 않는다. 한국은 법적으로 끝난 보상 문제를 되풀이하여 제기한다. 한국은 목표를 바꿔가며 역사문제 해결을 요구한다. 한국은 국가 사이의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 화해는 상대방의 협력이 있어야 가능한데, 한국의 자세는 너무 강경하다. 한국은 중국에 지나치게 고분고분하면서, 일본에는 너무 뻣뻣하다. 일본은 북한 문제를 빼고는 한국을 중시할 필요가 없다.

일본 국민은 한국을 이렇게 여긴다. 한국이 끈질기게 일본에 사죄와 반성을 요구하는 데 지쳤다.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 및 북한에 호의적이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미국 및 일본에 적대적인 것을 보면, 한국은 일본과 다른 체제와 이념을 지향하는 것 같다. 한국은 북한과 중국의 위협이나 미국과 중국의 역할에 대해 일본과 아주 다르게 여기고, 한미일의 안보협력에 대해서도 일본보다 훨씬 소극적이다. 무조건 일본을 미워하는 한국은 믿을 수 없고, 가기도 싫다.

한국에 대한 아베 정권의 폄하 의식과 일본 국민의 혐오 감정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일본을 상대로 ‘투 트랙’ 외교를 할 수밖에 없는 게 한국 정부가 직면한 엄중한 현실이다. 한국 정부는 배알이 꼴리더라도 일본 정부를 진지하고 끈질기게 설득하여 두 바퀴를 함께 굴려가야 한다.

‘백전백승(百戰百勝)’의 또 하나 조건은 ‘지기(知己)’다. 여기서 ‘지기(知己)’는 한국이 해방 이후 70년 동안 일본을 상대로 어떤 일을 어떻게 처리했고, 무엇을 어느 정도 이룩했으며, 어떤 과제를 어디에 남겼는가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여러 사안에서 격렬히 대립하고 갈등했지만, 타협하고 협력하고 경쟁하며 꽤 많은 걸 이루었다. 그리하여 서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평등, 평화를 구가하는 나라를 만들었다.

역사문제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2년)과 한일조약(1965년)에 얽매이기는 했지만, 끈질기게 교섭해 식민지 지배가 야기한 한국인의 희생(원자폭탄 피해자, 사할린 징용자, ‘위안부’ 피해자 등)에 별도의 보상조치를 취했다. 역사인식에서도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가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끼친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몇 차례 공식 표명했다. ‘한국병합조약’(1910년)에 대해서는 ‘정치·군사적 배경 아래 한국인의 뜻에 반하여’ 이루어졌다고 인정했다.

물론 한국인은 위와 같은 일본 정부의 조치나 한국 정부의 대응이 충분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심신에 걸친 식민지 지배의 상처가 그런 뜨뜻미지근한 처방으로 아물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대일 ‘투 트랙’ 외교를 표방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인 셈이다.

한국은 지금 내우외환(內憂外患)이다. 그래서 대일 ‘투 트랙’ 외교의 성공은 더욱 절실하다. 정부가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지혜를 살려 대일 ‘투 트랙’ 외교에서 ‘백전백승(百戰百勝)’하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유연한 사고와 신실한 태도로 한일관계의 내력을, ‘적폐’만이 아니라 ‘성취’도 있다는 시각에서, 새롭게 파악해야 한다. 그 속에 ‘투 트랙’ 외교에 필요한 지혜가 많이 들어 있다. 상대인 일본 정부는 이미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지혜를 발휘하고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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